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ity와 여성다움에 대한 착각
아마도 기상학자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 나비효과가, 이 중년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한 요인이 다른 요인을 촉발시키고, 서로의 상호작용 속에서 전혀 예상치 않았던 다른 요인을 생성시키는 복잡계의 대표적인 사례로 떠올랐다. 그것은 비단 물리적인 자연계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A)이 취하는 특정한 행동과 의지적인 작용이, 다른 사람(B)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 사람의 반응이 제3자(C)와 다수(A', B', C'.....)에게 전파되는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애초 A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은 원래 각각의 개별 요소들에서는 없었던 것이었는데 전체 차원에서는 너무도 선명히 창발 (Emergence)되는 부수적, 예외적 결과가 아닐까? A가 A'만 초래한 것이 아니라, AA, A'A', AA'등등으로.
마치 그 아파트에서 벌어졌던 사이버 공간상의 집단 린치에 가까왔던 중년 남성에 대한 공격이나, 실제 집에까지 찾아와서 위협하는 정도의 물리적 행위는 그 예상치 못했던 Emergence가 아니었을까?
마치 그 겨울밤, 국회에서 계엄 선포는 저지되었지만, 이후 끊임없이 신문과 방송, 유튜브 등에서 이어진 Far Right Extremist들의 선동과 관점의 왜곡은, 결국 한 달 만에 서부지법을 부수고, 불을 지르려고 하거나, 판사를 찾아서 테러하려는 식의 극단적인 폭력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두 사건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중년남자는 느꼈다. 그 행위의 주체들이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나선형으로 상승작용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 그것은 나비효과가 빠르게 극대화되어, 결국에는 토네이도의 파괴력으로 구현된 것인데, 불행히도 그것이 어디 미국 중서부의 평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멀쩡히 "사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아파트와 법원등에서 발생했다는 것.
중년 남자는 이 두가지를 면밀히 생각해 보다가, 그가 너무도 놀라서 더 깊이 살펴봐야 할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이 두 사건에 있었다는 것을 아프게 떠올렸다.
익명 단톡방에서 중년남자에게 지독한 욕설과 조롱을 되풀이해서 퍼붓던 한 여성 입주민이 사실은 그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상당히 독실한 크리스챤이라는 것. 매번 성경구절과 예배 관련된 내용을 프로필에 올리면서 본인이 두 예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성실한 엄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주 강조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소식.
중년 남자로서는, 기독교인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과, 엄마이면서 남들 안보는 곳에서 이런 짓들을 한다고?
서부지법에서 거의 폭동에 준하는 행위들을 저지른 자들중에 모 교회의 전도사이거나, 독실한 청년 교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도, 과연 기독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인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라면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가 그간 잘못 생각해 왔던 것은 없는가? 그의 생각속에, "여성"이 주는 막연한 이미지의 환상은 없었던가? 엄마, 누나들, 아내, 딸 모두와 지내본 중년 남자로서는, 본인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남성인 자신보다 여성들은 왠지 더 깨끗하고, 죄를 덜 지을 것 같고, 순수하고, 착할 것 같다는 그 아주 오래된 환상을. 엄마라면, 마땅히 생명들을 몸소 품어서 낳고 키우는 둥지라면, 깨끗하고 선해야 그 어린 생명들이 그 둥지에서 건강하고 멋진 성체(成體)로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는 당연히 여겨왔던 인식... 이 두 가지가 다 깨어지는 느낌에 중년 남자는, 뒤늦게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자신의 Christianity에 대한 급박한 재 점검, 갖고 있던 여성, 엄마라는 두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의 신속한 탈피. 이 두 가지가 당시 몇 달간 중년 남자의 산책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중년 남자는 40대 남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아마도 아버지일텐데.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이 불행한 나비효과가 아파트를 휩쓰는 걸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최고 권력자 부부는, 그들 자신이 초래한 엄청난 "부(負)의 나비효과" (이건 중년 남자가 제멋대로 붙인 사건명)에 대해서 과연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그 아파트에서도, 그 나라에서도, 그 최초 나비효과를 발생시킨 자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들로 다수의 범죄자가 양산되고, 그에 참여한 사람들의 개인적 삶들도 피폐화되고 있는데, 과연 본인들은 맘 편히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까?
Chrisitianity는 결코 Title이 아니다. 그건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설정하는 방향성이자, 실천지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다움이란, 모성이란, 그저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 생명과 탄생의 직접적 당사자로서 나 이외에도 다른 생명도 품을 수 있는 확장된 우주적 의식에 맞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두가지가 결합된 "Motherhood Christianity" (이 역시 중년남자가 자기 생각대로 붙인 이름일뿐)를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까?
그 중년 남자의 머릿속에서도 나비효과가 발생하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낳고, 또 그 생각이 다른 생각과 이어지며, 좀 더 큰 회오리바람이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 느지막한 저녁, 산책을 나선 중년 남자의 시선에, 지는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며 하늘을 가로질러 비치는 빛의 줄기들이 들어왔다.
그 속에서, 그는 한 음성을 듣는 듯 했다. "내 아들아, 괜찮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네게 허락한 것들이란다. 너는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는 작은 나비가 되거라. 내가 늘 너를 지켜 볼테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을까? 중년남자의 고민이 깊어져 간다....
(나비효과를 겪어보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