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 것이 마땅한가?
88년 11월 중순, 때이른 추위가 하늘을 파랗게 얼리고, 귓볼을 시리게 하던 어느 초겨울 날 밤, 대학 신입생 청년 하나가 관악경찰서 조사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련해 보이는 형사 한 사람과 마주 앉아서.
형사는 시간마다 되풀이해서 물었고, 그 청년은, 사실은 아직 만 열아홉 살 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계속해서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해서 해야 했다. 그 취조 방식이, 거듭된 진술들 중에서 차이점을 캐내어서 죄를 확정짓기 위한 전형적인 기법이라는 것을, 그 어린 청년은 알 리 없었다. 오늘 너의 일정을 시간별로 다 진술해라, 누구에게서 무슨 얘기를 들었나, 너는 신촌네거리에서 출발했을텐데 어떻게 중구 명동에서 잡히게 됐냐, 이동 동선을 얘기해라, 백골단에게 잡혔던 그 명동 백병원 앞의 도로에서 무슨 행위를 했냐, 화염병을 던졌냐 안 던졌나, 돌멩이나 깨진 보도 블록을 던졌냐 안 던졌냐 등등.
당시 잡혀 온 여러 청년들이 서울 시내 여러 경찰서로 분산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보니, 아마도 당시 전경 버스에 실려온 수십명의 대학생들이 아마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았을까? 각 지역에서 상경해서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나이든 농민들의 너무도 지쳐 보이는 시위에 동참했던 일단의 대학생 시위대들이, 더러는 무사히 귀가하고, 더러는 그 청년처럼 청바지와 운동화, 백색 화이바를 쓴 무술경관들, 일명 백골단에 얻어 맞고 잡혀와서 심야까지 형사들과 마주 앉아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청년은 이미 명동에서 잡힐 때부터 레슬링 경기에서나 쓰이는 용어로 소위 Groggy 상태였다. 하루 종일 추운데 농민들 행진에 섞여 걷고, 외치고, 더러는 돌도 던지다, 최루탄, 사과탄 혹은 지랄탄이라고 부르던 가스탄등이 날아오는 것을 피하느라 긴장하다가, 백골단을 피해 빨리 뛰어야 했고, 그러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도 해야 했고,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저녁까지 피곤한 하루였다. 거기다가 이상하다 왜 나만 쫒아오지 할 정도로, 두 명의 백색 화이바가 끝까지 자신만 쫒아오는 바람에, 달리고 달리다가 어느 건물로 피했는데, 결국 그 옥상층에까지 끝까지 따라온 두 사람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잡힌 터였다. 나중에 전경 버스에서 그 화이바에게 들은 바로는, "얌마, 오늘 내가 찍은 색깔이 하늘색이었어" 였는데, 그는 그날 하늘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사냥감이 된 느낌이었지만, 곧 이어 이어지는 전경버스안에서의 무자비한 폭력에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소위 "데모가"를 불러 보라는 백골단들의 지시, 엄두가 안나서 침묵하면 머리위로 올린 깍지 낀 두 손 위로 화이바가 내려쳐 져서, 너무 아프다 보니 안 부를 수가 없었다. 누군가 조그만 음성으로 시작해서 같이 부르다보면, 다른 화이바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데모가를 불러 이 XX들아!" 하면서 다시 화이바가 내려쳐 진다. 우와,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 나라 사람들 주먹이 이렇게 컸나 싶었다.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와, 왜 이렇게 이 사람들은 발들이 클까 싶었다.... 결국 도망가지 못하게 신발 꾸겨신고, 허리띠 풀은채로 서로의 허리를 잡고 굴비 엮이듯 종로경찰서로 갔다가 그는 멀리 관악경찰서까지 버스타고 옮겨진 상황.
아무튼 지루한 머리 싸움과, 반복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던 중이었는데,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지 그 나이 지긋한 형사가 그 청년에게 한 마디 했었다.
"너같은 애들 우리는 많이 봤어. 끝까지 버티겠다 이거지? 알았다!"
