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가정의 울타리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말로 다할 수 없는 행복이 묻어난다. 학교생활을 잘하는 아이들조차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방학을 싫어할 리 없다. 어른들이 무더위를 식히며 한숨 돌리는 여름휴가를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안전하고 안정된 하루, 정서적으로 편안한 시간을 바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전투라고 표현할 만큼 부담스러운 시간들이 있고, 며칠 앞으로 다가오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는 더욱이 전투 모드를 켜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방학은 어쩌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쏟은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른도 아이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디에 마음을 잠시 내려둘까? 가정이나 연인, 부부 사이에서 찾기도 하고,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을 통해서도 위안을 얻는다. 이제는 취미를 넘어선 힐링의 매개체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도 동식물도,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주는 만족은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으며 다시 소모적일 수 있다. 정서적 안정감의 근본은 결국 가정, 내 집안에서 세상으로 다시 나갈 용기와 힘을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든 힐링이 시작되는 장소다. 모든 피곤을 이기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부터는 나의 쉴 곳, 나의 안전지대가 된다. 느슨해진 신발끈조차 거추장스럽고, 가장 편안한 옷차림과 나의 맨얼굴까지 더없이 자연스러운 상태를 맞이할 수 있는 곳, 그 시작은 가정이어야 한다.
집안 분위기, 특히 거실 분위기가 그 집의 얼굴이며 자화상이다. 그 집 엄마의 낯빛이 아이들 마음속 분위기이며, 아빠의 목소리가 그 집의 가풍이 된다. 우리 삶 속에 기초가 부실하다면 그 집은 온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 돌보아주는 손이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부부는 서로에게 이처럼 감추어둔 그 손길을 마련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내가 만든 감추어둔 손은 따스한 목소리다. 가정의 그날 분위기는 내 목소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돈된 목소리와 가시 돋친 소리를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내 입의 말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내보내고 싶다. 엄마의 얼굴이 다소 지쳐 보일지언정 불만 섞인 얼굴표정이거나 화풀이하는 감정을 내비치는 얼굴로는 집안의 공기마저 불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은은한 향기는 강력하다. 어느 장소에 들어섰을 때 처음 이미지는 향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어떠한 디퓨저보다 아름다운 향기는 그 집의 엄마 또는 아빠의 말에서 나온다. 말이 곧 인격이며, 말이 그 사람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요새를 주고 싶다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힐링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마음의 안정을 갖게 하는 것은 거창한 선물이 필요하지 않고 대단한 식탁이 필요치 않다. 안정된 말과 애정 어린 말 한마디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며, 사랑하는 이들을 편안한 집 안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방황하지 않는 아이들과 떠돌지 않는 남편 또는 아내를 위하여 가장 먼저 할 일은 아마도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 천국 같은 나의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지대이자 가정의 울타리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서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요새가 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안전지대를 아름답게 가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