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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담한 편지 Sep 28. 2024

내 인생 최초의 거짓말 유포자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생애 최초의 거짓말 유포자는 아빠다. 아빠는 내가 어린이였을 때, 소박한 거짓말을 참 많이, 그리고 잘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잘 울던 나를 어르는 데 필요한 거짓이었다.      


유치원생이었을 때, 난 아침마다 울며 엄마, 아빠를 애먹였는데, 바로 TV 때문이었다. 당시 어린이 TV 프로그램의 양대 산맥이었던 <TV 유치원, 하나둘셋>과 <뽀뽀뽀>의 방영 시간이 겹쳐 하나둘셋을 보면 뽀뽀뽀를 놓치고, 뽀뽀뽀를 보면 하나둘셋을 놓치는 상황이 유치원생의 나를 절망케 했다. 당시에는 세상이 끝나는 것만 같은 슬픔이었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유치원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다. 어떻게든 동시에 두 프로그램을 같이 보고 싶어 채널 두 개를 계속 돌려가며 욕심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 매번 똑같은 거짓말이었다. 


"소라야, 아빠 친구가 MBC 방송국 사장인데, 아빠가 전화해놓을게. 뽀뽀뽀는 나중에 재방송 해달라고. 그러면 지금 하나둘셋을 보고 나중에 뽀뽀뽀는 재방송으로 볼 수 있잖아"     

어린 시절의 나를 달래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그러면 그제야 나는 서럽던 마음을 진정시켜 차분히 자리를 잡고 하나둘셋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뽀뽀뽀가 재방송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면 금방 들통날 아빠의 거짓말에 나는 매일 속아 넘어갔다. 아빠가 그 후로 어떻게 뽀뽀뽀의 재방송에 관해 둘러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도 거짓말을 잘했을 것이다. 엄마의 말로는 아빠가 옛날부터 말재주 하나는 좋았다고 한다. 


초등학생 땐 엄마 아빠가 노래방을 했다. 나는 주말마다 엄마, 아빠의 노래방에 놀러 가 혼자 노래를 부르곤 했다. 

20년도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 날의 나의 선곡은 조성모의 가시나무였다. 경건한듯하면서도 단조롭게 시작되는 멜로디에 말하듯이 담담하고 가냘프게 부르는 조성모의 보컬이 특징인 노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이런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노래를 이해하려 애쓰며 최선을 다해 노래했다. 당시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은 가수 아니면 선생님이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 역시도 가수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꿈을 위해서 허투루 노래 부르는 일은 없었다. 조성모의 보컬을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완곡했고 대망의 점수가 공개되는 시간이었다.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래방에서 0점을 받았다. 모니터 화면에 0이라는 동그란 숫자가 2개 찍혀있었다. 굴욕적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굴이 분명 시뻘개졌었을테다. 풀이 잔뜩 죽은 채로 노래방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가서 사실을 말했다. “아빠, 나 노래 불렀는데 빵점이 나왔어.” 아빠는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점수 나올 때 0이 한 개였어, 두 개였어?”

“0이 두 개였어.” 나를 격려하기 위한 아빠의 거짓말은 또 시작되었다. “0이 1개면 진짜 빵점인데, 0이 2개면 그거는 1,000점이라는 거야. 기계에 숫자를 다 표시할 수 없어서 그렇게 나오는거야. 소라 노래 진짜 잘했나보네.” 졸지에 나는 100점 만점에 1,000점을 맞은 사람이 되었고, 나는 또 그 말에 속아 넘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대기도 했다. 

나 노래방에서 1,000점을 받았다고.      


아빠의 화려하고 성실했던 거짓말은 이제 끝이 났다. 서른셋이나 먹어버린 딸에게는 이제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요 근래 했던 아빠의 거짓말이라곤 사료를 먹지 않는 우리집 강아지 앞에서 사료를 아빠가 다 먹어버린다며 가짜고 먹는 시늉을 하던 모습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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