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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라이브러리 Jan 06. 2023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ISFP 동생 취미 #1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2.11.17.~2023.2.26.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2.11.17.~2023.2.26.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2.11.17 ~ 2023. 2.26.




클래식하고 화려한 뮤지컬의 대명사. 매 순간 아름답고 정교한 번스타인의 선율.


국내에서 15년 만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공연 중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듯한 군무와 합창, 20인조 라이브 밴드 선율이 어우러지는 넘버들 속에서 ‘바로 이래서 뮤지컬이 매력적이지!’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던 작품이다. 주옥같은 명 장면과 명곡을 훌륭한 퀄리티로 눈앞에서 실제로 보고 듣는 동안 느꼈던 뭉클함과 울컥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고은성 토니 “내 눈엔 너뿐이야, 마리아”

쇼노트

원작자가 고토니를 보았다면 무척이나 흡족하지 않았을까. 작품을 만들며 마음속에 그려보았을 토니가 무대에 그대로 실현된 듯한 느낌이다. 고은성배우는 웨스트사이드를 휘어잡다가 마음 잡은 지 불과 얼마 안 된, 이제야 갓 철이 들락 말락한 아메리칸 10대 청년 토니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표현한다. ‘나 또 사고 쳐서 인생 꼬이기 싫어’,라고 툭 던지는 한 마디와 몸짓에서, 과거에 뜨거운 혈기에 날뛰다가 얼마나 큰 궁지에 빠졌었으며,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르는 시간 동안 얼마나 후회를 했었는지를, 그렇지만 또 얼마나 쉽게 사고 치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불같은 성향의 청년일지를, 머릿속에 펼쳐지게 한다. 그러니 마리아에게 불같이 빠져버리고, 또 1막 내내 다시는 사고 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음에도 절친한 리프의 죽음에 불같이 눈이 뒤집혀 칼을 꽂게 되는 것이 고토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 된다. 1막의 유명 넘버 "Maria", "Tonight"에서는 가성과 진성을 넘나들며 마리아에 대한 설렘을 충분히 전달하고, "Tonight Quintet"에서는 묵직하고 안정적인 저음으로 5 중창을 뚫고 나가며 이 스토리의 중심에는 토니가 있음을 다시금 확실하게 해 준다. 사랑에 푹 빠져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사춘기 갓 지난 청년의 모습부터 본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오직 마리아가 살아있음에만 안도하는 엔딩씬까지, 고토니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꽉 채워간다.



이지수 마리아 “절망의 끝에서, 난 사랑을 할 뿐”

쇼노트

꾀꼬리라는 별명의 이지수배우답게, 어려워 보이는 마리아 파트의 고음을 매우 안정적으로 표현해서 넘버들을 듣기에 아주 편안하다. 이지수배우가 표현하는 마리아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등장하는 철없는 십 대 아이들 중에서는 그나마 좀 성숙하고 야무진 캐릭터. 동갑 친구들 무리 중에서 누나 또는 언니의 포지션으로, 잘 챙겨주고 조언해 주고 중요한 결정을 돕는 그런 친구 같다. 그래서 평소 부모님 말 잘 듣던 착한 성격의 지수마리아가 생애 첫 댄스파티에서 본 (극 중 아니타의 말을 빌려) ‘좀 귀엽던’ 토니에게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평소에 얌전하다가 크게 사고 치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지조 있는 모범생 같은 모습. 지수마리아는 위태로운 토니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현실적인 도움을 줄 것 같은 야무진(토니가 멀리 도망가자고 했을 때, 적금통장 싹 챙겨서 나올 것 같은..ㅎㅎ) 마리아였다. 그래서 토니의 죽음 이후 지수마리아가 표현하는 슬픔이 더욱 애잔하고 안타깝게 와닿는다. 도피에만 성공했더라면, 세상이 토니와 마리아를 그냥 가만히만 내버려 두었더라면, 충분히 야무진 마리아가 똑똑하게 토니와의 삶을 잘 꾸려나가며 닥 아저씨의 빚도 착실히 갚고 알콩달콩 지냈을 것 같아 비극적 결말의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김소향 아니타  “이제 내 집은 맨해튼, 난 절대 떠나지 않아”

쇼노트

김소향배우에게 아니타는 딱 맞는 옷이었다. 평생 아니타로 살아온 것만 같은 향니타. 극 중 보이는 아니타의 성격은 강하고, 적극적이고, 개방적이고, 열정적인데, 향니타는 그러면서도 시월드 집안의 완전한 신임을 얻고 기꺼이 장녀 역할을 도맡아 베르나르도 가족 전체를 보듬어 주는 특별한 존재 같았다. 가족 사랑이 지극한 장남 베르나르도는 타지 정착으로 힘든 시기에 향니타가 자기 가족을 살뜰하게 챙기니 더욱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 것. 그런 향니타이기에, 베르나르도의 죽음 이후 마리아와 서로 대치하듯 부르는 듀엣 “A Boy Like That/I Have A Love” 에서의 처연함과 절절함이 더욱 돋보였다. 향니타에게 마리아는 남자친구의 여동생 이상의 존재이고, 그렇기에 마리아의 처지도, 본인의 처지도 가슴 찢어지게 안타까운 복잡한 심경이 이 넘버를 통해 너무나 슬프게 잘 전달되었다. 게다가, 아니타-베르나르도는 꽉 막힌 책임감으로만 뭉친 장남-장녀 커플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뜨거운 커플이라는 것이 극 내내 너무나도 잘 표현되었다. "Mambo" 군무 중 등장부터 퇴장까지 두 배우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서로를 챙기고 몸짓을 맞추는 장면만 보아도, 푸에르토리코에서부터 뉴욕까지 어렵고도 기나긴 시간을 함께하며 치열하게 사랑하고 싸우고 또다시 뜨겁게 사랑했을 아니타와 베르나르도의 서사가 저절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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