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의 기억
12월 3일밤, 자다 말고 아내가 깨워서 거실로 나와 TV화면을 바라 본 이 50대 중반의 남자는 눈을 의심했다. TV화면 속에서, 현직 대통령이 양팔을 거만하게 벌리고 탁자를 잡고 서서, 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계엄이라니! 이 남자는 자던 복장 그대로 외투만 입고, 핸드폰과 지갑만 챙긴채로 신발을 신으려고 현관앞으로 나왔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제발 조심해라 라고만 할 뿐 만류할 수는 없었다. 현관 앞 방에서 나온, 군을 제대한 지 1년 밖에 안되는 아들이 남자를 만류했다. 요지는 꼭 아빠가 가셔야 하냐 라는 것. 어떤 경우에는, 꼭 필요한 일을 꼭 필요한 시점에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게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다, 지금이 그 시점이고, 아빠의 그 판단을 이번에도 좀 믿어봐라, 네가 잘 알듯이 아빠는 하사 출신이고 아직은 충분히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이 있으니 걱정말고 자고 있어라.
5분만에 아들을 설득하고 나온 남자에게 행운이 잇따랐다. 원래 대중교통이 별로 없고, 그렇게 늦은 시간에는 택시조차 호출을 잡지 않아 매번 10분 이상의 호출을 기다려야 했던 이 아파트에서, 1분도 안되어 택시가 잡혔다. 급하다고 말씀드리고 강변북로를 질주하는데, 검고 흐린 하늘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이라서 강변북로는 거의 비워져 있다시피 했고, 택시는 쏜살같이 달려 주었다. 기사님은 아직도 상황을 모르고 계신지, 이 늦은 시간에 급하다고 국회앞에 빨리 가 달라고 요청하는 중년 남자를 자꾸 룸미러로 훔쳐 보고 있었다. 남자의 생각 속에는 오래 전 군복무 때 철원의 승진훈련장에서 종합훈련 중 사고로 어깨에 실탄을 맞았던 옆 중대 후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픈게 아니라 아주 뜨겁다는. 순식간에 인두로 살 속을 헤집는 것과 같은 뜨거움이 총상의 첫 느낌이었다는.
육군 보병 전투분대장 출신의 이 남자는 속으로 머리나 심장에 한 발만 맞았으면 좋겠다, 그럼 한 방에 갈수 있을텐데 라는 엉뚱한 희망을 안고, 졸업한 학교와 하필 이름이 같은 어느 한강 다리 중간에 멈춰 섰다. 이미 차량들로 막혀서 교량 끝까지 택시가 갈 수가 없었다. 뛰어 가서, 국회 1문 앞에 도착하니, 벌써 경찰들이 국회 담장을 포위하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월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경찰들이 월담을 저지하는 중이었고, 뒤로는 군에 있을 때 흔히 보던 안테나를 지붕에 장착한 쌍용차가 제작한 지휘차량들과 25인승 미니 버스들이 보였다.
남자는, 지나가는 흑복차림의 계엄군들이 국회로 진입하려는 것을 보았다. 일단 가장 먼저 도착한 장소인 국회1문앞에서 모여서, 문을 봉쇄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문을 열어서 국회의원들의 진입을 허가하라고 계속 외치는 것과, 월담하려는 민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월담할 수 있게 돕는 것, 계엄해제를 목청껏 외치는 것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총알이 날아드는 상황은 아니었고, 경찰들도 80년대처럼 밀집한 시민들을 강제력으로 저지하지는 않았다. 거의 1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유튜브를 찍는지 실시간으로 카메라를 들고 뭐라고 떠들면서 지나가는 젊은 사람도 있었고, 나이든 아주머니들로 보이지만 마스크를 끼고 강하게 계엄해제를 외치는데 동참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 지금밖에 시간이 없다. 더 늦으면 아마도 몇 달 전에 야당 의원 어느 분이 경고하신 계엄이 정말 성공할지도 몰라. 그건 5.18보다 더 큰 희생을 불러올텐데.
추운 겨울밤인데도 혀가 바짝 바짝 마르고, 계속 소리지르다 보니 목이 벌써 쉬어간다. 2명의 월담을 도운 이후에는 월담을 시도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개인 SNS 계정에 급하게 현장 동영상을 하나 올리고, 지인들이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와주길 바래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쪽 국회 출입문은 어떤 상황인지, 국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걱정이 되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리를 지키고 추가적인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는 일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는 채 1시가 넘어서자 곧 시민들 무리 한 편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국회의장님이 계엄해제 요구안을 의결했다는 소식. 한 순간 긴장이 풀린 남자는 환호도 잠깐, 이제 어떻게 또 교통이 불편한 집에 돌아가나, 내일 출근시 지각하면 안되는데, 이런 소시민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밤 하늘에는 여전히 듬성 듬성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군용차량과 미니버스들, 방송사 취재차량들과 일반 승용차들이 얽힌 도로는 사람들과 뒤섞여 너무도 혼란스러웠지만, 시민들은 그래도 건널목의 파란불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졌다. 어떤 불길한 나비의 잘못된 욕망이 평화롭던 심야에 갑자기 불러일으킨 바람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민주주의의 심장인 국회앞을 검게 덮어버린 날, 한편에서는 수많은 작은 밝은 색의 나비들의 가녀린 몸짓이 그 검은 바람들을 아주 싹 쓸어버리고, 맑게 동트는 새벽 하늘로 뭉쳐 불어 올라가고 있었다.
(나비효과를 직접 겪어보니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