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를 직접 겪어 보니 (1)

고양시 외곽의 어느 신도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by 진성민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할 수 있다”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라는 사람이 처음 주목한 이 말은, 자연과 사회의 복잡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해 보려는 카오스 이론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작은 변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기치 않은 결과를 빚어 내기도 한다는 뜻이겠다. 어쩌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에도 이 이론이 적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겪어보니 맞는 말 같다. 다음에 쓰는 글은, 사실과 추정과 상상이 서로 함께 섞인 나비이론의 실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 긴 상상을 펼쳐보려 한다.


경기도 고양시 외곽의 작은 신도시 대단지 아파트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어느 40대 중반 남자가 살고 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오랜 근무하지는 않은 보좌관에서 권고사직 당한 그는 원래부터 소위 말빨, 글빨이 좋고, 아파트의 초기 입주 때부터 하자보수 대책위원회 위원장 및 초기 입주자대표회의 의장을 맡는 등 리더쉽도 남달랐다. 아파트내 도서관, 각종 시설을 맡아 운영하는 주민자치위원회 등 출근하는 남편들 대신 주로 여성 입주민들이 책임을 맡아 운영해 온 아파트내의 각종 의사결정기구내에서도, 초기 입주민이자 주요한 역할을 맡아 기여해 온 그 남자의 위상은 남달랐다. 한마디로 셀럽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거기에 바로 인접 지역구의 유명한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니, 이 얼마나 평범한 입주민 주부들에게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을까?


이 남자는 하지만 초기 입주자대표회의 (약어: 입대의) 의장을 맡는 동안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입대의 내부의 건의에 의해 물러나야 했다. 각종 아파트 관련 계약, 광고, 시행사와의 하자 보수 협상 등 입주 초 집중적인 이권관련 사업들이 결정되는 그 중요한 시기에, 같은 입대의 구성원들이 보기에도 너무 석연찮은 일들이 많았고, 이런 내용들이 일반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비리, 부정의 의혹속에서 전체 입대의가 싸잡아 욕을 먹거나 비난을 감수해야 했을 수도 있으니.

결국 그는 보좌관실에서도 석연찮은 이유로 해임되기 전에, 이미 몇 년 전 같은 이유로 입대의를 떠난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이 거듭된 두 번의 회군(?)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를, 아마도 그가 품은 일종의 앙심이 어떤 나비들의 날갯짓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아니었을까?


몇 달 후 그는 남몰래 카카오톡에서 익명 단체톡방을 개설했다. 그 직후에, 그 아파트 입주민들을 이 단체카톡방으로 초청하는 A4크기의 대자보가 관리사무소에 통지도 되지 않고, 승인도 되지 않은 채 몰래 야간에 어느 여성 입주민에 의해 약 스무개 정도 전체 아파트 라인의 1층 엘리베이터 앞에 부착되었다. 당시는 그 아파트가 시행사에 승소하여 주어진 20억 가량의 하자승소금이 하자보수 및 주민 편의, 아파트 가치를 상승시키는데 필요하다고 인정된 여러가지 공사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집행되고 있던 때, 당연히 크고 작은 주민들의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이견이 표출되는 갈등 국면이었다. 그 익명 단톡방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의 무차별적인 유포, 이에 자극받은 주민들의 욕설과 비난, 인신모독적인 말들이 난무했고,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에 도취된 주민들은 가끔씩 대화들 중간에 터져 나오는 선동을 극도로 확대하며 당시 이런 공사들의 최종적인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당시 입대의 임원들을 향해 감정섞인 증오와 반발을 드러냈다. 이 과정은 최소 6개월 이상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오프라인 상의 공식적 회의에서조차 주민들은 격앙된 Shouting을 소름 끼치게 쏟아냈다. 이때는 수없는 나비들의 날갯짓이 극대화된 시점이라고나 할까?


