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과 "The Zone of Interest"
저예산 독립영화 "얼굴"을 보았다. (연상호 감독, 권해효, 박정민 주연)
전태일 형님이 일했음직한 열악한 봉제공장, 못생겼다고 매일 놀림받는 한 "괴물같은" 시다 여공은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리던 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맹인 도장공이 보여주는 호의에,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부부가 되어 애도 낳고 살지만, 결국 그 도장공의 손에 목졸리어 죽고 버려지고, 몇 십년 만에 백골이 되어 귀환한다. 아내가 "괴물같은 얼굴" 이라는 모두의 조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에 귀로만 듣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맹인 도장공 남편은, 전각 장인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그 속에 지독한 편견에 기반한 확신을 갖고 살인까지 저지른 악인이었지만, 겉으로는 남들이 맹인이면서도 도장을 아름답게 파는 것을 "기적"이라고 부를만큼 대단한 성취를 이룬 보통사람이었다.
아우슈비츠 학살현장 가운데 위치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독일 가정의 일상, 누구도 악마의 얼굴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평화롭고 따뜻한 가족들과 이웃들처럼 보이는 독일군 장교들의 깨끗하고 잘 관리된 집 너머로는 학살된 유대인들을 소각하는 연기가 매일 굴뚝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날마다 반복되는 곳, The Zone of Interest.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2025.06)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악은 추상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매우 구체적이다. 수십발의 연발 사격 후 보랏빛으로 변한 총구의 색깔을 보았다면 그 총구를 맨 손가락으로 잡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만 군 미필자는 그럴 수 있겠다. 마치 장난감처럼 군을 다루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잘 하는 어떤 술주정꾼처럼. 그냥 한 번 해 본 거라고,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 속에는, 총구에서 발사된 단 한발의 5.56mm 탄환이 어떻게 살아있는 한 사람의 살과 뼈를 부숴뜨리며 몸을 헤집어서 그 목숨을 끊는지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과 고민도 없어 보인다. Zone of Interests에서도 보이는 장면처럼 그런 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녹색 잔디밭에서 해주는 계란말이를 기쁘게 받아 먹으며 활짝 웃는 어떤 펜대 잡은 젊은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던 그 만족감과 안도감, 그 속에도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1975)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 숨어 있다. 누구나 화면으로만 보면 다 평범한 선인(善人)들이다.
겉으로는 자녀들에게 좋은 아빠이고 남편이며, 아파트 입주민 이웃들에게는 교양있는 직장인 이웃이겠지만, 남들이 보지않는 카카오톡의 익명(!) 단체 톡방에서는, 같은 이웃 중 이견을 보이는 고립된 한 개인에 대해서, 끊임없는 모욕과 인신공격, 테러를 선동하는 글을 바로 그 사람이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 글, "나비효과를 직접 겪어보니 (1)" 01화 나비효과를 직접 겪어 보니 (1) (brunch.co.kr)
우리는 바로 이런 평범한 악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 우리안에 있던 본능의 한 부분이어서 그런 것일까?
악은 옛이야기에 나오듯이 뿔달린 빨간 얼굴이 아니라 선하고 잘생기고 배운자의 교양있는 웃음 뒤에서 가장 독한 향기를 뿜어낸다. 가장 그럴 듯 한, 가장 많은 갈채속에서 피어나는 아주 화려한 독(毒).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취하고 쓰러진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자신들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고 눈물이 되는 것을 그들 자신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이 다른 누군가들에게 어떤 작용을 초래하여 이 세상을 더럽히고 아프게 하는 악이 되는지 성찰하지 않는다. 그런 무감각과 무지성의 집합적이고 연속적인 시간들속에선, 악이란, 추상적인 괴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과 뼈와 피를 가진 실체적인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그의 손과 입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혹시라도 너희들의 등위로 내리치는 죽비 (竹扉)를 맞거든 눈빛을 서늘히 하고 조용히 귀기울여 보아라. 살이 타고 뼈가 재가 되어가는 그 굴뚝의 연기가 어떻게 구름속으로 흘러들어가서 결국에는 그 일부분이 되어 다시 그대들 머리 위로 내리는지를. 영화 "얼굴"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인 배우 박정민이 오열하는 그 흐느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작은 몸짓과 손짓에도 늘 그렇듯 희망은 있다. 평범한 자들이 위대한 이 세상을 굴리는 것 처럼. 우리의 갈길은 아직도 너무도 멀지만, 영화 "얼굴"에서 주인공 정영희가 보여준 작은 용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악은 평범하게 일상속에서 행해지지만, 또한 그 일상의 작은 순간 순간마다 극복되어지고 있다는 것. 누구에 의해서? 이 영화들을 만든 작가와 감독들 같은 깨어있는 시선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 시선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많은 평범한 생활인들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