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erial과 Labor가 빚어내는 조합
이제 인도에 온지 딱 3주가 지났다. 제조업체에서 신규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신규 거래처를 발굴하고, 품목을 확대할 수 있는 협의를 하고, 혹은 전혀 새로운 품목의 공급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마음이 바쁜 상황.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사전작업들도 많고, 공급처 당사자의 품성과 업무 스타일을 고려해서 미묘한 차이를 조율 (사실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기도 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내부적인 온갖 서류처리와 사업적 타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노력과 시간싸움들이 요구되기도 한다.
먼지가 뽀오얗게 내려앉고, 스모그에 시야가 가리워지는 출근길에서도 광활한 평지에 수없이 자리잡은 제조업 공장의 건물들을 본다. 아침이면 출근 인원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회사 정문을 지나면 아침 안개와 스모그 속에 정문을 통과하여 걸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불과 십여년 전 중국 심천과 동관 지역의 도로를 가득 메우던 컨네이너 트레일러들이 오버랩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예전에 널리 불리던 노래 "사계"의 노랫말,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당시 섬유/봉제산업의 첨병이던 미싱공장과 비슷하게, 24시간 돌아가는 생산라인에는 육중한 기계장비들이 굉음을 내고 가동되고, 로봇팔이 쉬지 않고 제품을 집어 들어 내려 놓는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섞여서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그 소리와 유압유의 냄새와 공장 특유의 기계장비가 내뿜는 약간의 열기는, 30여년 제조업체에서만 근무한 내게는 일종의 익숙한 신호와 박자처럼 들린다. 전자제품 공장의 다소 깨끗하고 쾌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기계/금속제품의 공장은 높은 데시벨의 소리와 쇠붙이들이 내뿜은 특유의 냄새, 그리고 절삭유나 윤활유들의 냄새와 어울려, 마치 축구경기장의 뜨거운 열기가 24시간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짧은 휴식시간에는 공놀이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참 다행이다 싶다. 노동이 인간의 모든 활력을 다 빼앗아 갈 정도는 아니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본다면, 휴식시간에 누워서 쉬는 사람도 있지만, 나름 기분전환을 위해서 신체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은 기계가 많은 부분을 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공기청정기 조립 라인에서 연속 120분 혹은 130분 노동을 하고, 10분이나 15분을 쉬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 끊임없는 긴장과 집중이 주는 몸과 마음의 피곤이 누적되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기에, 저렇게 나름대로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다행스럽게 보인다.
이들에게도 나름 소중한 일자리일텐데, 이것을 유지하고 계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무엇을 어떻게 잘 해야 할 것인가 돌아보게 된다.
아담 스미스 시대처럼 "토지, 노동, 자본"이 생산의 가능요소를 구성하던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기술을 넘어, 정보를 넘어, AI를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생산" 이라는 행위는 구체적인 인간의 행위와 지적 활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다 못해 로봇이 하는 동작 하나 하나도 사실은 그 공정의 구체적인 소요시간과 각도, 거리, 물리적 하중과 아울러, 공작 대상물의 처리 속도와 배치를 사람이 직접 설계해 주어야 경제성있는 산출물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보조적인 역할이던, 주된 역할이던, 혹은 설계자이던 수행자이던 사람의 노동은 당분간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왜 산업자본들은 계속 더 나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초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동아시아로,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이제는 더 서쪽의 인도로 계속해서 서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노동을 통해서, 결국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경제학 원론에서 얘기하던 소위 "효용"이 제공된다. 먹든 마시든 입든 쓰든, 결국 육신을 가진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바탕이 된다. 에덴동산에서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제공되었기 때문에 땀 흘려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 그 노동을 좀 더 가치있게 만들고,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그렇게 수천년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한국에서든 이곳에서든 노동은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존중받을 일이다. 소와 양을 잡아서, 고기는 먹고 가죽을 다듬어 옷과 가방과 신발을 만들어 내던 그 오래전의 노동처럼, 지금은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재료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서 더 나은 사용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것은 제조업의 본질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과정은, 수없는 엑셀화일들과의 씨름과,숱한 메일 교신과 전화와, 오랜 운전과 탑승, 긴장되는 미팅에서의 치열한 대화들의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조합들속에서 이뤄진다.
Material과 Labor의 조합뿐만이 아니라, Timing과 Decision의 조합, 기술과 정보의 정확한 조합, 그리고 배경으로는 기다림과 인내가 무대위의 길고 묵직한 커튼이 되어주는 제조업의 세계, 나는 그 한 구석을 구멍나지 않게 메꾸고 싶다. 이제껏 그 비슷한 시간들을 쌓아온 만큼, 더 단단하고 흠없는 Block맞추기의 한 조각이 되어서, 전체 그림판을 멋지게 꾸미는데 일조하고 싶다.
오늘도 인도 대륙의 어디에선가 밤 시간을 밝혀가며, 제품을 생산하고, 운송하고, 설치하고, 협업하는 수많은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제조업이라는 같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빛깔의 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