한 평범한 50대 중반의 다른 입주민이 있었다. 그는 입주한 이후 8년 동안 어떤 직책도 맡은 적이 없는 그냥 일개 입주민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은 일종의 작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서로 관심을 갖고, 도우며, 공동체가 진행하는 일에는 가능한 부분에서 되도록 참여, 협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늘 아파트내에서 실시되는 투표에도 참가하고, 모든 게시물을 꼼꼼히 읽으며, 감시자/협조자의 지위 두가지 다 놓지 않으려는 30년 월급쟁이다운 소시민이었다. 그런 그에게 격앙된 주민들이 “입대의 전원을 다 해임해야 한다. 투표합시다.” 라는 요지로 작성하여 엘리베이트 안에 부착한 해임청구안과, 해임 대상이 된 입대의장, 감사1, 감사2, 이 사람들 각자가 소명한 의견서, 총 4부가 붙어 있는 것을 꼼꼼히 읽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눈에, 해임청구안 문서의 표지 중 하단에 쓰여진 “첨부4: 해임청구인 연명부” 라는 글이 유독 관심을 끌었다. 그 남자 자신은 그런 요청을 해 본 적도, 연명부에 서명하라는 요청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비공개적으로 작성된 연명부가 벌써 이렇게 전체 주민수 1/1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첨부되었을까? 의아한 마음에 그 문서의 맨 뒤 첨부 문서를 보려고 들쳐 봤으나 연명부는 첨부되어 있지 않았고, 문서 상단은 종이테이프로 단단히 밀봉된 상태였다. 그는 이게 실수로 첨부를 안한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표지에만 합법성을 가장하기 위해 첨부되었다고 “첨부 4” 라고 기입한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입주 후 몇 년 간의 경험상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런 공통적인 사안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잘 읽어보지도 않거나, 보더라도 띄엄띄엄 읽는다는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는 늦은 퇴근길이었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문서들을 다 꼼꼼히 읽느라 엘리베이터가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한참을 그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자기 전에, 아파트의 주민 게시판에 잘 올리지도 않던 글을 몇 년만에 올렸다. 해임청구안 문서의 완결성을 보완해야 하지 않는가, 첨부 4가 없다, 첨부를 하던지, 표지문서에서 첨부되었다고 기술된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표지를 붙이던가 둘 중 하나가 맞지 않는가 라는 내용의 간단한 글이었다. 그가 자는 사이에 나비들의 날갯짓이 수상한 작은 바람으로 회오리 치기 시작한 것을 그는 몰랐다.


아침에 일어난 50대 입주민은 자기가 올린 글을 확인해 보다가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간 몇 년간 아파트게시판에서 본 적 없는 정도의 열띤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어떤 글에 주민들이 누르는 공감, 좋아요 혹은 싫어요는 달리지 않거나 달려도 서너개 수준이었는데, 그가 올린 글에는 싫어요가 거의 20개 이상,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무려 30개 이상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댓글의 비난 수준이었다. 50대 중반인 그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정도의 모욕과 비난, 교묘한 비틀기, 조롱 등으로 가득한 그 댓글들을 보며 그는 너무도 충격을 받았다. 그 게시판은 동+호수+닉네임의 조합으로 작성되는 것이 규칙이었기 때문에 그 자신도 몇 동 몇 호에 사는 어떤 닉네임의 주민인 것을 모두 다 알듯이, 댓글 참여자들의 면면도 알 수 있었지만, 본인이 올린 평범한 상식 수준의 문제제기에 이런 정도의 과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익명 게시판에서 그 남자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말들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았다. 이 정도는 아주 인용가능한 양호한 수준이라는 전제하에서 보자면,


