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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어린신부에서 원더우먼으로

by 우리의 결혼생활


TV나 핸드폰 속에는 잘 갖춰진 외모에 바쁜 일상을 멋지게 소화하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거울 속 나는 늘어진 티셔츠에 부스스한 머리, 베이비로션을 나눠 바른 하얀 얼굴과 눈 아래 내려앉은 다크서클로 흡사 ‘크리스마스의 악몽’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닮아 있었다.


출산 후 몸의 변화는 컸다. 호르몬 변화로 체형도 전과 같지 않아 임부복을 겸한 편안한 옷을 주로 입게 되었다. 육아를 하며 고가 화장품이나 헤어케어 제품도 아기에게 적합한 성분인지 따져야 했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어린신부인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정말 다시 하이힐을 신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옷장 속 원피스에 맞는 색조 화장도 하고 멋지게 놀러 다닐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을수록 우울해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길지 않아야 했다. 실제로 자유로운 외출과 풀 메이크업은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출을 하려 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수만 가지나 되었다. 자연히 육아맘의 스타일링으로 돌아가야 했고, 바깥 외출은 아기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에 늘 여러 조건을 잘 계산해야 했다. 외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기가 백일을 지나야 좀 가능해졌다.


그전까지는 산후의 몸을 추스르고 아기의 면역을 높이는 시간이었다. 머리카락은 생각보다 많이 빠졌고 체력도 달렸다. 이런 이중고는 산후의 기본 옵션이다. 이 때문에 우울감도 들곤 했는데, 이 시기는 다방면으로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시기였다.


나는 여자로 살고 싶은 어린 엄마였다. 아기가 첫 돌을 지난 후부터는 아기를 꾸미는 재미와 함께 나 자신도 꾸미는 즐거움으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옷을 갈아입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대단한 체력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멀티플레이어 옵션을 추가하셨다. 아기와 나 자신도 꾸미고, 청소하고, 매번 다른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영어 수업도 아기와 함께 하고,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며 육아 서적을 암기하듯 실력을 발휘했다.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아이에게 모든 것을 잘해주고픈 엄마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름다운 젊음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주변에서 어떻게 산후 관리를 했느냐고 묻곤 했다. 체중 관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리우드 여배우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운동을 했겠는가. 열정적인 집안일과 육아 활동이 전부였다. 가끔 실내용 자전거를 이용했지만, 땀을 흘리며 청소하는 즐거움은 또 다른 취미 생활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을 놓치고서 무엇을 잡은들 즐거울까? 엄마가 되는 일만큼이나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모든 육아 서적에는 아기를 위한 일은 나와 있지만, 엄마가 된 후 여자로 살아가는 이 세상의 아름다운 엄마를 위한 생활 지침은 없었다.


어디서든 스스로 만족을 줄 수 있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자기만의 분야를 놓쳐서는 안 된다. 비단 외모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나에게는 외적인 부분도 큰 영역이 되어 놓치지 않았지만, 내적으로도 책을 보거나 영어를 공부하는 등의 노력을 놓치지 않았다.


영화 속 어벤저스가 세상을 구한다면, 가정에서 엄마는 가족을 구한다. 가정의 평화는 여자의 역할이 큰 것 같다. 사회에서 일과 집안일의 중요도가 다르겠지만,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내부적인 일들은 안주인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신부에서 이제는 원더우먼이 된 것 같다. 모든 일들이 경험으로 쌓이고 능숙해졌다. 이전의 육아 전쟁을 다시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문이 열렸다. 아이들의 사춘기는 조금 겁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은 늘 위대하다. 특히 모성의 힘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


어린신부는 비로소 원더우먼이 되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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