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을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문제 상황에 책임을 담당하는 사람마다 모습은 참 다르다. 책임의 무게를 회피하거나, 대응하지만 남 탓하기 바쁘거나, 모종의 기술이나 모략으로 비난의 화살과 눈초리를 다른 사건으로 돌리기도 한다.
개인도, 집단도, 국가마저도 때로는 용감하지 못하거나, 책임이 불특정 다수일 경우 그것을 고르게 감당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나의 실수나 후회가 다가올 때, 나는 어떠했나 돌아본다. 누군가의 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나에게 감정노동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치 모든 정보나 개인의 사적인 일들을 당당하게 들려주고 들어주는 것이 마치 내 의무이거나 일처럼, 누군가의 짐을 내 어깨에 내려두는 사람도 있었다.
때때로 광야를 지나는 것처럼 외로이 걸었고 나는 때때로 깊고 무거운 길을 헤치며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어려움을 마주할 때 타인을 탓하며 내 무게만 무겁다 불평하기도 했지만, 기어코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입으로 불평하는 일은 그저 내 귀에 들리는 푸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귀를 닫아 잠시 접어둔 채 다른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는 일로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위로와 인내를 배울 수 있었다.
"기꺼이 듣는 것,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고 머릿속으로도 심리적 정신적 고기능의 활동이다."
어느 날 생각에 깊이 잠기던 날 후회가 나를 찾아올 때, 나는 매일같이 밀려드는 감정을 마주했다. 그리고 흘려보냈다. 물 흐르듯 시간도, 사람도, 상황도, 감정도 지나가더니, 어느새 나에게는 용기와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 희생, 용서, 인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던 불평과 비난의 화살은 결국 나를 성장시킨 동력이 되었다. 에너지의 방향을 전환시킨 것이다. 누군가를 탓하며 구속하는 것은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비난과 비판은 내 모습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낮출 시간으로 사용된다면, 그런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민과 고난 중에도 알을 깨고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새처럼, 용서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비판과 비난에 안주하거나 적당한 말로 포장하는 삶은 알 속에 안주한 삶이 될지도 모른다. 날아야 할 시기가 왔을 때, 비록 알을 깨며 지치고 다치게 될지언정, 비로소 파란 소망의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야 한다.
나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향해 비평과 좌절이 어떤 모양으로 에워싸일 때일지라도, 순간의 비겁함으로 도피하지 말고 자신을 저 높이 독수리 날개 치며 비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응원하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