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짦은 단어가 준 여러 생각들
얼마전 어떤 글을 읽다가 "문송합니다" 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알아보니 "문과(文科)라서 죄송합니다" 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누구에게,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걸까? 아마도 문과생이라서 더 취업의 문이 좁아지다보니 부모에게, 혹은 직장에 입사해서도 상사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의 청년들이 있다는 것일까?
나는 실제로 이런 생각을 우리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사회에서 문과생에 대한 평가가 이과생에 대한 평가보다 단순히 전공지식의 분야에 따라서 시작부터 달라진다면 그것은 참 우려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나와 아내 모두 문과생이었고, 지금 자녀들도 다 문과생들이다. 그렇지만, 그 대학시절의 전공이 크게 나와 내 가족의 삶을 결정짓는 큰 변수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문과여서 죄송한 것일까? 산업사회, 정보화사회, 지식기반사회를 지나서, 이제는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기술우위의 사회가 되다보니, 노동력을 통한 생산이나 인간의 사유와 창작이라는 정신적 산출물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고, 상품화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의 산출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지식과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사회 전체가 경도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들이 점차 인기가 없어지고, 대부분의 취업기회도 기업에서 선호하는 공학계열에 많아지는 것은, 그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문학과들이 통폐합되고, 자연과학 계열 학과들도 취업이 잘되는 공학이나 의학과보다 입학기준 점수가 낮아진다는 통계를 보면서, 이러한 상황이 적어도 몇십년은 더 지속되겠구나 하는 약간의 씁쓸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불길"하다고까지 느끼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사람을 도구화하는 시선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일까를 전반적으로, 포괄적으로, 시간을 갖고 판단하기보다는, 전공과 경력만으로 얼마만한 효용가치가 있을지를 너무 빨리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또한 이과생들을 기능적 인간, 이윤창출의 도구로 수단화하는 인간소외의 또 따른 현상은 아닐까?
두번째로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를 너무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마치 공학계열의 지식과 사고(思考)만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가 그 속에 숨어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고대로부터 지식인들의 역할은 사실 세상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동력원이었다기보다는, 그 조타수와 방향타의 역할이었던 것일텐데,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 사고가 결핍된 사회라면, 그 방향을 올바르게 잡을 수 있을까?
세번째로는, 있을 수 있는 지식의 단절이 우려된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과격한 민족주의 혹은 배타주의, 지리교과나 지구과학 과목에서 배울 수 있는, 다른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지식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어학/문학계열 학과들의 수업들, 그리고 올바르게 생각하는 연습과 사고의 틀을 정립하게 도와주는 철학 등등. 인류가 수천년 동안 쌓아온 이러한 소중한 자산들을 지금 분위기로라면 그냥 AI에게 맡겨 놓고, 인간은 공학과 의학, 몇 몇 첨단 기술의 수행자로만 격하되지 않을지 우려할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의 경우를 되돌아 보면서 과연 이런 우려가 기우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한 소위 문과생이다. 경제학 수업 내용 중에는, 미시경제학에서 많이 쓰이는 미적분, 거시경제학에서 많이 쓰이는 시계열 분석, 의사결정과 조직의 최적운영을 배우는 경영과학 (Operatinons Research)에서 주로 많이 쓰이는 게임이론이나 행렬식 계산, 혹은 경제지표의 해석과 정책수립시에 긴요하게 쓰이는 확률과 통계 등 많은 수학적 기법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수리경제학이나 계량경제학 과목에서는 오히려 부전공으로 듣던 수학과 학생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한번도 경제학이 그냥 문과학문 중의 하나로 규정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학문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고, 공동의 성과물을 만들어 내는 쪽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닐까? 자본론을 쓴 칼 막스는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지만, 변증법에 능통한 엄청난 철학자이자 저술가, 막 태동한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비인간화와 폐해를 누구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했던 사회학자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우면서 궁금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사유했길래 이런 숨겨진 세상의 원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직도 명확한 답은 없지만, 적어도 이런 분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아주 다차원적인 각도의 고민들을 했었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고민과 모색의 결과들이 아주 복합적으로 상승작용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타고라스 역시 수학자이며, 철학자였으며, 영혼불멸과 윤회를 주장하는 종교사상가였다고 한다. 음악에도 역시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통섭의 시각, 다면적인 이해야말로,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인간의 삶에 유익하고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근본적 힘이 아닐까?
미술, 공학, 해부학, 건축, 수학등 다방면의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물리학, 수학, 천문학, 철학(신학)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아이작 뉴턴, 철학, 생물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들에게는 케플러의 법칙을 찾아낸 천문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천문학, 수학, 음악 이론, 철학 등 다방면의 업적을 남긴 요하네스 케플러 등 찾아보면 더 넓고 다양한 지식을 함께 공부하고 그 바탕위에서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업적을 남긴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교적 최근 인물로는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무선통신의 초기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교류(AC) 전류를 지금과 같은 전력전송시스템의 표준으로 만든 니콜라 테슬라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관찰하고, 기계류의 작동에 큰 관심을 가졌던 호기심많은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분의 이름은 지금은 대표적인 전기자동차의 상표명이 되었다.
※ 그림 출처: Wikipedia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너무 세상을 일률적인 잣대위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제대로 이해되고, 의미있는 기여도 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사안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숫자의 정확성과 논리의 정합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체 구조의 타당성과 논리의 방향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경제정책을 집행할 때도, 개별 사안만 놓고 보면 숫자가 주는 지침이 명확하지만, 전체 사안을 놓고 바라보면 다른 고려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 그것은 국내의 정치사회적인 상황, 전 세계적인 경제환경, 지정학적 요인, 그리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염두에 둔 장기적 비젼 등 비단 한 과목의 공부만으로는 불가능한, 아주 복잡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은, 단순히 어떤 학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금방 획득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과 인간을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긴 세월 후에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문과생이라고 해서 "문송합니다" 라고 할 것이 아니라, 문과생 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관점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과생들도 수학과 물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도 음악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 켜고, 신학적 고민까지 하는 이들을 보아왔다. 단순한 단어 몇 개로 젊은이들을 틀을 지우는 것도 안될 것이지만, 스스로 그 속에 갇혀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학신입생 때는 1년간 전공을 정하지 않고, 통합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여러 과목을 배워보고 난 후 결정하는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 내 관점에서는 그런 시도가 바람직한 것 같다.)
※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열린 전통음악회에 간 적이 있었다. 뒤로 보이는 근정전의 정확한 대칭과 아름다운 구조 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각 다른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들이 곳곳의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그 울림이 참 아름다왔다. 이렇듯이, 근정전을 축조하는데 쓰였을 수학과 건축학, 미술과,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악기를 만든 장인의 정교한 노동과, 고대 기록을 고증해서 연주자들의 복식을 만들었을 의상가의 예술가적 안목과, 옛 음악을 편곡하여 새롭게 재해석한 공연 감독 등의 온갖 지식과 경험이 한 자리에 어우러진 멋진 무대!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다. 아주 복잡하고도 정교한 지식과 경험의 총합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