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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넘어질 듯 어설프지만 넘어서게 된 날

by 우리의 결혼생활


나는 어릴 적 발레를 배웠다. 아린 아이의 눈에 깃털같이 가벼운 손동작과 발끝의 포인은 아름다운 백조를 보는듯했고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너무나 무용이 좋아져서 콩쿠르도 나가고 무대에도 섰다. 초등학교 생활 전부가 발레와 함께한 시간들이다.


오래전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화회관에서 듀엣을 해야 하는데 무리한 연습 탓에 발목 생태가 좋지 못했다. 듀엣은 호흡을 맞춰 춤을 춰야 하는데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상대 친구와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해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일주일 전 리허설무대에서도 무대의 최종 동선만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초조한 마음은 어린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여러 번 발목이 삔 한쪽 발목이 늘 문제였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연속된 습관성부상은 나를 더 두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란 지난 과거의 경험에서 반사된 행동이다. 발목상태가 호전되었음에도 며칠간 제대로 뛰려고 하거나 정상 컨디션으로 연습하려는 마음이 주저되고 있었다.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어린 나는 주변의 응원과 격려가 되려 더 움츠러들게 하는 내성적인 모습이었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애써 넘어지지 않으려고만 하는 겁쟁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연당일, 나는 공연복과 메이크업을 마치고 오전리허설을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더 이상 물러설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듀엣 하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서 최선의 연습을 하겠노라 다짐하고 리허설을 시작했다.


드디어 내 무대 차례가 되었다.

그동안 연습한 대로만 제발… 해보자… 중얼거리며 무대 중앙을 가로질러 아티튀드(Attitude) 그리고 연속주떼(Jete) 동작을 하다가 제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두 번의 연습을 하지 않은 시간이 스쳐 지나갔고 벌떡 일어나서 다시 하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처음부터 진행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오전 리허설을 잘 마무리했고 사진 찍는 대기실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교회 지인분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으셨다. 꽃다발을 보자니 부담이 커졌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긴장과 두려움의 엄습… 어린 가슴을 세게 두들겼다…


공연이 시작되고 듀엣이 시작되었다. 마음은 넘어질 듯 하지만 자세는 더없이 꼿꼿하게 우아한 손짓과 마무리까지 완전한 듀엣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친구와 무대 뒤에서 깡충깡충 뛰면서 무사히 공연을 마친 홀가분함을 즐겼다. 오래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왜일까? 넘어질 듯 무너질 듯했던 좌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음을 굳게 잡고 어설프게나마 크고 작은 인생의 첫 난관을 넘어가면서 큰 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어린 나에게 인생 최대 고비였던 그날은 어려움 앞에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게 된 날이다…


넘어질 듯 어설프게 넘어가다 큰 배움을 얻게 된 날. 지금도 잊지 못할 가르침이다… 지금의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시련을 마주하고 또 소소한 고민을 다루면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배우고 단단해졌음을 고백한다.


-아티튀드는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다른 쪽 다리의 무릎을 약간 구부려 뒤로 올리는 동작이다.

-제떼는 던지다는 뜻으로 한쪽 다리는 마치 던지듯 공중에 날리면서 다른 다리로 이어가는 도약 동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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