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자유의지" 라는 크고 무거운 짐
즐겨 걷던 산책길 위에서, 어느날 아침 누운채로 굳어버린 작은 새의 몸뚱아리와 만났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이 새의 그간의 숱한 날갯짓과 먹이 활동들과, 긴 포란끝에 부화한 새끼들을 보며 그(녀)가 느꼈을 기쁨과, 혹은 이렇게 원인모르게 차가운 길바닥에 눕게 된 그 순간의 사연들을 떠올려 보았다.
마음이 아프거나 그렇다기보다, 아, 이 생명도 이제는 소임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 경건한 마음으로, 한쪽으로 치워주고 다시 길을 걸었다.
어떤 생명들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인 듯 하다. 인간들이 흔히들 저지르기 쉬운 이분법, 선과 악, 옳고 그름, 빛과 어둠, 혹은 삶과 죽음 등의 일률적인 틀 안에 가두어지지 않는다. 이 새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그(녀)가 곤충들을 부지런히 잡아서 새끼들을 먹이고 키운 것이 선인가, 악인가? 새끼들에게는 선이라 할 것이고, 곤충들 입장에서는 악 혹은 죄라 할 것인가? 너무 우스운 비유가 될지 모르나, 적어도 내게는, 자연만물의 활동이나 작용은 그 자체로 인간들의 이분법적인 기준에는 적용될 수 없다.
화산이 폭발하면, 그 자체는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용암이 흐르고, 모든 주변의 나무와 집들을 불태우며,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공포를 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쌓였던 화산재들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용암은 굳어서 현무암이 되어서 지하수를 걸러내는 필터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한번의 폭발이란, 적어도 수십년 혹은 수백년 이상의 휴지기를 보장하는, 어찌보면 화산에는 꼭 필요한 이벤트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작은 생명들이 지어내는 몸짓들은, 그 자체가 내재된 창조의 섭리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공장에서 출하된 노트북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나오는 운영체제라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내게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그저 경이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들에게는 어떤 생명의 원칙이 스며 들어 있기에, 어떻게 이런 몸짓과 활동들이 가능할까? 이러한 형상과 색깔들은 도대체 누가 design한 것일까?
그에 비하면, 인간인 나는, 온갖 가지 죄의 욕망과, 실현되지 않은 탐욕과, 끊임없는 갈구들로 인해, 원래의 지어진 내 자신의 모습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원래의 인간은, 만약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면, 완벽히 아름다운 존재였을 것이다. 내가 읽었던 성경에는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 아름다왔을 존재들이, 지금의 나처럼, 늙고 병들어가고, 혹은 인생살이의 온갖 풍파속에서 때묻고 흠집많은 존재들로 변화해 버린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내가 선택한 것이었나? 그런 것 같지 않다. 태초의 인간에게 주어졌던 아름다움은, 소위 "죄"와 "타락"으로 인해 애초부터 변형되었고, 나는 그 변형된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아왔을 뿐이다. 매일 매순간, 나는 크고 작은 선택을 하지만, 그 변형된 존재라는 한계내에서의 선택은 결코 태초에 지어진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는 없다. 자연은, 그 자체로 태초에 지음받은 섭리 혹은 작동원리 대로 유지되어 오기에, 태초의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따라서 우리가 "죄" 라고 부를만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와 달리, 인간에게는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소위 선택과 결정의 능력이 있다. 그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모습과 인생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가기도 하고, 그 집합체로서의 사회와 국가의 모습을 형성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 자유의지 때문에 역시 필연적으로 "죄" 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원래 죄라는 용어는, 성경에서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 이라고 해석된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자주 과녁을 빗나가고 있는데도,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포장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 특별한 존재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최근 지인과 함께 배낚시를 하면서 본 갈매기들의 저 자유로운 비상이 내게는 정말로 아름다와 보였다.
자유의지 없이, 주어진 대로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표지사진의 새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 "자유의지" 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속에서, 최대한 올바르고 선하고 보다 다수에게 유익한 결정을 내리도록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사회 전체의 만족의 총량을 늘리는 선택을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 갈매기들이 거친 바닷바람속에서도 늘 비상하는 것처럼,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아닐까?
그 어느 사람도, 죽는 순간에, "나는 한 점 죄도 없이 훌륭한 삶을 살았다" 라고 회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 한 Cycle을 마치는 순간에 항상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 am innocent and go back to my origin now." 아마도,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굳어있던 저 이름모를 새도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저 빛나는 윤슬처럼, 나도 비록 무죄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름답게 찰랑거리며, 가끔은 햇살을 받아 빛나기도 하면서, "자유의지" 라는 크고 무거운 짐을 끝까지 잘 지고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