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함을 이겨 내는 생명력
국민학교 때 위인전기들만 아마 두 전집을 읽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어쩌면 당신께서 어렸을 때 그렇게 못하셨던 것 때문인지, 과할 정도로 책 전집들을 사주셨다. 아동문학 50권, 위인전 24권, 아주 총천연색의 뛰어난 그림들로 가득찼던 양장표지의 역사책 수십권, 당시 유행했던 백과사전 (아마 좀 나이드신 분들만 알 수 있을 듯한 단어이지만) 등등. 심지어 시집들도 전집으로! 그 책들을 읽으며, 어린 시절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 많았었다.
그 중에서, 역사책에 나오는 분들, 당 태종 이세민을 무찌른 양만춘 장군이나, 강감찬 장군들과 같은 무장(武將)들의 이야기에 나는 특히 흥미가 있었다. 고구려의 실권자로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연개소문에게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 나라를 침략한 당태종의 대군에 맞서 끝까지 안시성을 지켜낸 그의 활약은 내게 정말 "영웅"스러워보였다. 연(鳶; Kite)에 "부족함을 알았으면 물러섬이 어떠한가?" 라는 싯구를 써서 당군 진영으로 날려보내는 풍류스러움이라던가, 퇴각하는 당 태종 또한 양만춘 장군의 기개를 치하하며 비단 100필을 놓고 갔다는 옛날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더더욱 문과 무를 다 갖추었던 강인한 무장들에 관심이 커졌었다.
더구나, 신라의 화랑제도에 대해서 약간의 동경심을 갖고 있던 어린 소년에게, 황산벌 전투에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단기필마로 백제군 진영으로 돌진하다가 두번째 돌진에서는 결국 목베임을 당한 소년 화랑 관창(官昌)의 이야기는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특히나, 첫번째 돌진에서 백제군 진영에서 그를 사로잡았지만 그 용기와 기백을 가상히 여겨 풀어주었던 것을 보며, 고대의 전장에서도 품격과 서로에 대한 존중은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처럼 무인격의 살상기계들이 판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호통치며 불러 내고, 조롱도 나누고, 결국은 직접 칼과 창으로 부딪치는 약간은 인간적인 전투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더구나, 신라군의 품일 장군은 (金品日) 아들인 관창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두번이나 백제군 진영으로 보내도록 승인했고, 결국 그 전투에서는 분기탱천한 신라군이 백제군을 대파한다. 이런 모습들을 역사책에서는 다소 서사적으로 그렸던 탓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내게는 너무 멋있어 보였고, 정말 이렇게 강인하면서도 인간미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점차 나이가 들어 가고,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게 강인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수시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덩치크고 운동도 잘하고, 체력장에서 너무도 금방, 쉽게 20점 만점을 받아버리는 친구들이 강인해 보였고, 군대에서는 유격이나 공수훈련장에서 빨간 모자를 눈이 가릴 정도로 덮어쓰고는 사정없이 우리를 굴려 버리면서도 본인들 또한 직접 모든 과정을 같이 하면서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 조교들이 강인해 보였다. 사회 초년병일 때는, 그 숱한 서류뭉치들과 하루 수백통의 전화와 팩스, 부장님의 질책 속에서도, 계단실 옆 작은 창문밑에 놓여있던 항아리 재털이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는, 다시 웃으며 자리로 돌아와서 책상앞에 앉는 고참 대리님이 강인해 보였다.
강인함이란, 도전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 마침내 승리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었다. 더 크고, 높고, 빛나고, 유능해 지는 것, 그러기 위한 육체적 정신적 단련을 감내하는 것, 그것이 강인함을 이루게 해서 결국은 성취를 가져다 주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양만춘 장군도 문무를 닦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 것이며, 화랑 관창도 온갖 검술과 승마, 활쏘기 뿐 아니라 서도와 한시에 얼마나 능했을 것인가!
이제 반백이 넘어, 그렇게 믿어왔던 온갖 과정들을 일부나마 겪고 나니, 이제는 또 생각이 바뀌게 된다. 막상 그 과정들은, 좀 더 부드러워지기 위한 필요조건들이었을 뿐이라는 것. 우리는 정말 무쇠처럼 단단해져서 세상을 살 수만은 없고, 정작 부드러운 옷감이나 이불, 따뜻한 음식과 같이 되어야만 자신도 살 수 있고, 남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은 주로 살아 있는 것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바위와 흙 밑의 틈새에 자라는 몽글몽글한 야생버섯들, 역시 바위표면에 바짝 붙은 채로 이끼와 함께 살고 있는 이름모를 균류들, 혹은 좁은 바위틈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향해 뻗어 나가는 작은 나뭇가지들.
이런 존재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칼날을 휘두르며 포효와 함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장수의 기개와는 전혀 양상이 다르지만, 또한 아주 비슷하다. 척박한 여건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뜻을 집중해서, 기어코 살아 내고야 만다는 점에서, 역시 내게는 승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는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다시 겨울을 이기고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하는 것 자체가 성공이고, 승리이고, 존중받을 이유가 된다.
저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내가 8~9살 무렵에도 있었다. 지금 거의 50년이 지나서 다시 가보니, 여전히 더 크고 두껍게 자라서, 단단한 바위틈에서도 푸른 솔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저 바위위를 흘렀을 빗물을 받아 마시고, 뿌리로 조금씩 흡수한 영양분을 먹으면서도, 비록 풍파에 가지 몇 개는 꺾이고 썩기도 했지만, 여전히 푸르고 당당하다. 비옥한 평지의 안온한 숲에서 자라는 소나무들보다 내게는 이런 존재들이야말로, 그 옛날 말타고 호령하던 장군들의 기개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바람도, 추위도, 척박한 바위틈의 환경도 꺾을 수 없는!
표지 사진처럼, 깊게 팬 옹이를 안고도 의연하게 하늘을 향해 자라나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정말로 강인한 것은, 외형적인 모습들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 새겨진 그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나무와 풀과 바위와 돌 들 모두, 자신들에게 스스로 위로하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시간을 감당해 내고 있다. 스스로 그 공간과 시간속의 일부가 되어서, 간혹은 빛나기도 하고, 간혹은 어둠속에서 침잠하기도 하면서.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거나 작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많이 배웠거나 그렇지 않거나,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여건을 감당해 내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노래를 하면 된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몸짓을 하면 된다. 그 모든 것이 모여서, 이 세상이 더 아름다와 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만 한다면.
오래 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빈민가에서 한 소녀를 마주쳤었다. 그 자신이 어린아이면서도, 동생을 안고 있는 그 수줍고 착한 눈망울. 우리도 예전에 이랬었지. 원래는 그러면 안되지만, 가지고 있던 작은 지폐 하나를 음료수 사먹으라고 줬더니 내게 웃어 보이며, 동생을 안고 사라지던 그 아이. 그는 내게는 바위틈의 작은 버섯들, 혹은 암석사이에 뿌리 내린 작은 소나무처럼 보였다. 척박함을 이기고 살아 남는 것, 그것이 강인함이 아닐까? 빈곤에 대한 구조적인 시각 운운의 논쟁 이전에, 이 사진의 소녀는 내게는 저 북한산 고지대 암벽 사이에 뿌리내린 소나무처럼 보인다. 부디 모두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그 자리에서 빛나시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