책상 한 모퉁이에 걸터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구두 한 짝을 벗더니,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청년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구두 뒷굽으로 왼쪽 볼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얼떨결에 맞아서 눈앞에 별들이 반짝이던 그 청년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그는 한 마디 더 했다.
"어쭈, 째려봐? 이X이 정신을 못 차렸구만?"
연이어 날아들던 구두 뒷굽, 결국 볼은 금방 화끈화끈해지고, 맞느라 굳게 다물었던 입 안쪽에서는 피가 흐르는지 뭔가 액체가 흐르는 듯한 느낌에, 차마 뱉지는 못하고 계속 삼키며 청년은 볼을 감싸쥐고, 책상에 엎드리다시피 쭈그렸다. 우와, 이럴 수가 있는 건가? 만 스무살도 안되는 그 청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런 상황이 어이도 없고, 우선 너무 공포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지? 집에 전화도 할 수 없고, 선배도 그 누구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그럴수록 전의(戰意)가 불타오를 뿐.
그런데, 갑자기 책상에 놓인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그 형사는 잠깐 구두를 내려놓고 걸터앉은 채로 수화기를 들었다. 마침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던 때,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 그 형사는 좀전에 구두 뒷굽으로 대학 신입생 청년의 뺨을 갈겨대던 그 무시무시한 사람이 전혀 아니라, 친구 딸의 입시와 건강을 염려해 주고, 좋은 성적 받기를 기원해주던, 시국이 어수선해서 친구와 만날 시간이 없어 아쉬워하는, 그냥 마음 따뜻한 가장이고, 평범해보이는 "직장인"이었다.
그 통화를 바로 옆에서 들으며 앉아서, 철분맛 나는 액체를 삼키던 그 청년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전의가 다 사라져 버렸다! 아, 이 사람도 집에 가면 다정한 아빠이고, 남편이고, 또 친구딸 입시를 걱정해 주는 따뜻한 친구였을 뿐이었구나. 나와는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지만, 원래 나도 우리 집에서는 소중한 아들이고, 형이고, 동생이듯이, 이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렇겠구나.
왜 생판 몰랐던 우리 두 사람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만나야 하는 것일까?
그 청년은 그냥 모든 것을 불러주는 대로 쓰고, 그 심야 조사를 끝냈다. 그 형사는 어깨를 두 번 탁탁 치면서, "진작 그러면 얼마나 좋았냐?" 하고는 점퍼를 입고, 퇴근했다. 그 청년은 그날 밤, 유치장에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사람들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그런 구조 (System)가 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투쟁이라는 것을.
서로를 파편화해서 싸우게 만들고, 상처를 감내하면서 승자독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라는 것은, 결국 이 형사와 같이 자기 임무와 역할에 충실한 한 개인조차도 비인간화시키는 아주 사악한 구조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고 이겨내려고 하는 것 보다는, 우리가 서로 만나는 상황과 그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길거리에서 화염병과 돌멩이 혹은 최루탄과 지랄탄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서 책상에서 구두 뒷굽과 분노에 찬 결기로 서로 맞서기보다, 그 상황 자체를 초래하지 않는 근본적인 구조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그때의 고민을 안고 그 청년은 유치장의 도시락을 한참 동안 먹어야했지만, 그것은 또다른 넓고 해볼만한 고민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고민의 답은 얻지 못했지만.
덧붙임) 오늘 국정감사 방송 중 법제사법위원회 질의 응답을 보다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예전의 이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세상이 이렇게 변하지 않다니.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인간의 심성이란 변하지 않는 걸까? 왜 세상에는 선과 정의만 존재할 수는 없는 걸까? 인간과 신 사이에도 화평 (Conciliation)이 가능하다는데, 왜 보잘 것 없는 인간들 사이의 화평이 없을까? 나이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인간들이 수천년 동안 고민했을 그 사안들이 내게도 똑같이 적용되는구나.
다만, 그 때의 그 관악서 형사님께, 아마도 직장인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내게 그랬겠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분으로 보였던 그분께, 오늘 찍은 사진 한 장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 우리 모두 이런 세상을 함께 꿈꿀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