하린 운동하는 라이언.png


아주 아주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반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미 보좌관 출신의 남자가 별도로 준비해서 운영하던 카카오톡 익명 게시판에서 나비의 날갯짓 정도가 아니라, 작고 불온한 회오리 바람 정도가 아니라, 거의 토네이도급 태풍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 태풍은 여러가지 후과(後果)를 낳았다. “강자동일시, 약자혐오, 동조강박(同調强迫), 폭력성, 흑백논리”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파시즘의 특성에 부합하는 갖가지 행동들이 아파트 단지를 휩쓸었다. 이 과정에서 심야에 개별 가구별로 설정된 1층 공동현관의 출입통제장치까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회피하여 세대 현관문 앞까지 침입하는 물리적 위협까지 발생하여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형사처벌이 다수 발생했고, 아파트의 분위기는 극도로 얼어붙어서 입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극도로 제약당했다. 단합된 지지층으로 보이는 군중의 맛에 한 번 취한 바뀐 입대의는 거리낌없이 아파트 관리규약이나 공동주택 관리법 위반 사항을 의결하여 구청으로부터 행정지도, 시정명령을 몇 차례 받았다. 그 남자가 다시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면 익명 게시판에서는 또 다시 무지막지한 인격 테러가 이어졌고, 졸지에 그 남자는 소위 "미친 개"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어느 날 밤에는, 그 중년 남자에게 "현피"를 신청했다가 언쟁이 붙었던 젊은 남자가 그 남자의 현관문 앞까지 찾아와서 연거푸 벨을 눌러 대며 자는 남자를 깨웠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말았다. 그 젊은 남자는 중년 남자의 아내와 딸이 서로 부둥켜 안고 무서워 하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경찰이 두 명이나 와 있는데도, 손가락 V를 하고 활짝 웃으며, 분노한 중년 남자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나중에 중년 남자는 이들이 그 사진을 익명 게시판에 올려서 다시 다른 동조자들로부터 "밥 먹는데 으엑 ㅋㅋ" 라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그들의 대화록을 입수해서 확인했다. 소름끼치는 물리적/언어적 폭력과 Cyberbullying이 그 아파트를 휩쓸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불법적인 해임이라고 항변하던 어느 해임된 감사가 정식으로 법원에 청구하여 진행중인 해임무효소송은 일단 감사지위보전 가처분 요청이 인용되고 본안소송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소송에서 해임된 감사가 최종 승소할 경우, 해임청구안을 몰래 작성하고, 해임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많은 입주민들은 미필적으로 불법적 행위의 공동 참여자가 되어 버릴 상황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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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법 판결문 예시_지움.jpg

40대 보좌관 출신의 아파트 입주민 남자가 품었던 개인적인 작은 원망과 욕심이, 꼼꼼히 기획하고 실행한 문서행위와 사전 준비한 카카오 단톡방에서 증폭되어, 선동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실제 몸과 마음을 바쳐 실행한 많은 입주민 (특히 여성입주민들)에 의해 거대한 토네이도로 아파트를 삼켜 버리는 중이었다. 이 상황을 몸소 겪고, 지켜보아 온 50대 중년 남자의 머리속에는 너무도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사회가 지닌 온갖 모순과 부조리들, 과장되고 부풀려진 욕망이 이 일을 통하여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해결하고, 방지책을 만들어가야 할까? 그런 것이 과연 일개인의 힘으로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그 아파트 말고도 다른 도시의, 혹은 다른 지역의 아파트들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과연 없을까? 꼭 그 아파트에서만 아주 예외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지자체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 전에 개입할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고, 다음 년도 지방선거를 앞둔 시의회 의원, 도의회 의원들은 개입하지 않으려 하고, 국회의원도 내용을 알면서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만 할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풀뿌리에서부터 위협받고 있는 건 아닐까?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변 해수의 온도와, 지형, 바람의 방향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 환경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고, 나비의 날갯짓이 불순하고 폭력적으로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는" 토네이도가 아니라 나비의 아름다운 몸짓 자체만으로, 멋진 춤으로만 머물 수 있게 할 수 없을까 고심하게 되는 50대 남자의 눈에, 갑자기 떠올랐을 이미지 하나. 2024년 12월 3일밤 자다 말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강변북로를 질주할 때, 서강대교에 다다랐을 때 드문드문 눈발이 내리는 어두운 여의도 국회의사당 상공을 호버링(hovering)하던 검은 동체의 군용헬기 3대의 모습...


(나비효과를 직접 겪어보니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