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나무 앞에 서다

작지만, 붉은 빛의 단단한 보석같은

by 진성민

이제 가을이 완연해 지고, 따가운 햇빛 아래 다른 모든 열매들처럼 산수유 열매도 익어간다.

오늘 산책하다가 나무에 알알이 열린 빠알간 산수유 열매를 보니, 오래 전 어머니와 동생과 같이 찾아 다니던 늦가을의 북한산 기슭의 산수유 나무들이 떠오른다. 내게는 산수유에 얽힌 특별한 유년기의 기억이 있다.


산수유 열매는 한약재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이다. 그것은, 그저 놔두면 눈발에 젖고 다시 말라 비틀어지고, 혹은 땅에 떨어지거나, 늦은 겨울 먹이가 없는 직박구리들의 식량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잘 씻고 씨를 뺀 뒤 말리면 그 검붉게 마른 과육들은, 당시에 한약방에서 1근에 거금 1만원 가량을 주고 사가던, 아주 유용한 약재이기도 했다.


농사를 짓던 집에서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돈벌이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시절.

청년 시절 사촌형님의 한약방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산야에 있는 약초들 중에서 어떤 것이 약용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계셨고, "산수유나 슬슬 따 봐" 아버지의 흘리는 듯 한 한마디에 어머니와 나, 바로 밑의 동생은 또 다른 가을걷이에 나섰다. 어머니는 모처럼 분홍색 소시지에 계란물까지 입힌 도시락을 싸시고, 나와 동생은 철없이도, 엄마와 소풍간다는 생각에 들떴다.

북한산 밑의 산 기슭에는 자생 산수유나무도 많았고, 일부는 아마도 누가 일부러 심어 놓은 것이었겠지만, 아무도 관심없이 그저 열렸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나무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큰 보자기와, 비닐 봉투들, 혹은 요즘 장 볼 때 쓰는 것과 비슷한 큰 쇼핑백같은 것을 가지고, 따가운 가을 햇볕을 받으며, 산수유가 열리는 야트막한 북한산의 기슭들을 찾아 다녔다. 나무들은 대체로 그리 키가 높지 않아서, 어린 나도 손으로 훑어서 딸 수 있거나, 아니면 나무가지들을 흔들면 밑에 받쳐 놓은 보자기에 떨어지는, 빨간색 작은 열매들을 손으로 모으기만 하면 되었다. 어떨 때는 내가 나무 중간에 올라가서 흔들기도 하고. 그러면 어머니와 동생은 가을의 금빛 햇살 아래 반짝이는 이 작고 빨간 열매들을 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면, 돗자리에 앉아 엄마가 싸 온 도시락을,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같이 먹었고, 가끔씩 지나가는 다람쥐를 구경하기도 하고, 옆에서 같이 산수유를 따는 다른 사람들이 두런 두런 나누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햇빛과 바람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빚어내는 소리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그냥 이 아름다운 가을의 한 부분들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되도록 많이 따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도 있으셨을 것이고, 많이 따면 또 많이 따는 대로 이후의 작업이 많을 것을 걱정도 하셨겠지만, 어린 우리 형제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늦가을의 숲 속을 신나게 쏘다니는 철부지였다...

20251020_101648.jpg 작지만, 내게는 루비처럼 보였던 작은 열매들

집에 돌아오면, 우선 붙어 있던 작은 꼭지들을 제거하고 물로 씻어 말려야 한다. 마르고 나면 손가락으로 꼬집듯이 눌러서, 씨를 빼내고 과육만 남은 상태로 모아서, 다시 말리면 되는 것. 그러나, 이 과정은 정말 지겹고, 손가락 끝이 아픈 작업이었다. 밤늦게까지 하다 보면, 졸려서 씨를 뺐는지 안 뺐는지도 헷갈린 상태에서 과육만 모으는 바구니에 넣기도 하고. 나중에 보면, 씨를 안 뺀 것도 그 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했다.

씨를 빼다 보면 가끔 손가락에 묻은 과육을 먹기도 하고, 아예 이상하게 작업된 것은, 버리기 아까와서 그냥 먹기도 했는데, 그 맛은 약간 쌉살하고 떫은 맛이었지만, 쓰거나 못 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아마도 나는 소년기 때 산수유 열매를 총량으로 따지면 한 말 정도는 먹었을 것도 같다. 몸에 좋은 것이라고 하니, 혹시 그때 매년 먹었던 산수유 덕분에 아직도 심장질환이나 고혈압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 마르면 보자기에 싸서, 한약방에 약재를 공급하시던 분 집으로 들고 갔었다. 그것은 거의 겨울의 초입 쯤 되어야 가능했고, 팔아서 생긴 돈으로 어머니는 우리들의 겨울옷을 사주시거나, 구파발 시장에서 먹을 거리들을 한 장바구니 사시곤 했다. 나는 산수유가 어떻게 내가 입는 두꺼운 외투가 되고, 우리집 식탁에 오르는 뜨끈뜨끈한 동태탕이 되는지를 그때부터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빈곤한 가정이 할 수 있는 일종의 가족단위 아르바이트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당시의 어린 소년에게는,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청청한 고양시의 자연환경과 좋은 가을햇볕이 주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나 공원들에 열리는 산수유를 그냥 무심히 쳐다보지 못한다. 대부분이 무심하게 바라보지만, 내게는 일종의 소중한 작은 보석이기도 하다. 작지만, 핏빛처럼 붉고,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눈발을 견디는, 단단한 친구.


누구들처럼 달콤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누구보다 오랫동안 익기 위해 햇빛을 머금고, 추위와 눈발을 견디며, 누군가의 약재가 혹은 먹이가 되어 주는 고맙고 예쁜 산수유.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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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위에 끈질기에 매달려, 햇빛에 빛나거나, 눈에 덮혀 잠들거나, 내게는 너희들이 보석이다.

올 봄, 찍었던 산수유 꽃을 돌아보며, 다시 내년 이른 봄에 만날 노오란 꽃망울을 기대하며, 그 시절 북한산 산 기슭에서 열매를 모으던 세 모자(母子)의 아름다왔던 가을 소풍을 추억하며, 산수유같은 존재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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