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웅장한 백운대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장관

by 진성민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모처럼 등산을 해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북한산 아래 동네의 뒷산, 원효봉. 내가 처음으로 원효봉 정상에 올랐던 것은, 기억하기에 국민학교 5학년 겨울방학이었는데, 매일 땅에 발 붙이고 살다 보니 고정됐던 나의 시선이 처음으로 깨어났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땅 아래 펼쳐진 드넓은 세상과, 360도로 펼쳐진 광활한 허공의 풍경은, 어린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대자연의 광대함과 더불어 세상이 참 넓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해 준 경험이었다.


백운대는 올 초 4월달에도 한 번 올라봤지만, 원효봉은 거의 30년만에 올라보는 것이라서, 각 산의 정상의 고도 차이를 생각하면 약간 시시하다고 (?) 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각별한 경험이 있었던 산이라서 왠지 더 가보고 싶었던 곳. 오늘 이 글에서는 올라가는데 필요한 약간의 정보와 풍경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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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밑의 내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 산길 입구에 다다르면 이런 안내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고도 500여 미터의 원효봉 정상까지 도보로 1.5km를 걸어야 한다는 것. 1.5 Km 중에서, 굳이 내 분류대로라면, 각 500미터씩 구간의 각각의 난이도가 다르다. 첫 500 미터는 양쪽으로 난 숲길과 그늘 사이로 완만한 바위와 화강암이 풍화된 하얀 흙들이 섞인 길, 그 이후 500미터는 가파른 돌 계단, 그 이후 500미터는 근력을 시험하는 급경사와 주의해야 하는 양쪽 절벽이 이어진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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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구간을 천천히 오르다보면 곧 시구문을 만난다. 이곳의 다른 이름은 서암문 (西暗門) 인데, 북한산성의 서쪽 지역을 방어하는 주요 성벽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시구문이라는 이름은, 당시 전투에서 생긴, 혹은 6.25 때도 전사자들의 시신을 모아놓았다가 내어가는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어른들에게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주 오래전에 밤에 이 문을 지나면 왠지 등골이 서늘해 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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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는 자세히 보면, 혹시 있을 수 있는 지진이나 지반침하 등으로 인한 위치 변동을 측정하기 위한 측위장치가 붙어 있어서, 문화재청이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밝은 대낮에 보면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이 많은 무거운 돌들을 잘라서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쌓았을까 하는 경외감이 든다.

원래부터 북한산성의 수비와 관리는 병사들과 승려 병사인 승군이 함께 맡았다고 하는데, 이 승군의 주둔을 위해서 1711년 숙종 37년에 쌓으면서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 때 지어진 사찰들이 지금도 북한산성 영내와 근처에 있는,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서암사, 원각사, 국녕사, 상운사, 태고사, 진국사 (현재 이름은 노적사) 이며, 2개의 암자가 바로 원효암과 봉성암이다. 오늘 오를 곳은 원효암이 있는 원효봉 정상. 원효암은 7세기 후반에 원효대사가 좌선해 수행했다는 원효봉 아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정상에는 원효가 좌선했다는 원효대가 있다. 내가 국민학교 때 처음 올라가 보고 신기해 했던 바로 그 자리.


서암문 (시구문)에서부터는 가파른 급경사의 돌 계단이 이어진다. 어떤 곳은 거의 경사도 60도 쯤 될까? 그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가파르지 않아 보였는데, 오늘 오르니 허벅지도 아프고, 숨이 가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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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르다가 가끔씩은 우리가 당시에 "쉬는 바위" 라고 부르던 큰 바위 옆에서 쫙 펼쳐진 전경을 보면서 쉬고는 했었는데, 시절이 오래 지나다보니 나무들이 다 자라서 시야를 가려 버리고, 밑의 풍경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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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전투를 위해서 총안(銃眼)을 낸 "여장"(女墻) 이라는 나지막한 성벽위의 돌담이 남아 있는 걸 볼 수도 있다. 아마도 계단을 보수하느라 마구 갖다 썼을 것으로 짐작되어 몇 개 남아 있지도 않지만, 그 옛날 이곳이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투용 시설 명칭에 왜 "女"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지만, 내 짧은 역사 지식으로는 알 수 없고, 땀에 절어 당장은 알아보고 싶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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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다시 500미터쯤을 꾹 참고 오르면, 드디어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 부근은 성벽위를 걷기도 하다가, 옆으로 난 바윗길을 걷기도 하는데, 오른쪽으로는 바로 낭떠러지라서 통로가 아닌 곳으로 가면 정말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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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정상도 백운대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암석위로 난 좁은 길을 올라가야 한다. 급경사와 심한 바람 주의 필요.

급경사의 바위 덩어리에 난 계단을 쇠줄을 잡고 오르면 드디어 원효봉 정상에 서게 된다. 이제까지의 땀과 가빴던 호흡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백운대의 장엄한 모습과, 발 아래 펼쳐진 산 아래의 광대한 풍경으로 보상받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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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대한 암석 위에는 그 옛날 원효대사가 좌선하고 수행했다는 움푹 패인 자리(원효대)가 남아 있다. 거센 바람과 바로 앞이 수백미터 낭떠러지인 이 아찔한 위치에서 어떻게 참선이 가능했을지, 그리고 저 넓은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바라보며 어떤 고뇌를 거듭하셨을지 잠깐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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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까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반, 내려갈 때를 대비해서 체력의 약 60%만 쓸 각오로 속도를 조절하여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 또 하나의 고려 사항은, 신발과 복장. 전체적으로 바위산이다 보니, 등산화를 꼭 신고, 바닥이 리지화 (Ridge용 신발)처럼 되어 있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양 손으로 쇠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으니, 얇은 장갑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양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배낭에 필요한 것들을 다 넣고, 등산 스틱 같은 것은 되도록 없는 것이 양손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는 카메라와 가방 때문에 신발 외에는 다른 모든 것들을 하나도 안가지고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높푸른 가을 하늘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백운대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서울 근교에 이런 잘 보존되고 뛰어난 풍광의 산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백운대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4팀의 외국인 등산객들을 만났다. 그 중 두 팀과 잠깐 같이 쉬면서 얘기해보니, 힘들긴 한데, "너어어어무 좋다~" 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 나라에도 명산들이 있겠고, 유명한 트레킹 코스도 있겠지만, 바로 대도시옆에, 아니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품고 있는 이런 멋진 산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주 큰 행복중의 하나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백운대의 웅장함에 다시 한 번 반하고,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 취해 보았던 아름다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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