고요한 어둠의 아름다움

우리에겐 빛과 어둠, 소리와 고요 모두가 필요하다

by 진성민

오래 전 사하라 사막 인근 도시에서 오랫 동안 일을 할 때가 있었다.

공항 관련 일이다 보니, 어떤 종류의 일은 도착 비행기가 다 끊기고, 모든 관련 통신설비를 Off해 놓아야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자정 이후의 심야시간밖에 없었다. 그 어느 날인가, 활주로 가장자리에서 잠깐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작은 사막도시의 불꺼진 활주로는 정말 완벽한 어둠에 쌓여 있었다. 매번 보던 건너편 산등성이와 산줄기들 사이로, 희미한 별빛 아래 마치 검은색 빌로드천으로 덮힌 것처럼 보이는, 신비로운 어둠이 느껴졌다. 더구나, 모두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침묵까지 더해진 잠깐의 고요함.

나는 거의 빨려들 듯이 그 어둠을 바라보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아름다운 어둠"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답답함이 전혀 아닌, 내 시선을 오히려 빨아 들이는 듯한, 어두운데도 평안함을 주는 깊고 진한 어두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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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이렇게 골이 패인 능선 사이로 그늘이 생기던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 모두 완벽한 어둠 속에 잠긴채로 신비로운 고요속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짧은 몇 분 동안, 어두움이 주는 편안함, 고요함이 주는 평화로움에 잠겼고, 동시에 그 어둠속에서 지금쯤 잠들어 있을 인근 도시의 사람들과, 낮에 가끔 물 얻어마시러 날아오던 사막의 새들과, 아름다운 빛깔의 도마뱀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낮에 거의 54도까지도 올라가는 기온과 작열하는 태양빛, 건조한 모래바람에 하루 종일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의 바쁜 몸짓들을 하느라 지친 뭇 생명들이, 저녁이 되면 선선해 지기 시작하는 바람속에 하루를 마치고, 지금쯤은 모두 공평하게 잠들고 있을테니.

곧바로 연락을 취하는 무전소리에 내 잠깐의 상념은 바로 끊어졌지만, 나는 그 날의 그 신비로운 어둠과 고요가 주던 평화로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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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신도시가 생기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내가 주로 산책하는 천변 뚝방길 위에 서면 한쪽으로는 하늘높이 솟은 타워크레인과, 불을 환히 밝힌 대단지 아파트가 보이고, 한쪽편으로는 아직은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서 어둠에 잠긴 숲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천의 물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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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천은 내가 2년 가량 산책하면서 관찰해 온 바, 숱한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이다. 쇠기러기류와 물오리들, 원앙새와 텃새가 되어버린 가마우지까지, 몇 백 마리가 넘는 새들이 살고 있다. 개울물 속에는 팔뚝보다도 큰 잉어들과 종류를 알 수 없는 민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고, 개울가에 쌓이는 모래펄 속에는 자라도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곳. 이들에게도 밤 시간, 빛 대신 어둠이 찾아오고, 온갖 요란한 삶의 소리들 대신 고요한 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한쪽 편에서는 이 늦은 저녁시간 까지도 GTX역사 건축을 위한 천공기 소리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요란한 기계음이 계속 들려 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녁이나 밤 시간에 걸으면 정말 고요하고 어두운, 가끔씩 자전거길 표시등만 빛나던 길이었는데, 신도시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그 고요와 어두움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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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겨울 철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할 텐데, 이 높이 솟은 타워크레인과, 밤에도 빛나는 공사현장의 불빛들, 소음들 때문에 올해는 잘 정착할 수 있으려나. 수시로 하천 양쪽으로, 위아래로 날아 다니던 그 많은 새들이 혹시 올해부터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을 찾지 않으려나. 그 아름다운 몸짓들을 이 개울가에서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아쉬움이 몰려 온다.

인간의 주거를 위한 노력들이, 한편으로는 다른 목숨들에게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밤늦게까지도 계속되는 빛과 소리들이, 과연 우리 자신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일까? 우리가 좋은 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어둠과 고요, 이것은 꼭 잘때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다른 면에서도 한번쯤 필요한 휴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요란한 광채와 환호 대신에, 고요함 속에서 직시하는 어두움. 그것이 평안과 회복을 가져다 줄 때도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이 하천 뚝방길, 이쪽과 저쪽의 모습이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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