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 시작된다.
“시작이 반이다.”
이 오랜 속담을 되뇌며,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마음을 먹고 나서 다시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니 어느새 몇 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새해 계획표에 적힌 목표들, 어느 월요일 아침에 다짐했던 운동, 미뤄둔 독서 목록, 언젠가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 우리는 참 많은 ‘시작’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은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어떤 일을 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시도해 본 일은 결코 ‘안 해본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시작되고 움직인 일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시간을 보낸 만큼의 가치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목표까지 가는 여정에서 한 걸음 가까이 간 것이 된다.
멀리 떠나는 여행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보며 소요 시간을 확인하고, 교통수단을 정하고, 멀리 내다보며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막상 짐을 들고 출발하고 나면, 첫 마음을 계속 유지하며 목표 지점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에 집중한다.
이미 길을 알고 수단을 준비했다면, 실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악천후를 만나 돌아가거나 일정을 바꿔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그 노선을 찾아간다. 불편을 겪지 않는다.
왜일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면, 어디에서 잠시 쉬더라도 결국은 그 목적지 언저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작된 일은 ‘시작한 일’에서 출발한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준비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함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준비되지 않은 일은 ‘준비하는 일’로 바꾸자. 내가 하지 않은 일은 ‘하는 일’로 전환시키자. 당장의 안녕과 만족을 위해 달콤한 보상을 찾지 말자. 도파민을 자극하는 소비적인 시간이나 생각, 물건들로 도피하지 말자. 대신 조금 더 계획적으로, 늦은 보상을 기대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을 지켜내자.
쉬운 결정은 때로 쉬운 후회를 가져온다. “급히 먹은 떡이 체한다”는 옛말처럼, 음식도 행동도 결정까지도 급하지 않게. 조금은 답답할지라도 느린 결정과 느린 보상을 추구하고 싶다.
후회하는 일의 대부분은 섣부른 판단과 하지 않았던 일에서 비롯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릴스와 유튜브의 짧고 강렬한 쇼츠에 길들여진 우리의 뇌는 도파민 중독에 빠져있다. 자극에 둔감해지고, 즉각적인 보상과 감정에만 반응한다.
때로는 느리게 걷기를, 독서를,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며 담백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다. 시간과 마음을 그런 일들에 할애하고 싶다.
아이들의 학업, 어른들의 사업과 비즈니스, 앞으로의 노년 준비.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든 마주하고 있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발을 내디딘 것에 스스로를 격려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용기. 꾸준하고 느리지만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과 묵직함.
그런 마음가짐이 주는 ‘내 안의 천국’을 가지고 싶다.
시작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열어주는 단어다. 하지만 그 선택을 책임지고 지켜내는 사람은 충분한 사유와 꾸준함으로 승부를 내는 사람이다.
생각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현재의 불안과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며,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연습을 하자. 그것이 바로 시작할 용기와 시작된 후 가까운 목표 지점을 향해 느리지만 꾸준히 가는 저력을 만든다.
‘시작하면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루만큼 시작한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한 일은 이미 시작된 일이 되고, 시작된 일은 언젠가 완성될 일이 된다. 그 믿음으로 오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