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속이는 일도, 속는 일도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뉴스에서조차 가짜뉴스를 걸러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정신질환에 특별한 관심이 없고서야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같은 개념을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 단어들은 이미 뉴스와 일상 대화, 심지어 영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금전 문제, 성적 문제, 학교와 직장, 종교단체에 이르기까지 가스라이팅과 그루밍의 흔적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노출된 것은 감추어진 것보다 강력하다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속임수의 구조와 패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함정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속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오히려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말처럼,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매혹적으로 포장되거나 정교하게 설계된 스크립트처럼 다가올 때, 우리 안에 이미 자리한 갈증이 스스로를 함정으로 이끌기도 한다.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각종 범죄 수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새롭게 양산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드러난 사례들을 미리 보고 익히며 경계를 세운다. 속임수에 대한 정서적·심리적 준비는 단순히 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솔깃한 말, 지나치게 유리한 제안, 과분한 대우—이것들을 처음부터 선뜻 신뢰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면서도, 막상 눈앞에 그것이 놓이면 판단보다 욕망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속고 속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삶에서만큼은 속이는 일도, 속는 일도 원하지 않는다.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순수한 정신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처럼 들릴지라도.
진실은 잠시 숨겨질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드러난다. 반면에 거짓은 아무리 오래도록, 아무리 명백하게 공개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고 거품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람도, 사건도, 시간도—모든 것은 결국 진실이라는 숲 안에서 본모습을 드러낸다. 때로는 견고해 보이는 거짓이 오래 버티기도 하지만, 흔들리는 시간 앞에서 거짓은 끝내 진실을 토해내고야 만다.
감추어진 진실 앞에서 거짓을 견디는 일은 결코 피해나 속임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실은 더 이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거짓은 설명이 길기 마련이고, 거짓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결국 끝을 맞이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든, 생각이든, 사건이든 그 마지막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이란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속임수에서 자유로워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원하는 것만 보려 하는 거짓된 눈이 아닌, 진실된 눈으로 사리를 분별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 눈을 갖는 것—그것이 이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나와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