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를 직접 겪어 보니(3)

파시즘은 멀리 있지 않구나, 내 안의 파시즘, 우리들안의 집단 광기?

by 진성민

그날 밤, 국회의사당 위를 뒤덮었던 헬기의 굉음은 사라졌지만, 그 헬기의 프로펠러를 구동시켰던 헬기조종사의 마음에는 과연 평안이 찾아왔을까? 흑복을 입고 야투경을 헬멧에 장착하고 시민들의 야유와 고성을 들으며, 국회에 난입해야 했던 아들보다 조금 나이 더 먹었을 청년들의 마음속에도 과연 평안이 찾아왔을까?


그 중년 남자가 떠올린 것은, 어떤 한 불길한 남자와 여자, 한 부부가 생각했을 검은 나비, 자신들에게 행운과 재물을 안겨 줄 거라고 믿었던 검은 나비가 일으킨 이 엄청난 날갯짓들이었다. 그 나비의 날갯짓은 검은 헬기의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되었고, 검은 흑복을 입고 국회에 난입한 젊은 군인들의 집단적이고 일사불란한 몸짓으로 변화되었다. 그 날갯짓이 일으킨 나비효과는, 밝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솔바람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선동과 증오, 파괴와 희생을 부르는 무시무시한 토네이도이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은 또 어떠했을까?

마찬가지로, 한 알 수 없는 남자가 꿈꾸었던 잘못된 바램이, 미리 조직된 의사전달 체계와 카카오라는 대기업이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아주 이상한 우산밑에서 제공하는 단단한 익명성 뒤에서 구체화되고, 증폭되고, 수없는 입주민들의 처음에는 사소했던 불만과 그릇된 욕망을 교묘히 자극하면서 아파트 전체를 휩쓸었던 검은 바람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 개인이 글로 혹은 말로 시작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결국은 토네이도로까지 증폭되어 온 세상을 휩쓰는 동안, 그 바람이 지나가는 길에 심어져 있었던 작은 풀들과 나무들, 꽃들과 아름다운 곤충들은 과연 무사했을까? 상처받고, 피흘리고, 눈물흘리고, 죽고...그러지는 않았을까?


한 남자가 일으킨 검은 바람과, 또다른 한 남자가 일으킨 비뚤어진 바람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강한 사람, 권력있고, 배운 사람들 편에 서야만 할 것 같은 생각, 그걸 우리는 강자동일시(强者 同一視)라고 부른다. 약한 사람은 밟아도 되고, 나는 그래야만 강자편에 서는 것이 된다, 같이 밟으면 되니까. 우리는 이것을 약자혐오라고 부른다. 마치 지금도 일부 한국인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저지르는 노동현장의 인권유린 사태처럼. 얼마전에 보도된 사례처럼, 아무리 장난이어도 지게차에 사람을 묶고 운전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 안에 약자혐오가 광범위하게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그 아파트에서도, 심야에 남의 집을 침입한 젊은 남자가, 경찰이 와있는 상황에서도 손가락 V를 하고 활짝 웃으며 셀카를 찍은 것은, 우리들 안에도 누구나 약자혐오가 극대화되고 정당화된 끝에 분출되는 약간의 광기(狂氣)를 숨기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유대인, 외국인, 이방인과 집시, 소수자들, 그리고 그 중년 남자와 같은 고립된 나약한 한 개인...이들은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약자혐오의 단골 대상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다들 움직이는 대로 나도 움직이는 것, 다수의 편에 서야만 될 것 같은 생각, 자신만의 판단으로 사안을 분별하고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고 시끄러운 다수가 왠지 옳을 것 같으니 그 편에 끌리는 것, 우리는 이것을 동조강박 (同調 强迫)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면 이제는 다양성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된다. 흑백논리가 판치고, 중간 지대의 관용적, 객관적 의견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당연히 이어지는 것은 폭력적으로, 위압적으로 소수 의견을 억누르고, 짓밟으면서도 오히려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기괴한 자들이 출현한다.


그 중년 남자는 국회앞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 아파트에서 일어났던 일 두가지의 유사성을 보았다. 큰 토네이도이건, 작은 토네이도이건, 지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검게 휘감아 가며 조각내고 파괴하는 것은 같았다. 그것이 사람의 목숨이건, 가정의 평안이건, 어떤 공동체내에서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는 공동체성이건, 박살나는 것은 같았다. 그것은 주로 1920년대의 독일과 이탈리아를 붉게 물들였던 오래 된 생각들의 흐름이었겠지만, 불행하게도 2025년의 대한민국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흐름이었고, FASCISM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총구에 대항하던 Populist 들이 아주 교묘히 숨겨 휘두르던 피묻은 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비와 꽃을 좋아하는 그 중년 남자의 가슴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

오랜 시간 흙속의 깜깜한 어둠과 추위, 침묵속에서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탈피를 거쳐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나비"들의 이야기에 관한, 오래 전 누나가 읽고 그에게 건네 주었던 아주 노오란 표지의 책.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1.png

그래서 그 중년의 남자는 천변 산책길로 나가서 햇빛속을 걸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작은 나비들이 평화롭게 날아 다니며 오랜 부화과정을 이겨낸 기쁨을 노래하는 듯 했다.

그리고, 한 나비가 그에게 찾아왔다. "괜찮아, 그리고 이제는 다 괜찮아질거야, 웃어 봐 쫌."


(나비효과를 직접 겪어보니 (4)에서 계속)

이전 02화나비효과를 직접 겪어보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