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에 행복, 아니면 다시 고생
고생 끝에 행복, 아니면 다시 고생(樂/落, 즐길 락/떨어질 낙) 어느 쪽이 맞을까?
“시간이 약이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리는 이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시간은 그저 흐르기만 할 뿐,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봉사 삼 년”이라는 말이 있었다. 고된 시집살이 문화를 상징하는 이 말은 현대사회에서 구시대적 유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애할 때는 크게 작용하지 않던 유교사상이 결혼 후에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역할과 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고생: 두 가족을 잇는 다리 되기
결혼생활은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다. 양가의 가족을 이어주는 일이며, 가문 간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나는 아이를 너무 좋아했다. 가족이 많았으면 해서 아이 셋을 갖고자 했고, 용감하게도 그 꿈을 이뤘다.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오순도순 웃으며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생은 당연하게 따라왔다.
결혼 후 가장 큰 혼돈은 시집과 친정을 공평하게 잘 모시는 일이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종종걸음 치면서도 양가 부모님께 매일 세 번씩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워낙 친한 사이였고, 마치 한 번을 거르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의무이자 의리라고 생각하며 효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하지만 자주 통화하면 오해도 생긴다. 매일이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 생각과 의견으로 일을 진행하던 독립적인 삶에서, 모든 일에 상의가 필요한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내 계획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집안 행사가 우선이 되면서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부터가 서막이었다.
이것은 마치 혼자 계획대로 공부하다가 그룹스터디를 위해 모두의 능력에 맞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그 모든 일을 지켜보는 선생님이 있다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명절이나 생신처럼 다 같이 모이는 상황에서는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익혀가야 했다. 이 모든 일이 시험의 연속처럼 느껴졌지만,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 이사를 가도 그 지역을 탐색하고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우리는 분가를 했지만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못했다. 양가 부모님이 근교에 살았고 잦은 통화 때문에 어른들의 의견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더 잘 정착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장단점이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서야 진짜 결혼을 했고 가족이 된 것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 혼인신고를 하고 등본상 일원이 된 것을 느꼈다면,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을 때는 정말 큰 행복과 소속감을 느꼈다.
한 줄기 나뭇가지는 쉽게 휘어지고 꺾이지만, 여러 겹의 나뭇가지는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나는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갈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나를 가장 안식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하는 멘토 그 이상이다. 부딪힘이 있고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사랑으로 덮어졌다. 이것이 고생 끝에 온 락(樂), 즐거움이다.
두 번째 고생: 육아라는 전쟁
아이를 키우며 가장 쉽지 않은 일은 피곤한 컨디션으로 길고 긴 육아전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외출하기도 어려운 신생아 시기에는 더욱 조심할 수칙이 많아서 외출하기가 겁났다. 예방접종을 위한 외출에도 아기수첩이나 영유아검진 일정을 미리미리 확인해야 했다. 스케줄을 기록해 놔야 잊지 않고 챙길 수 있었다.
때로는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양가 어른을 뵈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기가 아프면 엄마는 같이 아픈 컨디션이 된다. 밤새 병간호를 했거나 마음이 쓰여서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엄마로만 생활할 수는 없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 한다. 학교에서 시험 기간에 아프다고 시험을 보지 않으면 성적이 엉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적당한 선에서 협의는 필요하지만, 자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는 어느 집단에나 필요한 덕목이다.
엄마는 손 두 개로만 일하지 않는다. 가상의 네 개 정도의 손과 통찰력을 가지고 우선순위에 맞게 상황 판단을 하면서 일한다. 엄마는 그래서 위대하다. 일인다역을 하는 만능인이 바로 엄마다.
물론 아빠도 위대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 모든 일에 손의 양면처럼 엄마와 아빠는 함께 움직인다. 둘이 하나처럼 나뉘지 않아야 어디서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락(樂)과 낙(落)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둘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마치 물과 기름처럼 나뉘거나 편을 가르는 일이 발생하면 이제부터는 낙(落), 즉 추락이 시작된다.
즐거움은 고되더라도 함께 응원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역경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각자도생 하거나 서로 모함하는 일원으로 역경을 맞이하게 되면 고생길이 훤한 일이다.
나는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를 모두 간접 경험했다. 중립적인 행동은 결국 총알받이가 된다. 감정적인 총알받이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잃게 만든다. 가정은 마주한 서로의 양손을 하나로 만드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한마음 한뜻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이인삼각 경기를 떠올리면 쉽다. 묶인 발이 하나같이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립적으로 이쪽저쪽의 간을 보거나 이용한다면 이중스파이밖에 될 수 없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스파이는 척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스파이도 아니고 이중첩자도 아니다. 남편을 내 편으로 편 가르기 하는 모험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심리전을 펼칠 바에야 단합대회를 하자고 생각했다.
말의 힘, 락(樂)을 만드는 기술은 말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을 잘 지키면서 말하는 것이다.
첫째, 말을 옮겨서 일을 만들지 말 것
둘째, 나의 입장에서 일인칭 시점으로 말할 것
셋째, 상대를 헐뜯지 않을 것
조심하고 조심해도 부족한 것이 말조심이다. 입이 무거운 것이 다 좋지는 않겠지만, 사회든 집안에서든 탓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는 신중한 것이 이롭다.
칭찬이나 격려의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말로 해야 한다. 장난스럽거나 가벼운 말, 가식적인 행동은 허공에 날아가 힘이 없다. 집안싸움은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상하게 하는 일이다. 문제 해결의 능력은 말을 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잘 아는 속담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랴?' 이처럼 결혼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고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충분한 보상이 오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집안일이나 직장일이나 배움이 있고 실력이 되고 결과가 좋다면 금상첨화다. 어느 집단이든 능력은 인정받을 수 있지만 존경받기란 쉽지 않다. 인성이 바르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만한 시간을 통해 검증되거나 업적이 그 사람을 대변하게 된다.
그때까지 고생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과 목표를 가지고 책임감과 사명을 지녀야 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애정과 공로는 결과가 따르고 보상이 오기 마련이다.
밭 가는 심정은 잘 모르겠지만, 과실을 많이 맺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농부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검게 그을린 피부가 고생한 시간을 보여주지만, 환한 미소는 그 모든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고생 끝에 오는 것이 락(樂)이 될지 낙(落)이 될지는, 결국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고 함께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