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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반지에 담은 마음

by 우리의 결혼생활


입사 후 나는 결혼반지를 반드시 착용하고 다녔다. 보통 다이아반지를 실생활에서 착용하고 다니기란 쉽지 않지만, 그 당시 내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연인관계가 아니라 결혼을 했음을 알리고 싶었다.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꽤 든든했고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늘 착용하려 했다.


둘째, 조금 캐럿이 되어 보이는 반지로 환영받는 결혼이었음을 알리고 싶었다. 이른 나이의 결혼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를 향한 부담스러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혹시 아이를 먼저 임신해서 부득이 결혼을 서둘렀나?’ 하는 추측들을 일일이 해명할 수 없었기에, 반지의 반짝임으로 축복받고 지지받은 결혼임을 대신 말하고 싶었다.

직접적으로 묻는 이는 없었지만, 입사 후, 서두른 결혼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질문 아닌 듯하지만 결국 묻고 싶은 의중을 잘 알 수 있다. 2007년, 스물셋의 결혼은 확실히 이른 나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취집’이란 신조어가 있다며. ‘취업’ 대신 ‘시집’을 갔다는 뜻이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목소리는 정확히 기억하는 걸 보면, 난 별 뜻 없는 말에도 상처받았던 모양이다.

2005년 남편을 만나 2년 넘게 연애했고, 시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정상적으로 사랑을 쌓다가 결혼했다.

결혼 전, 시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여자친구였던 나를 위해 미용예약을 해주셨다. 평소 하고 싶어 하던 펌 해주시겠다며 네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기다려주셨고 저녁에 오빠와 데이트하라며 코엑스에 내려주셨다.. 또 늦은 가을이면 새우 좋아하는 나를 강화도 바닷가 근처 새우양식장에 데려가셔서 푸짐하게 사주셨다.

양가 가족이 서로 친밀해서 가족동반 부산여행을 함께했다.


너무도 많은 추억이 가득한 연애시절이었고 넘치는 사랑을 받은 덕분에 지금의 사랑하는 남편과의 결혼이 어린신부였지만 망설임 없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친정부모님 역시 시아버님의 병환은 오래되셔서 잘 알고 계셨고,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삶이 다르다.

모두 알듯이 그렇다. 현실과 이상은 거리가 멀다.


결혼 후 5일 만에 시아버님의 장례를 모셨다. 기쁨보다 슬픔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드라마틱한 시간 가운데 온전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더 마음을 다했고, 서로의 상처와 슬픔을 위로하며 시련을 이겨냈다.


가까이 보면 비극이어도 멀리 보면 시트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가족에게 큰 아픔이었지만, 시련은 가족애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어린 신부는 신혼 초부터 신고식을 치렀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듯 좋은 추억을 새기며 아픔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결혼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늘 변수가 있고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헤쳐 나갈 단단함이 필요하다.


어린 신부에게는 단단해지는 과정이 사회초년생 시절에 있었고, 신혼 초에 있었다. 상당 기간 훈련이 필요했고, 연단이 되어가는 기간은 십 년이 지나서야 조금 편안해졌다.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뿌리가 내려지는 기간에는 버티고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가볍게 얻는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어렵고 힘들게 다가가는 결혼생활도, 자리 잡아가는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믿으며, 어린 신부의 적응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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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시부모님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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