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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선 Jun 11. 2024

안락한 우리 집 만들기

이사 계획은 단순했다. 이삿짐이 많지 않으니 우리가 직접 다 포장을 하고, 내 사촌 형부와 남편의 회사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재활용하는 박스를 중고거래로 구할 수도 있었지만, 벌레가 옮겨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여 홈디포에서 새 박스로 구입했다. 2주 동안 두 아이를 돌보는 틈틈이 이삿짐을 쌌다. 구석구석에서 계속 나오는 잡동사니들을 포장하며, 인간에게는 왜 이렇게 물건이 많이 필요한 것일까, 새삼스럽게 경탄했다. 이사할 때마다 매번 겪는 일이면서.

아파트 렌트를 할 때, 우리가 제대로 구입한 것은 커다란 원목 식탁과 거울이 달린 서랍장, 그리고 침대였다. 코로나 시대라서 뭐든 부족해 재고가 없던 때였다.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것으로 고른 것들이라 디자인에 통일성이 없었다. 회사 동료가 안 쓰는 새 제품이라고 준 싸구려 텔레비전 받침대, 작은 아파트에 맞춰서 산 작은 소파 등 이사 갈 때 버리고 가고 싶은 가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이사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아직 좋은 가구를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되기 전까지는 마구 사용할 수 있는 값싼 가구가 제일이라고 했다. “생각해 봐. 너 어릴 때 쓰던 가구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 없잖아?”

결국은 뭐 하나 버리는 것 없이 그대로 가지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달리기의 출발선에서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매단 것처럼, 언젠가는 버리게 될 싸구려 가구들이 무거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전의 집보다 거의 2배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오니, 짐을 다 풀어놓아도 공간이 많았다. 첫째 아이는 넓은 거실을 끊임없이 뛰어다녔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첫 집은 구매부터 단장까지 타협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사 온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의 욕구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한다. 당장 리모델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테리어의 기본은 청소와 정리이다. 남편과 나는 아무리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도 집 정리를 마치고 잔다. 누군가는 그런 강박을 내려놓아야 집안일, 육아,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그건 정말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막 잠자리에 눕히고 드디어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집이 단정하고 깨끗해야 비로소 쉬는 기분이 든다. 안락하고 평온한 우리 집.

많지 않은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았다.

이케아에서 작은 키친 캐비닛을 구입해 좁은 부엌의 수납공간을 늘렸다. 작은 팬트리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팬트리 문에 수납용 바구니를 사다 달았다. 그렇게 부엌 살림살이들은 몇 번씩 자리를 옮겨가며 최적의 자리를 찾아갔다. 예쁜 그릇 세트는 후일을 기약하며, 이케아와 코스트코에서 사 온, 깨져도 마음이 크게 아프지 않을 도자기 그릇들로 선반을 채워 넣었다.

아이들이 어린 집에 이케아는 얼마나 필수적인지! 집 곳곳이 이케아의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졌다. 아이들의 장난감 수납함부터 다이닝룸의 사이드보드, 나의 책장과 커피테이블.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바꿔야지, 하는 가구들은 모두 이케아에서 구입했다. 이 가구들은 나름 서로에게 잘 섞여 들어가 조잡하지 않은 우리 집의 풍경이 되어주었다.

그다음으로는 자잘한 수리들을 한다. 너무 오래되고 불편한 수도꼭지들도 새것으로 바꾸고 (20년 동안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는지, 나사가 다 삭아 있고 파이프들은 같은 제품을 구할 수가 없어 대체해야 했다.), 아이들이 자꾸만 뜯어내어 여기저기 구멍이 생겼던 얇은 블라인드는 두껍고 튼튼한 것으로 대체했다. 남편은 자잘하지만 은근 기술을 요하는 이런 수리들을 할 때마다 불평했지만, 나는 우리 손으로 집을 수리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구석구석 우리의 손때가 닿아 더 특별해지는 우리 집. 부엌의 세면대 실리콘도 새로 발랐다. 비록 얼룩덜룩해서 다시 해야 할 것 같지만 설거지할 때마다 우습다. 이쪽에는 더 짜이고 저쪽은 너무 얇게 짜인 것이 귀여워서.

마지막은 식물이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작은 식물들을 집에 들여놓는다. 두 생명부터 좀 잘 키우자는 남편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홈디포나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식물 섹션을 둘러보고 식물 인테리어 SNS와 책들을 살핀다. 초보 식집사여서 죽인 식물이 더 많아 지금 살아있는 식물은 산세베리아와 스파티필룸 정도다. 해가 잘 들지 않은 집이라 식물을 고르는데 신중해야 한다. 그래도 드디어 2년 만에, 올해 스파티필룸은 하얀 꽃을 피웠다.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틈틈이 식물을 들여와 집을 초록초록하게 꾸미고 싶다. 식물에 대한 나의 열망이 강해지는 데는 넓은 앞마당도 한몫한다. 정원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미니멀리스트+청소/정리+식물 (feat. 이케아)로 우리 집의 인테리어 방향이 잡혔다. 아마도 이사를 나갈 때까지, 이 집은 지금의 모습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유지될 것 같다. 아마도 여윳돈을 좀 모으게 되면 안방 화장실만 리모델링을 하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샤워부스부터 당장 바꾸고 싶지만,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충동을 억누른다.



올해 초부터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둘째를 데리고 출퇴근을 하지만, 8월 새 학기가 시작하면 둘째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다. 온 가족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집을 생각한다. 정리하고 청소하고 단장한다.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집이 될까를 고민한다. 인테리어 SNS를 훑어보고, 가구들을 구경하고, 내가 원하는 집은 어떤 분위기인지를 생각한다. 주말이 되면 남편과 여기저기 집을 손본다. 매달 집수리 및 관리 비용을 따로 책정해 모아둔다.

이 집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값비싼 식물을 다루듯이, 나는 이 집을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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