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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이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by 우리의 결혼생활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불편해진다. 정말 그런 사랑이 존재할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조차 우리는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부모에게 바라는 것들, 부모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들. 그 모든 것이 어떤 형태로든 거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주고, 위로를 받는다. 연인 사이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무언가를 얻기를 기대한다. 관심, 애정, 시간, 때로는 더 실질적인 것들까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계산적인 사람처럼 느껴져서 씁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기대와 보상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런데 가끔 뉴스에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해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볼 때면, 예전처럼 충격받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구나” 하고 이해하려 든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내가 더 당황스럽다. 언제부터 이렇게 무뎌진 걸까.

우리의 주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직장 동료들, 각종 모임의 지인들, 함께 농담을 나누던 사람들. 그때는 꽤 인기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 역시 그들에게 기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예전의 영향력이나 교류가 줄어들면서 그 관계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오지 않고, 만나자고 해도 핑계가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섭섭하겠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결국 남는 것은 가족이다. 그리고 정말 소수의, 손에 꼽을 만한 사람들.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완전히 계산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부모님은 여전히 내가 성공하기를 바라시고, 나는 부모님이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들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기대마저 넘어설 수 있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때도, 실망스러울 때도, 여전히 곁에 있는 사람들.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화장한 얼굴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화장을 지운 맨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때로는 추한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는 관대함은 아름다운 일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면을 쓰라고 요구한다. 더 나은 모습으로, 더 성공한 모습으로, 더 행복한 모습으로. 그래서 집이라는 공간이, 가족이라는 관계가 소중한 것 아닐까. 거기서 만큼은 조금 더 솔직할 수 있으니까. 물론 완벽하지 않다. 가족 사이에서도 상처를 주고받고, 실망하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져 있는 끈. 끊으려 해도 잘 끊어지지 않는, 질기고 끈질긴 그래서 더 애틋한 가족이 된다.


최근에 깨달은 것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조금씩 양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 자존심을, 내 편의를, 내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관계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아마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고, 진짜 사랑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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