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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선 Jun 18. 2024

HOA가 없는 집을 가진 자, 자유와 책임을 누릴지어다

우리 집에는 HOA(Home Owner’s Association)가 없다. HOA는 단지를 관리하기 위한 단체인데, 한국의 아파트를 생각하면 관리사무소 같은 것이다. 단지의 공공 이익을 위해 HOA는 매달 일정금액을 단지의 집주인들에게 부과하고, 집주인들은 HOA의 규칙과 제약을 존중해야 한다.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HOA가 부과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각 HOA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단지의 아름다움을 위한 규칙과 제약이 꽤나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앞마당 관리에 대한 제약인데, 대부분 잔디를 잘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잡초가 많이 생기거나 잔디가 웃자라면 경고를 보낸다. 미국의 주택들이 하나같이 정돈된 잔디를 유지하는 데는 이런 HOA의 역할이 크다.


HOA가 없는 단지들의 집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집을 관리한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각각 집들의 앞마당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앞마당에 잡초와 야생화가 무성하게 자란 집들도 있고, 큰 캠핑카를 주차해 놓은 집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엉망진창인 것은 또 아니다. 모두들 기본은 하는 느낌이랄까? 동네를 거닐다 보면 최악의 앞마당은 바로 우리 집이다. 그건 내가 지금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집에 HOA의 제약이 없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뭐든 해볼 수 있는 기회.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괜찮다. 애초에 이 집을 매매할 때부터 앞마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본만 간신히 챙긴듯한 집이었다. 둥근 관목 두 개가 다이닝룸의 창문을 가리고, 네모난 관목 하나가 왼쪽의 아이방 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온 여름에 앞마당은 그저 초록이었다. 초록 관목들과 초록 호스타, 초록 데이 릴리. 그나마 데이릴리의 노란 꽃이 유일한 포인트였다. 앞마당의 잔디는 반 정도가 이끼로 뒤덮여 있었고, 드라이브웨이의 콘크리트는 초입이 많이 부서져 있었다. 가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공간에는 무궁화가 세 그루, 작은 참나무와 셀러리배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수국이나 호스타가 있었지만, 해를 잘 못 받았는지 비실비실했다.

집 양 옆과 뒷마당은 이미 잔디가 다 죽어 이끼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첫 해에는 둘째 아이가 너무 어려 조경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잡초를 관리하기 위해 잔디관리 회사와 계약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제초제를 뿌려주는 간단한 플랜.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앞마당의 잡초가 관리되지 않았다. 잔디 사이사이에 큼직한 양배추 같은 잡초들이 점점 늘어났다. 약을 뿌린 후 2-3주는 지켜봐야 한다고 해 3주 차에 연락하면, 어차피 1주일 뒤 관리하는 날이니 더 센 약을 뿌려주겠다는 식으로 3달이 지났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잡초들은 그들의 영역을 점점 넓혀갔고, 안 그래도 비실거리던 잔디들은 말라죽어갔다.


옆집 아저씨와 견적을 보러 왔던 조경 전문가, 그리고 잔디관리회사까지 하나같이 우리 앞마당의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잔디가 깔려서 관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버뮤다 종은 해가 쨍쨍 비치는 환경을 선호하는데 우리 집은 구석구석 그늘이 지고, 흙도 건조하고 영양분이 없었다. 조경 전문가는 조지아라는 종의 잔디를 판으로 사서 까는 것을 추천했다. 하늘하늘한 잔디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주택에 최적화된 잔디라고. 하지만 견적이 15,000불이나 나왔다. 잔디관리회사는 현 잔디 위에 페스큐 잔디 씨를 덧뿌리는 것을 추천했다. 판으로 까는 것보다 균일하지 않게 깔릴 가능성이 있었지만, 자기들이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리해 주겠다고.


잔디관리회사를 믿을 수 없었던 나는 혼자 고민을 시작했다. 잔디는 친환경적이지 못하다. 해가 쨍쨍한 한여름에는 잔디가 마르지 않게 이른 아침에 물을 주어야 하고, 잡초 관리를 위해 계속 화학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 기름을 사용하는 잔디깎이기계는 탄소배출의 주범이다.

