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병보다 비교병이 더 무섭지…
유행성독감의 계절은 겨울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늦가을 무렵이면 독감예방접종이며 아이들 영양제 챙기느라 분주해진다. 영양제를 챙기는 건 아이들과 부모님뿐이다. 나의 건강은 젊음이 약인 줄 알고,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부모님이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없는 주머니 사정에도 늘 영양제는 종류별로 챙겼다.
가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장염이나 감기 등의 유행병이 돌기라도 하는 날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마치 파도가 서서히 덮치듯이, 안심하는 그 순간 유행병에 걸리고는 한 아이가 아프며 연쇄적으로 콜록콜록 거리며 셋 모두 감기를 앓았다. 그 마무리는 마지막 엄마인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열 감기는 더욱 힘이 든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프고 힘이 없으니 잘 먹지도 않다 보니 밤새 잠을 설치고는 며칠을 보낸다. 두 번, 세 번을 거치고 나까지 지나가면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약봉지를 들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달의 숫자가 바뀐다. 몸살이 안 날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아도 몸이 힘들고 잠도 못 자면 일상은 우울한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운다.
어린신부는 꽤나 씩씩하고 건강한 편이다. 나이도 젊고 용감하니까 아이가 아파도 그렇게 종종거리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받고 잘 먹고 잘 쉬면 낫는 것이 일반적인 감기 증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일수록 모든 대처는 빨라야 한다. 유치원을 다니는 유아는 면역이 그래도 조금 낫지만, 3세 미만의 영아들은 자기표현이 서툴기 때문에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서 나는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때는 첫째 아이가 10개월쯤, 걷기 전의 일이다. 저녁시간 이유식을 하고는 놀아주고 있었다. 아이는 혼자 놀이방에서 인형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며 인형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나는 아기가 잠시 동안은 가만히 놀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래서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대략 3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서 가보니 아이가 이마를 바닥에 대고 넘어져서 가만히 있었다. 순간 기절을 한 것처럼 조용했다. 분명 울어야 하는데 울지도 않고 눈은 감고 있었다. 불안해서 숨소리부터 확인했다. 숨은 쉬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구급차를 불렀다.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서 머리에 헤드를 씌우고 영상 MRI를 찍었다. 구급차 안에서 깨어난 아이는 울다가 놀다가를 반복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가 안전한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이는 집에 와서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이유식도 잘 먹고 잘 잤다. 약간의 혹이 이마 가운데 올라오긴 했지만 금세 나았다.
초보 엄마인 나는 그 이후로 아이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떼거나 내가 못 보는 사이에 다칠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린이집을 제일 늦게 보냈다. 첫째는 5살에 보냈고 둘째는 4살, 셋째는 3살에 보냈다.
아이가 셋이지만 첫 아이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내게 중요하고 또 어려웠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쉬운 일도 어렵게 느껴졌다. 첫 아이 때 고생한 그만큼 둘째 아이는 꽤 수월하다.
첫 아이를 예쁘게 키우고 나면 둘째에 대한 생각이 들어오게 된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너무나 소중한 생명이 내 배에서 태어나는 일은 정말이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다. 내가 초보 엄마라서 익숙하지 않고 대처도 서툴지만, 무엇보다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은 것은 내가 알고 있다.
말썽을 부리고 어지르는 그 순간마저도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은 우리 아이들뿐일 것이다. 예전 내가 아이일 때 우리 엄마 아빠도 나를 보며 저렇게 하셨겠지, 이렇게 웃으셨겠지 하면서 육아를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그러다가도 늘 현실은 코미디 시트콤이고, 웃다가도 눈물지어지는 긴 시여서 순조롭지도 않고 피로와 당이 떨어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건 기본이다. 그래서 방심하거나 마냥 좋은 생각만 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그 어디쯤에 있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 이 또한 지나간다. 육아도 길어야 몇 년이고 또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실감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시간이 너무도 길고, 아이가 언제 커서 혼자 밥을 먹을까? 언제 혼자 화장실을 가나? 어느 세월에 아이들을 키우나 싶었다. 하루가 길고 또 길었다. 잠드는 그 밤마저 쉽지가 않았던 그때는 어린신부에게 늘 도전이고 다짐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다방면에 만능해야 한다. 유행병이나 알레르기 또는 아토피까지 여러 가지로 처방을 알고 있어야 하고, 영양관리도 건강관리도 필요하고 학업도 챙겨야 하고, 또래 사이에서 집단 내 관계 형성에도 적절하게 융화되도록 도와야 한다.
유치원 시기에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또래들끼리 일어난 일을 엄마나 아빠가 나서서 도와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이때의 모든 행동을 아이는 눈으로 부모를 지켜본다. 거기서부터 가정교육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모방하고, 말도 억양도 배우게 된다. 어릴 적 생활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어릴 적 자연히 몸에 밴 습관이나 가정환경은 아이의 감정과 잠재의식 속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작고 어린 우리 아이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방법을 벌써부터 여러 가지로 배우기 시작한 것과 같다. 그만큼 중요한 시기인 만큼 양육자는 그 시간을 잘 인내해야 한다.
어린 신부에게 인내는 오른손, 사랑은 왼손처럼 생각하고 아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오른손과 왼손처럼 두 가지를 늘 기억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내려 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말이 있다. 한 걸음이 모여서 먼 길을 완주하게 되는 일은 하루하루 편안하게 마음먹고 마음을 비우면서 아이의 실수도 용납하고 잘한 일도 칭찬하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조언하고 싶다.
너무 조급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리 아이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어린신부는 조금 조급했으며 조금은 비교했고 조금은 불만도 했다. 그래서 순간 돌이키기는 했지만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은 가지고 있다.
우리의 아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린신부는 얼마나 큰 기다림 끝에 온 천사 같은 아이들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짧은 순간 잊어버리고 우울한 마음을 가지게 된 날도 있었다.
<< 유행병보다 무서운 것은 비교의식이다.>> 누구보다 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아이다.
부모의 신뢰를 얻은 아이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 무엇을 잘해서 칭찬받고 잘하지 못하면 비난받는 아이는 청소년기에 칭찬에 대한 갈증을 다르게 해소할 수 있다.
지금도 어린신부에게 중요한 생각은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칭찬하자는 생각이다. 지금도 여전히 비교와 비판과 비난은 세 번은 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유행병도 힘든 일이지만, 비교병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