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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엔진 없는 자동차

by 우리의 결혼생활

나는 십 년 정도 교육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교육분야에 일을 하며 자녀 셋을 키우는 초중고 맘이라 더욱이 관심이 높은 시기여서 부모와 아이들 성장의 모습을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우리 아이가 돌을 지나면서부터 나를 비롯해 많은 부모님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집안 풍경이 바뀐다. 한글 카드와 숫자 교구가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벽지는 학습용 포스터들로 도배된다.


특히 한국 부모들의 높은 학구열은 세계가 주목할 만큼 대단하고, 그 영향력은 박수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열정이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주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언론에서 혹은 주변에서 선행에 대해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선행학습에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아이들의 지적 자극이 극대화되고 학습적 노출 빈도가 높아져서 학습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 부모의 적극적인 학습 지원이 아이의 나중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점들을 압도하는 수많은 부정적인 영향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삶이 수동형 또는 기계적 학습인이 된다는 점이다. 수동적 학습은 삶의 능동성을 떨어뜨리고 자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학습의 주인의식이 결여되고 만다.


엔진 없는 자동차와 비유하자면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이 발생하기 전부터 학습시키는 것은 마치 자동차 외형은 온전하지만 엔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엔진을 달지 않은 차에게 너는 스포츠카라며 반복학습하면서 마음껏 달리도록 액셀을 밟아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속도를 발생시키는 기관이 없는데 가속도를 기대하는 셈이다. 추후에도 엔진이 정상화되면 사용법을 익히고 서서히 주행하도록 인내가 필요하다.

준비 없이 달리는 대치동 학원가 아이들, 또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 부모의 스릴을 만족하기 위해 완성되지 않은 어린 차에 탑승해 있는 모습이 마음 한편 무겁게 느껴지곤 했다.


아이들이 학원을 선택하고 실제 다니더라도 결코 성적이 부족해서 혹은 현재 부모입장에서 상태가 불만족스러워서 학원에 보내겠다 마음먹지 않기로 작심했다.


아이가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학습자 본인이 의지를 가질 때에만 학원을 보냈고, 현재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세 자녀, 모두 잘 키워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 사랑과 기대 혹은 욕심 그 어딘가에 나는 머물러 있지만 내 욕심을 위해 살아가는 아이들이 아님을 고백한다.


나의 소유가 아니며, 나의 명함을 대신해 줄 가치적 기준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자랑거리 삼아 내세울 엄친딸이 되게 하려 함도 아니다. 그저 본인의 삶을 다듬어가고 가꿔가기를 기대한다.


억지로 먹은 보약이 양약일리 없으며, 강제로 한 모든 행동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실수할지언정 자신의 판단을 세워가고 기준을 잡아가는 것이 아이들의 삶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이 세상 가장 안전한 지대를 만들어주는 안전망을 엄마가 혹은 아빠가 눈 떼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강제가 아닌 자연스러운 성장, 가슴으로 안아주는 아이들은 느리더라도 주저앉지 않을 것이고, 넘어지더라도 회복하며 자신의 삶에 탄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행학습의 목표가 되며, 좋은 학습의 기대효과가 된다는 것을 마음속 조용히 말해본다.


결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모님의 인내와, 그들이 안전하게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는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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