미국에서의 내 집을 상상했을 때, 나는 균일하고 진부한 푸른 잔디를 상상했나? 확실히 아니었다. 비록 식물을 키워본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꽃이 많고 색이 다채로운 정원을 꿈꿨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난 후에 환경에 관심이 더 많아지면서, 더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민하고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잔디를 깔아야 할까? HOA도 없는데, 내 마음대로 친환경적인 앞마당 조경을 실험해 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날로 나는 틈틈이 구글에 친환경적인 조경 아이디어를 검색하고, 필요한 책들을 빌리고 구입했다. 조지아의 월별로 정원 관리법을 알려주는 책과 기본 조경 디자인 책, 친환경적 조경을 위한 책 등. 유익한 정보들이었지만, 미국집 초보자이자 식물 기르기의 기본도 모르는 내게는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손톱 사이에 흙이 끼어본 적이 없는 나인데, 처음부터 너무 각 잡고 공부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넓은 앞마당의 잔디를 다 대체하면서 꽃을 심으려면 식물 종류도 잘 알아야 하고 디자인 감각도 좋아야 하며 또한 판으로 잔디를 깔만큼, 아니 그보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 정원용 돌로 앞마당의 구획을 나누어 디자인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이들이 놀기에는 그냥 풀이 좋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더 자연적이고 제멋대로인 듯 보이는 조경 스타일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기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잔디관리회사의 기본 잡초 관리 서비스부터 해지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일 년 정도 지켜보면서, 우리 땅에 어떤 잡초 씨앗이 숨어있다 발아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잔리관리회사의 기본 잡초 서비스는 전혀 아무 효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초제를 끊기 무섭게 온갖 종류의 잡초가 자라기 시작했다. 양배추처럼 생긴 잡초, 클로버같이 생긴 잡초, 작은 갈대 같은 잡초 등. 그나마 버티고 있던 잔디들은 잡초에게 밀려 죽어갔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앞마당의 잔디가 거의 죽었다.




정원에 드문드문 심어져 있는 식물들을 확인하니 그중 무궁화와 셀러리배 나무가 침입종이었다. 하루 날 잡고 남편과 다 뽑아 버렸다. 아내가 정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고단한 것은 남편이었다. 거름과 흙, 멀치를 사다가 관목들이 있는 구역에 뿌려주었다. 에지스톤을 몇 백 개 사서 집 주위를 둘렀다.  

그 와중에 뒷마당에 작은 텃밭도 만들었다. 텃밭을 만들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며느리를 위해, 손주들을 보러 오신 시부모님이 두 손을 걷어 부쳤다. 뒷마당에 그나마 빛이 들어오는 곳의 땅을 고르고 영영가 있는 흙을 섞었다. 벽돌로 구역을 나누고, 방울토마토와 고추, 상추를 심었다.

아이가 찍은 방울토마토


시부모님은 오실 때마다 정원에 꽃도 심어 주었다. 처음에는 국화를, 다음에는 샤스타데이지와 아가판서스를, 다음에는 무화과나무와 블루베리를.

척박한 토양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그 꽃들은 처음 심었던 때보다 더 작고 초라해졌지만, 매년마다 다시 꽃을 피워 정원에 색을 더했고 나는 그때마다 조금 더 행복해졌다.




이 년의 심사숙고 후 결정했다. 잔디와 잡초를 모두 죽이고 야생화 시드 믹스를 뿌리기로. 식물종을 일일이 골라 구역을 나눠 심으면 좋겠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일단 앞마당의 잔디를 꽃밭으로 바꾸고 작은 구역부터 서서히 정원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드 믹스를 뿌리기 전 앞마당을 준비해야 했다. 먼저 잔디와 잡초를 죽이는 라운드업 제초제를 뿌렸다. 한 달 간격으로 계속 생겨나는 잡초를 제초제를 써서 죽였다.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은 넓은 앞마당을 검은 비닐로 가려 햇빛을 차단해 잡초를 죽이는 것이다. 3주가량 덮어놓았다가 거두어 2주 정도 두면 땅 속의 잡초 씨가 다시 발아하여 자란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여 땅 속의 잡초를 최대한 비우는 것이다. 그렇게 큰 비닐을 구하는 것 자체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왕 잡초를 모두 죽여야 한다면 화학제품으로 빠르게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식물이 없는 땅은 햇빛과 비에 영양이 다 쓸려내려 가고 잡초가 더 자라기 쉬운 환경이 된다. 토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클로버나 한해살이 식물들을 심어두어야 한다. 그럴 여력이 안 되어서 그냥 두었다.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이번 5월 말에 마지막으로 제초제를 뿌렸다. 강한 제초제라 3개월 후에 식물을 심을 수 있다고 해서 가을까지는 이제 비워둘 예정이다. 그리고 가을에 토종 야생화 시드 믹스를 뿌릴 예정이다. 마른 흙에 영양가 있는 흙을 섞고 갈퀴질을 해서 일일이 손으로 씨를 뿌려야 한다.




잡초와 이끼가 무성하다, 이제는 흙이 휘날리는 빈 부지로 앞마당을 두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은 HOA가 없기 때문이다. 야생화가 무성하게 자랄 앞마당을 계획할 수 있는 것도 HOA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자유를 최대한 누리면서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집으로 만들어야지. 우리의 시골스타일 단층집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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