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생활 에피소드 1-(1)

안과병동에서의 한 달 반

by 진성민

옛날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들어서 추억할 것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억들 속에서 나를 형성해 온 것들을 끄집어 내서 다시 바로 잡을 것은 잡고, 스스로에게 용서할 것, 위로할 것은 용서하고 위로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의 날들은 좀 더 가볍고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한 켠의 바램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맘 때 쯤이었을까? 91년 11월 중순 경 나는 졸지에 국군수도통합 병원의 안과 이비인후과 통합 병동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가, 수술을 못받고 안과 전문인 광주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제대를 한 달 앞두고서야 퇴원해서 의가사제대를 면할 수 있었다. 그 추운 12월말이던가 1월 초, 혼자서 광주통합병원에서 퇴원해서 더플백을 메고, 경기도 양주의 자대까지 고속버스와 버스로 이동한 후, 위병소를 통과해서 깜깜한 연병장을 가로지르면서 반가움이었는지 안도감이었는지 눈물을 훔치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눈이 시린 것도 다쳐서일거야 스스로 다독여가면서 걷던 그 깜깜한 연병장, 복귀신고하러 가는 행정반 앞 벽에서 흐릿하게 빛나던 백열등의 기억. 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 역시 내게는 그때의 상처받고 외로왔던 어린 그 군인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사건의 발단은, 취침 점호 직전 연대로부터 급하게 하달된 지시사항 하나였다. 내무반 내의 뻬치카위에 설치되어 있는 그물망들을 내일 아침 점호 전까지 전부 새로 짜라는 것. 연대 군수과장이 직접 점검할 테니 차질없이 완성하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막사는 군 생활 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시멘트와 모래를 섞은 블록들로 쌓아올린 오래되고 낡은 단층건물들이라서 외풍이 심했고, 난방으로는 막사 외벽에 나있는 아궁이같은 곳에서 석탄을 물로 개어서 켜켜이 쌓고 태우면 막사 안쪽으로 연결된 네모난 탑같은 곳이 데워지면서 전체 공간을 따스하게 만드는 아주 구식의 벽난로 구조였다. 그 뻬치카위 네 귀퉁이에 작은 철근을 잘라서 붙이고, 그 사이를 가는 철사로 엮어서 막사 천장 바로 아래 놓이는 가장 뜨거운 윗 부분을 안전용으로 가리곤 했는데, 보통은 거기에 자기전에 양말이나 속옷을 널고는 했었다. 그 철사로 엮은 그물망은 몇 년 동안 써왔던 것인데, 왜 아무 설명없이 그것을 하룻밤 사이에 교체하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주임상사님은 막걸리 한 잔 하신 듯 불콰해진 얼굴로, 각 소대 선임분대장들을 행정반에 모아놓고는 평소 모습같지 않게 거친 말과 표정으로 지시하셨다. "내일 아침 점호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든 니들이 책임지고 다 바꿔놔!" 취침점호도 하는 둥 마는 둥 간략하게 끝내고, 곧바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자재는 공급이 되었다. 둥그랗게 말려있는 철사 두어 뭉치를 들고, 나와 상병 고참 병사 하나가 뻬치카 위로 올라가서 고개를 숙이고 마주보고 앉아서 그 철사들로 그물망을 엮기 시작했다. 바로 위가 천장이어서 고개를 들 수도 없고, 좁은 공간에서 둥글게 말려 있는 철사들을 손으로 풀어가면서 벽쪽을 제외한 3면의 그물망을 완성해야 했다. 당시 상병 고참들 중에서 소대의 전반적인 일들을 맡아서 관리(?) 하던 인원을 우리는 "기지개" 라고 불렀는데, 그 후임은 당시 우리 소대의 기지개였고, 나는 그를 아끼던 선임분대장이었다. 다들 뻬치카 밑에 놓인 분대 침상에서 자고 있었기에, 우리 둘은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 조용히 졸린 눈을 부벼가며 그물망을 짜고 있었다. 아마 다른 중대에서도 똑같이 이러고 있을 터였다.


작업이 중간 쯤 진행되었을까 하는 시점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둥굴게 말린 철사를 풀어가며 작업하던 내 눈에 갑자기 별이 번쩍하는 느낌이 왔다. 곧바로 놀라서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이미 늦었다! 맞은 편에서 작업하던 기지개가 손으로 푸느라 친 철사 끝 부분이 내 왼쪽 눈에 날아와 박혔던 것.

나는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서,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조용히 눈을 떠 보았다. 크게 아픔이 있지는 않았고, 눈도 잘 보이는 것 같아서, 일단 작업을 중지하고 뻬치카에서 내려왔다. 기지개도 놀라서 같이 내려 와서는 내 눈을 들여다 보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자는 동료들에게 미안했지만, 일단 내무반 불을 켜고 거울앞에서 눈을 살펴보았다. 외관상으로는 피도 나지 않고, 눈물만 날 뿐 아무렇지도 않기에 괜찮은가 보다 생각하고, 혹시 몰라서 오른쪽 눈을 감아 보았다. 아뿔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지도위에 대고 그리던 트레이싱페이퍼 (Tracing Paper) 열 몇 장쯤을 겹쳐서 보듯이, 뿌연 안개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럴수가 없는데? 나는 왼쪽눈을 몇 번 비비고 나서 다시 오른쪽 눈을 감아보았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지개에게 휴대용 라이트로 내 눈을 비춰보라고 했다. 그가 군용 라이트를 내 눈 약 30cm 정도 앞에서 비췄다. 정상이라면 정면에서 비추는 그 불빛에 눈이 부셔서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내게는 마치 안개가 자욱한 높은 산 건너편 능선에서 누군가 작은 성냥개비로 불을 붙인 것 마냥 보일 뿐이었다. 눈이 부시지도 않으니 눈을 감거나 깜빡이지도 않았고, 그러는 순간에도 전혀 통증이라고는 없어서, 이게 다친게 맞나, 아니면 일시적인 건가 헷갈릴 정도였다. 기지개가 심각하게 말했다. "분대장님, 안되겠습니다. 빨리 의무대로 가시죠."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눈에는 통각세포가 없어서 통증을 느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눈이 뇌와 매우 비슷한 재질과 구조로 되어 있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또한 금방 상하고, 비가역적으로 손상된다는 것 등등.


나는 연대 의무대로 갔다가, 덕정에 있던 군단병원으로 갔다가, 거기서 결국 군용 앰뷸런스에 누인 채로 화곡동의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상체와 머리가 최소한으로만 차에서 흔들리도록 결박당한 채로. 그것이 그 기막힌 군 병원에서의 경험들의 시작이었고, 내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닌, "눈이 시렸던 기억"의 날들이 되었다.

눈의 구조.png


(군대생활 에피소드 1-(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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