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릉천을 잠시 떠나며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하기

by 진성민

남들은 다 퇴직하거나 일찍은 은퇴까지 하는 나이에 오히려 새로 해외근무를 하게 되었다. 해외출장으로 몇 주 씩 머물러 본 적은 많이 있었어도 실제로 해외에 머물러 살면서 일을 해 본 적은 없다 보니, 약간은 긴장도 되고 새로운 도전에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독립한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이 장성해서 양육에 대한 부담이 없고, 단신 부임으로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아질테니 업무 외 시간에는 그간 배워 보고 싶었던 것들을 제대로 배우고 (예를 들면, 동영상 편집, 사진 공부, 더 다양하게 책읽기 등), 글도 더 많이 쓸 수 있겠다 싶어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것들도 떠오른다. 그 중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동네가 위치한 창릉천을 이제 당분간 떠나야 한다는 점이다. 입주 후 약 8년간, 새벽마다 창릉천 변을 산책하면서, 사시사철 보아왔던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이런 풍경들은, 계절에 따라 자연이 내게 선사해 주었던 일종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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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Cubic같이 느껴지는 삭막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살면서, 바로 걸어나오면 5분만에 이런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양쪽으로 뚝방길이 나 있어서, 그 위를 걸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때마다 다른 이 개울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눈을 즐겁게 했고, 새소리와 아카시아 향기, 온통 피어나던 나팔꽃과 이름모를 작은 꽃들, 물속을 헤엄치는 잉어들과 풀잎에 맺히다시피 깨어나던 수많은 달팽이들 모두가 내게는 친구들이었다. 흰눈 쌓인 개울가 마른 풀숲에서 먹이를 찾고 매일 매일 건재한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들판의 새도 먹이시는" 분의 손길을 느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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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아름다왔다. 그래서 매번 되뇌었다. "How beautiful they are His hands formed!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아닐까? 크건 작건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이 이 개울가를 흐르는 물과 풀밭에 기대어 사는 모습들, 때에 맞춰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다시 때에 맞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들을 나는 기억에 담아두려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내 고향 마을이 있는 곳, 북한산의 풍경도 눈에 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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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새벽 산책을 할 때 마다, 황홀한 여명으로 혹은 안개속에 쌓여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던 이 개울가에,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가는 곳은 물도, 공기도 여기보다 훨씬 안좋은 곳인데, 나는 어떤 풍경들을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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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양쪽 편으로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다. 벌써 내가 좋아하던 노을지는 풍경은 건설장비들에 가려지고 벌목된 숲이 없어지는 바람에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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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하나가 많은 뭇 생명들을 살게 하고, 많은 아름다운 풍경들로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작은 영감(Inspiration)들을 주고는 했는데, 이제는 당분간 떠나야 한다. 내 마음속에 이 모든 풍경들을 다 담아두고, 되새기며, 언젠가 다시 올 때까지 이제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풍경들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이 창릉천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흙위에서, 흙속에서, 물속에서, 개울위 하늘 모두에서, 계속 아름다운 몸짓으로 있어주기를!


눈 시리도록 푸른 겨울 하늘 바라보며, 다시 만날 때까지 安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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