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아대륙 (Indian Subcontinent)에서 살기
인생의 후반부에서 맞은 올 2025년이 어느덧 저물어간다. 내게는 여러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왔던, 너무도 힘들고 고된 한 해였던 것 같다. 내가 당분간 살아가야 할 주어진 새로운 땅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또 새로운 한 해와 새로운 도전의 장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연초에는 우리나라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으로서의 할 수 있는 부분을 나도 조금이나마 감당해 보고자 분투했었고, 한편으로는, 거주하는 공동주택에서 일어났던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여론조작과 선동에 의한 집단적 광기에 저항하느라 힘들었었다. 내게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내상과 과오를 남겼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 내재된 본질적인 악함 (evil이라기 보다는 vice에 가까운)을 다시 한 번 경험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역시도 인생의 필수적인 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부족함과 결핍, 오래된 마음의 상처들을 마주하면서, 성숙한 한 영혼이 되기까지의 멀고 먼 거리를 또 한 번 확인한 시간들.
5월에는 작은 누님과 이별하는 아픔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막상 마주하게 되는 슬픔은 결국 인간의 육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한한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은 얼마나 짧고 붙잡을 수 없는가 하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그럴수록,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만나게 되는 사람과 사건들을 더 소중히 여기고, 감사함으로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그외에도 바쁜 일들, 마음아픈 일들, 힘든 일들이 동시에 다가왔던 한 해.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도 있었지만, 거의 매일 새벽에 일어나 산책하던 집 옆 창릉천의 풍경들이었다. 변함없이 흐르는 개울물과,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굽이치는 능선들, 개울가에서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새들과 물고기들,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아카시아 꽃과 나팔꽃, 이름모르는 작은 꽃들, 그리고 매실과 살구열매가 주는 작은 기쁨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듯" 있었고, 나는 그 모습들에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갑자기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어 마주한 인도라는 나라. 낯설지는 않지만, 새로운 환경과 도전과제들을 안고 마주하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혼자 살면서, 녹록치 않은 과제들을, 많은 처음 만나는 이들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적쟎은 긴장과 가슴떨림을 준다. 내 그간의 경험들을, 어떻게 하면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들에 도움이 되도록 녹여내어, 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win-win이 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고민하고, 노력했던 대부분의 일들에서, 이제는 떠나서,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 땅과 이 사람들에게로 이끄신 것은, 그속에서 더 훈련되고, 배우고, 숙성되고, 온전해 지라는 부르심이 아닐까?
부르심에는 소명이 있다고 배웠다.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과 사유로, 이곳에 급작스레 Relocating시키신 만큼, 내게 주어진 시간과 만나게 되는 사람들 속에서, 분명 내가 열심을 다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는 내가 해야 할 업무일 것이고, 둘째는 섬겨야 할 사람들일 것이고, 셋째는 나 자신을 좀 더 훈련시키고 숙성시키는 일일 것이다.
아침에는 공터였는데, 어느새 저녁 무렵에는 파티장을 만들어서 흥겹게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을 본다. 그래, 맞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서로의 힘을 의지하여, 조금씩 무언가 만들어 나가면서, 서로에게 축제가 되는 그런 삶을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 저 짙은 안개와 어둠들도, 환한 빛 속에서 오히려 빛을 더 밝혀주는 배경이 되지 않는가?
인도아대륙의 나라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부탄, 스리랑카 등)과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후반부에서 좀 더 넓어진 시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올해는 이렇게 마감하면서, 또 한편 새로 시작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