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주사/죽으면 정문으로 나가게 해준다
눈(Eye)은 알고보니 그 중요성만큼이나 생각보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고 또한 취약한 인체 기관 중의 하나였다. 우선, 통각세포가 없어서 다쳐도 통증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고 (이것은 눈의 상처와 손상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대처하는 기회를 일정 부분 늦추는 위험이 있다), 맨 바깥쪽에 위치한 각막부터, 말하자면 여러겹의 렌즈와 조리개, 필름들이 다층적으로 배열된 곳이라서 하나라도 손상이 생기면 전체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더구나 홍채의 뒷 부분에는 초자체 (요새는 유리체라고 부른다고 하네) 라는 아주 맑은 형태의 액체가 가득찬 공간이 있어서 이것이 바로 뒤에 있는 망막에 상(像)을 뚜렷하고 선명하게 맺히게 하고, 동시에 안구의 크기를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그 망막에 맺히는 상을 시신경들이 뇌로 전달해서 우리로 하여금 물체의 형상을 인식하게 하고, 거리를 판단하며, 색깔과 음영을 구분하게 하는 것.
내가 뻬치카의 그물망 작업을 하다가 입은 상처는, 간단히 말하면, 철사가 눈 앞쪽의 각막부터, 수정체와 홍채를 뚫고 초자체까지 침범했다가 망막 바로 앞에서 멈췄던 것이었다. 만약 망막까지 뚫렸다면 그 즉시 초자체가 누출되기 시작하고, 시신경이 미세하게 분포된 망막 역시 찢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우선 안압이 내려가면서 안구가 쪼그라들기 시작하고, 안개낀 산처럼이나마 보였던 시력 역시 다 잃게 되어 아마도 암흑같은 화면만 내 앞에 보였을 것이었다. (내가 나중에 광주통합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제대 후 민간병원에 제출하려고 군의관에게 진단서나 치료경과지 같은 것이 있으면 달라고 했더니, 병원에서 쓰는 메모지같은 종이에 달랑 두 줄만 적어서 주었던 기억이 난다. "각막 열상, 초자체 혼탁").
아마도 6군단 병원에서는, 사고의 내용을 전해 듣고, 정확한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초자체 누출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머리 부분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 상태에서 누운채로 앰뷸런스에 실어 상급병원인 국군수도통합병원(이하 "수통"으로 지칭)으로 응급으로 보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통에서는 사고 후 수통 도착까지의 몇 시간 동안 이미 초자체 누출이 상당부분 벌어졌을 것이니, 안구를 살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서 찢어져서 누출되는 부위를 봉합하던지, 불가능하면 바로 안구를 적출하던지 양자간의 결정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인데,
그 과정에서 군의관들은 내게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고, 집에는 도저히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전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이들은 다 출가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아직 학생들이었던 남동생 둘만 있는 집에, 이 중차대한 문제를 어떻게 알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집에도 연락하지 말 것을 부탁했고, 그저 국군 최고의 병원에서 치료한다니 좋은 결과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앰뷸런스안에서 머리와 상체가 고정된 채로 두 시간 가량 밤길을 달렸다. 수통에 도착하면 바로 수술을 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안과/이비인후과 통합 병동의 간호장교실 바로 앞 자리에 배치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위중한 순서대로 간호장교실 앞에서부터 배치된다고 한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더 기다렸는데, 그 사이에도 눈의 통증은 전혀 없었다. 꼼짝앉고 누워서 수술실 이동을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나에게 간호장교가 알려 준 사실은, 안과의사가 당직이 아니어서 오늘밤에는 수술 불가!
