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뛰는 걸 보면.
오늘 우연히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군가를 들어봤다.
행군 때 일상적으로 부르던 군가가 생각나서 유튜브로 검색을 해봤더니, 아직도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부르는지 금방 검색이 되어서,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크게 틀어놓고 들어봤더니, 글쎄, 아직도 가슴이 뛰네?
야, 그래 우리는 아직도 죽지 않았어!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 때 그 자리, 상처입은 노송(老松)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그 한 맺힌 눈동자"
그 깜깜한 산길에 울려 퍼지던 저 군가가 갑자기 늙은 가슴을 뛰게 한다.
우리는 다 젊었었고, 피끓는 젊음을 나라를 위해 바친다고 생각하고 그 힘든 산길과 강물과 허공에 몸을 던졌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의 그 2년 반 정도 되는 짧은 시절들이 오히려 내 몸을 건강하게 하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배우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분명히 꼰대라고 비난할 젊은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학교 다닐때 데모도 좀 하고, 백골단 무술경관들에게 숱하게 얻어 맞고 잡혀서, 유치장에서 구류도 살아봤고, 결국 작전병에 필요한 비밀취급인가증 2급이 보안대에서 거부되어서 고충을 겪었던 만큼, 군대라는 이미지가 주는 당시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또래의 청년들과 부대끼며, 같이 겪어야 했던 온갖 종류의 고난(?)들을 함께 이겨내며 지냈던 그 시간들은 그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다 상쇄하고도 남았고, 무엇보다도 아침 구보 때마다 등짝을 적시는 그 땀의 상쾌함은 적어도 내게는 입대 전 책상물림하던 생활 보다는 훨씬 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함을 가져다 주었던 것 같다.
내가 근무했던 육군 보병 사단은 예비사단이라고 불리던 일종의 전투예비부대로서, 철책을 지키는 전방 사단이, CPX라고 부르던 전투력 평가에 의해 부여된 적의 침입 저지 가능 시간 동안 신속히 해당 지역으로 이동해서, 적과의 전투에 실제 투입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부대였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매일이 영내 훈련, 야외 훈련, 행군과 사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년 중 거의 8~9개월을 야외 숙영했던 것 같다. 자대 복귀해도, 텐트를 빨고, 총기 및 군장류를 청소하고 정비하고, 전투복과 모포, 군장을 세탁하고 그러느라 시간을 보내고, 그 일들이 완료되면 또 바로 야외훈련 나가고. 참 바빴다.
"참고 견디어 강병이 되자"
전투분대장반 교육은 약 6주였던 것 같은데, 정말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교육 수료하고 하사를 달고 자대 복귀하면, 나보다 고참인 병장들과의 관계 설정의 문제였다. 교육 입소 전까지 "모 병장님" 이라고 부르던 고참에게, 녹색 견장을 달고 분대장으로 와서 그렇게 호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소대의 전체적인 위계질서와 분위기를 흐리거나, 반대로 지휘체계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적당한 타협과, 눈치껏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목표달성을 위한 조직의 결속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일종의 사회생활 연습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힘든 시기들을 지나면서도, 결국은 모두의 눈앞에 닥친 힘겨운 훈련들과 과제들 앞에서 하나가 되어서 같이 힘든 시기들을 이겨냈던 경험은, 아마도 나 뿐만 아니라 그 시기 군복무를 함께 했던 모든 동료들에게 같은 경험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분대장 달고 가장 좋았던 것은, 엉뚱하게도, 당시 병장 월급이 1만원이었는데, 하사는 3만 5천원, 년중 네 번 있는 보너스 달에는 7만원이라는 거금을 받았었고, 그런 날에는 PX에 가서 당시 유명했던 "왔다빵" (작은 단팥빵)과 닭다리, 소세지 등으로 우리들만의 파티를 열었던 즐거웠던 기억도 잊혀지지 않는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극단적인 심리 상태일 때, 가장 본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도 군대에서 배운 것 같다. 가장 밑바닥의 상황일 때, 어떻게 남에게 대하는지를 보면 진면목이 드러난다. 본인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옆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가 결국 그 사람의 가장 밑바닥 심성을 보여준다는 것. 사진에서처럼 육체적으로 극한의 어려움이 다가오면 어떤 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그것 역시도 감수하고 품어야만 그 이후의 공동생활도 서로 지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것도, 군에서의 극한적인 경험이 주는 교훈이었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80년대 학번들이 종종 가지고 있는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내게는 별로 없다. 아마도 제대 이후에도 몇 몇 사람들과는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왔던 것도 그 이유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아들도 현역으로 제대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뻔한 얘기처럼,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와야지" 라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건강과, 위생과, 육체적 증진, 갖가지 상황에서의 심리적 대응 훈련 등을 독자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출신 지역과 배경의 사람들과 부대껴보는 경험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나 역시 숱한 구타와 폭행(?)에 가까운 경험들 속에서, 정말 명치에 정통으로 맞아서 숨이 막혀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살아 남았다! 지금은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그래서인지, 오늘 "전선을 간다" (Going to the Front) 라는 군가를 들으면서, 가슴이 뛰는 걸 보니, 그 28.5 개월이 내게 헛되지 않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전쟁은 없어야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군 복무가 불가피하니, 몸과 마음을 단련시킨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부딪혀야 할 일이면, 예전 분대장 교육때 구호처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태도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표지 사진의 내 바로 후임 동료들과 찍은 이 사진을 인생샷으로 생각하고 간직하고 있다. 그 숱한 땀방울들과, 거친 호흡들을 함께 했던, 전우이자 친구, 동료이자 인생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지들로서!
사진의 한 명은 지금도 연락이 되고 만나기도 하는데, 한 명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화기분대장, 이 글 보면 내게 연락 좀 해 줘.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