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
어려서부터 나는 외향적이면서도 내성적인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활동적이고 말 잘하는 친구들을 동경했고, 내성적이지만 공부 잘하고 독서를 즐기는 친구들도 선망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이 모든 것이 공존하면서, 업무를 볼 때는 침착하고 사회생활에서는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사람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학업성적이 자신을 증명하는 단적인 예가 된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모든 스펙과 더불어 외모적인 단장도 중요하고 말의 기술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정신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해진다. 멘탈이 흔들리면 모든 일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결혼은 준비하는 과정부터 그 이후까지 모든 일이 정신적인 부분에 크게 좌우된다.
어린신부는 아직 미숙한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채 결혼했다. 정신적으로 누군가를 책임지며 새로움을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린 시점이었다. 그래서 사소한 일도 쉽지 않았고, 또 부딪히고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성장하게 된 계기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단편적인 부분이 아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성향을 가졌는가? 이런 흔한 질문이 아니라, 나는 어떤 성질로 구성되어 왔는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
나는 노력형이다. 어떠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떤 어려움도 남을 탓하지 않고 나 스스로 그것을 해결하고야 마는 성미다. 그래서 결혼생활, 고부관계, 자녀양육 등 어려울수록 혼자 문제를 끌어안는 경향도 있었다. 본질적인 성향은 바뀔 수 없다지만, 상대방을 관찰하면서 나의 부족한 면을 비추어보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어린신부에게 남편은 환경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나와 완벽히 달랐다. 이성적인 남편과 매우 감성적인 어린신부는 안 맞는 듯 잘 맞는 듯, 그렇게 연애를 2년 반 정도 하였고 두 번 헤어졌으나 곧 다시 만났다.
지금의 남편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연인사이는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는 것이 연애다.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기준을 세우기 전에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구를 만날지 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나의 가치관은 어떻고 기분 따라가 아닌 모든 상황에서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을 지키려는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소개로 이어진 결혼일지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결혼만큼은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다.
누구든지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상대를 보는 눈 역시 딱 나를 보는 능력만큼만 보인다. 나를 잘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내가 어떤 트라우마를 가졌는지, 상처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내 내면은 어떤 상태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결혼은 어린신부의 꿈이자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삶의 우여곡절이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를 사랑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존재를 남편과 자녀들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잠시 내려놓는 일은 나를 결코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를 잘 다듬어 놓고 좋은 기업으로 유지·성장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내어주면서, 내 삶 속 중요하고 사랑하는 부분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들어본 적이 있다. 간접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사람은 각양각색이고 그들의 선택에 따른 대가나 책임을 함께 가지고 연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같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입장이다.
어른이 되는 일은 자신의 일에 명확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보는 안목을 갖춘 시기가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자신을 통찰하고 책임을 지는 그때가 어른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어린신부는 어린 나이여서만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고 사회 경험의 부재, 인간관계나 대화의 기술이나 사람들간의 거리조절 혹은 자기를 보호 할 처세, 자기 스스로의 생각과 지혜가 다방면으로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린신부다. 새로 만나게 된 가족 사이,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만나게 되는 아이 친구의 학부모 간 관계에서까지도 늘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내 존재를 여러 장소에서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시기였다.
나에게 가장 큰 힘은 나의 행동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또는 진중함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내 안의 정신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꼽으라면 우리 아이가 다치거나 싸움에 휘말렸을 경우다. 시시비비를 따질 때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정중하게 일을 정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른으로서 감정을 조절하면서 나의 아이와 또래집단의 관계 형성까지도 미치게 될 영향을 생각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누구나 자존심이 높다. 하지만 정작 자존심을 높이는 방법은 자존감을 잃지 않는 일이다. 남을 누르고서 얻는 자존감은 늘 누군가를 눌러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마저도 억누르게 되고, 자신을 강제로 낮추게 되는 불리한 상황을 발생시킬 요인이 된다. 하지만 남을 존중하면서 나를 지키는 자존감은 어디서든지 오해할 여지를 남기지 않게 된다.
내면의 힘은 자신을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조절 능력은 한순간에 되지 않아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특정일을 선택할 때나 하다못해 음식을 고를 때나, 나아가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때에도 모든 일이 선택의 연속이다. 어제의 선택들이 쌓여 지금,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말을 믿는다. 잘된 선택과 결정, 옳은 판단력을 기르는 것은 내면의 힘과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 된다.
어린신부에게,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최소한의 안목이 아니라 최선의 안목을 기르라고 조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