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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오늘은 거짓말할 생각 없습니다

by 우리의 결혼생활

거짓 없는 관계란 있을까?

오늘은 거짓말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세상천지에 거짓말 안 하는 사람도 있을까? 우스갯소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거짓이 없는 관계란 감히 없다고 말하고 싶다. 진실한 관계라 할지라도 한 치 부끄럽지 않은 관계라 자신한다면, 그는 신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아는 하얀 거짓

아이도 자신이 동생을 한 대 쥐어박고도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엄마한테 야단맞을 일을 뻔히 자백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거짓을 진실인 양 눈속임을 한다.

그렇다면 엄마는 그것을 모를까? 그럴 리가 없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도 동생을 안고 달래주며, 보이지 않는 대상을 두고 “누구냐, 혼내주겠다”라고 약속한다. 이 말을 하는 엄마 또한 거짓이다. 언니는 때리고 그 자리에서 슬쩍 도망갔고, 어린 동생만 눈물짓다 엄마와 단둘이 남았기 때문이다.

울다가 동생은 엄마의 하얀 거짓에 마음을 달래고는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괜찮은 듯, 혹은 괜찮은 척하며 말이다. 하얀 거짓에 속은 어린아이도 나이 든 엄마도 거짓에 능숙하지만, 우리는 이 관계가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선의의 거짓, 사랑의 언어

그렇다. 거짓이 효과적인 관계 형성에 유익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TV쇼의 한 강연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랜만에 샐러드바에서 기분 좋게 만난 동네 학부모 모임에서 막내가 말했다. “언니들, 나 요즘 살쪘어. 너무 자존감이 내려간 것 같아.” 그러면 듣고 있던 언니 두 명이 이렇게 답한다. “얘, 지금 딱 좋아. 샐러드 한 번 더 먹고 와.”

이렇게 하얀 거짓을 말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 또한 선의의 말이며 동시에 거짓이다. 이렇게 우리는 삶을 살면서 하얀 거짓을 수없이 늘어놓으며 위로와 사랑의 표현을 에둘러할 때가 참 많다.


물풀 같은 위로

그렇다고 빤히 보이는 거짓을 진실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그것은 잠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물풀의 효과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봉합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치료는 아니라는 점에서 진실과 거짓은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나누고 싶어 하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람을 나누고 싶어 한다. 정치적 진영부터 아이돌 호불호까지, 그리고 성격을 MBTI로 구분하여 친해질 사람과 안 친해질 사람을 미리 구분하기도 한다. 심리학적 용어로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 등의 전문용어를 확인하며 사람의 단점을 명확하게 나누어 보고자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격 안에는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한다. 어떤 날, 때때로 외부적인 요인이 한 사람을 불운으로 몰아세울 수도 있고, 혹은 내면의 상처가 고스란히 올라와서 기저에 있는 자아와 충돌하는 그런 날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인간다운 감정의 파도

하루 종일 어둡고 그늘진 사람이 내일은 웃을 일 많은 하루의 패턴을 가져가기도 한다. 다중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은 다양하며 각각의 감정의 고유함은 인간만이 가진 매력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감정의 고저를 그리며 나름의 인생 그래프를 완성해 나간다.

후회도 성취도 모두 느끼면서 한 사람의 인격은 개개인의 노력 여하와 선택에 따라 성숙해지거나 미숙한 채로 남는 하루하루 여정을 만들게 된다. 온전한 성인이라면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 훈련 없는 감정은 매우 불리한 판단을 하거나 관계를 망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선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격은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행동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서, 그리고 지키고 싶은 관계를 위해서 거짓을 진실처럼 혹은 진실을 거짓처럼 말하며 관계를 채운다.

애써 만든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떠나도록 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고 말을 예쁘게 다듬게 되며 공과 사를 구분하고, 거짓 없는 관계를 위해 사랑하며,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상황판단을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을 인내하는 삶을 살아낸다.


진주를 찾는 법

하루 동안 많은 진실과 거짓을 마주하고 분별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정보처리'라는 명목 하에 나름의 프로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검은 속내를 가진 일들, 피싱이나 사기의 고묘함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뉴스나 매체정보에서도 만연한 거짓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아내는 법 또한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서 오늘은 다짐한다. 하루를 거짓 없이 살겠다고.

완벽한 진실만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상처 주지 않는 진실을, 위로가 되는 진실을, 사랑이 담긴 진실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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