결국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환자도우미 (이들 역시 군인 환자들이지만, 치료가 완료된 상태에서 "여러가지 사정"들로 병원에 머물고 있던 일반 사병들)가 밀어 주는 휠체어를 타고 안과병동으로 이동했다. 군의관은 내게 자세한 상황 설명 없이, 수술시기를 놓쳤으니 일반 약물 치료와 주사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일단 주사 한 방 맞아야 한다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는 불안이,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큰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니 주사나 맞자고 하는 것이겠지? 아니야, 수술을 했으면 더 좋아졌을 수도 있는 상황을 단지 당직 안과의가 없다고 해서 못하는 바람에 더 안좋아지는 건가? 물어볼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군의관을 믿고 따라야지 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앞으로 주사기를 들고 다가오는 군의관을 보면서 의아했다. 왜 팔을 걷거나 엉덩이에 주사맞을 준비를 하라고 하지 않는 건가?
군의관들 역시 당연히 사병들에게 존대는 하지 않았다. "저 쪽 벽에 글씨보이지? 그거 응시하고 절대로 눈깔 돌리지 마라." 나는 군의관의 지시대로 한 쪽 벽 윗부분에 있는 문구 중에서 특정 글자를 응시한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든 주사기가 내 얼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안구 內 주사!
주사기가 다친 내 눈앞으로 다가오더니, 천천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성한 내 오른쪽 눈으로 주사기 바늘이 반짝반짝 빛나며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마치 삶은 계란이나 젤리컵에 주사를 놓는 느낌처럼, 미끄러우면서도 약간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정말 "눈깔을 돌리지" 않고, 그 글자만 바라보는 상태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이해하기로는, 주사바늘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홍채나 수정체가 움직이면 추가적인 손상이 있을수도 있으니, 예방차원에서 안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주사바늘은 끝까지 다 눈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안구가 그렇게 크고 둥그런지를 그때까지 몰랐다. 약물이 눈속에 주사된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내 왼쪽눈은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검은눈이 되어 버렸다. 주사바늘이 지나가면서 눈속의 혈관들을 터뜨리며 지나가는 바람에, 피가 맺혀서 흰자위가 없어져 버려 눈 전체가 검정색으로 변했다. 아마도 안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걸 본 사람들은 기겁을 했으리라...
그리고 나면, 온통 SF영화의 장면들처럼, 만물이 흔들리고, 두겹 세겹으로 겹쳐 보였다. 긴 병실 복도의 양쪽 창문들은 소실점을 잃고, 제멋대로 배열된 것처럼 보였고, 복도에서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역시도 뭉크의 그림, 절규에 나오는 뭉개진 얼굴처럼 실루엣들이 흔들렸다. 왜 멀쩡했던 오른쪽 눈의 시력까지도 그렇게 변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주사맞을 당시까지만 해도 통증이 없었는데, 주사를 맞고 나면 안구 전체가 쓰리고, 보통 성인들은 작은 사과알만하다고 하는 내 안구의 크기를 느낌으로 알 수 있을 정도의 두통에 시달렸다. 나를 휠체어에 태워 준 도우미병사들은 하사인 나보다는 보통 계급이 낮은 일병 상병 정도의 병사들이었는데, 병원 생활은 나보다 더 훨씬 고참들이었다 보니 간간이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다. "분대장님, 그냥 가만히 누워 쉬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씁쓸하지만, 어찌 보면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내게는 정말 맞는 말이었다.
화곡동 수도통합병원 정문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낮에는 육중한 철문이 보통은 닫혀 있었지만, 밤에는 수시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양쪽으로 밀어서 여는 그 문을 열고 닫으려면 시끄러운 소리가 났는데,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음에도 밤에 그렇게 문을 여는 것은, 앰뷸런스에 사망한 사람들을 싣고 나가야 했기 때문. 다쳐서 후송되는 군인들은 보통은 후문으로, 응급실쪽으로 입원하지만 (민간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나?) 죽고 나면 예의상 비로소 정문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우리 입원한 환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었다. 내가 침상위에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천정만 바라보던 그 며칠, 밤에는 숱하게 정문이 열리고 닫혔다.
어느 날 아침, 온갖 꿈에 시달리다가 깨어보니, 내 침상옆에 새로운 침상이 간호장교실 가장 가까이 배치되어 있었고, 두 눈 전체를 붕대로 감아 맨 왠 새 환자가 나처럼 꼼짝안하고 누워 있었다.
(군대생활 에피소드 1-(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