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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하며

by 우리의 결혼생활

나에게 남편의 야근은 독박육아의 또 다른 말이었다. 남편이 야근하는 날이면 시곗바늘이 지나가는 만큼 시간이 재미없이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기다릴 일이었나 싶지만, 아이들이 영유아기에는 한두 번 손이 가는 일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을 간절히 기대했다.


뒤돌아서면 난리가 나 있고, 뒤돌아서면 끼니를 돌봐야 하는데, 손이 하나 모자라면 두 발이 손의 역할마저 해야 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렇다 보니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은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고된 시간이라 말하는 게 맞았다.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천사 같은 나의 자녀들이지만, 육아는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한 전문직종이다. 나는 말할 상대가 필요했다. 남편이 오면 피곤한 상태에서 어떤 말도 필요치 않았고 오히려 쉼이 필요했기 때문에, 점점 할 이야기들은 묵혀둔 이야깃거리로 지나가게 되었다.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만큼 고되다. 그렇지만 나에게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을 주는 또 다른 행복감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사랑 그 자체였다.


‘다른 집도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참 일이 많은 대리에서 과장을 거쳐 부장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을까마는, 내 남편도 역시 다 말하지 못한 일들이 나만큼이나 쌓여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묵묵히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남편은 훌륭하고 자랑스럽다.


사실 회사에서 집까지 차량으로 한 시간 반을 운전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왕복 4시간 정도를 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긴 출퇴근을 감당하는 것도 매우 고단했을 것이다. 육아하느라 힘들었지만, 외벌이로 고생하는 남편 역시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렇게 마음까지 힘들어한다 해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마음을 비우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살이처럼 살게 되었다. 하루 웃고 하루 우는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위기극복 방법은 먼 길을 갈 때는 멀리 보지 말고 한 발 앞을 보는 것이다. 내 페이스대로 한 발씩 가는 것이다. 등산도 오르막길에서는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중턱에 오르고, 앞사람의 뒤를 따라 가파른 길을 오르면 고지가 보이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날 가령 버티기 힘들었다 하더라도 ‘한 걸음이 마지막이다’ 하며 스스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독려했다.


약한 내가 강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신앙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주기로,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그런 마음을 갖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드렸다. 나는 헌신적이고 진실한 사랑하는 법을 성경 안에서 찾았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그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셨고, 그 사랑은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의 표현이다. 그렇게 목숨을 다하는 사랑은 상식적이지 않지만, 모성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가정을 이룬 사랑의 힘은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섬기는 가장 작은 교회라서 내가 가꾸고 보듬고 따뜻한 섬김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힘들고 간절한 마음이 들 때 신앙은 큰 버팀목이 되었고, 진짜 사랑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장 어려울 때 극복하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용감하게 아이 셋을 낳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로, 아내로 살고자 노력했다. 또한 사랑스러운 며느리이자 사랑스러운 큰딸이 되고자 늘 노력하였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한 마디는 '한결같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노력은 변함없다.


다음으로 한 일은 말을 줄이는 일이다. 습관이 되고 보니 참으로 잘한 훈련이다. 듣기를 잘하는 편을 택한 일도 참으로 잘한 일이다. 처음 나는 말하고 싶어서 우는 아기에게 말을 걸어보고, 놀고 있는 아기에게 내 하소연도 해보고, 이렇게 아기를 친구로 생각하기도 하면서 지나왔다. 하지만 명확한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저 내 감정을 알아주는 그 눈망울이 고마웠다.


말을 하지 않고도 내 마음을 잘 정돈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말에 실수가 적어지고 듣는 귀가 있어서 분별력이 생길 수 있다. 외향적인 나에게는 좋은 훈련이 되었다. 정적인 훈련을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자기 수양이 된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요가, 명상 등의 방법이나 책이나 영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마음의 안정은 말을 조금 줄여보는 방법도 꽤 좋다. 듣는 귀를 열어두고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지 편안함을 주고받는 여유로운 에너지를 갖추기를 추천한다. 처음에는 입이 근질거려도 점차 여유로운 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 일은 외향적인 것을 채우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 노력은 마음의 힘을 키우리라 다짐한 일이다. 자존감과도 관련이 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소심한 성격인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쉽게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의미 없는 말에도 쉽게 마음이 요동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수동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어 하면서 나는 퇴행하는 것 같았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능동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 또는 상황에 있어서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높은 자존감은 긍정적인 상황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육아하느라 밤잠을 설쳐서 체력이 달리는 상황에서나 일정에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내면의 힘에 집중했다. ‘나는 오늘도 잘하고 있다. 나는 강하다.’ 이렇게 나를 응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위대하다’는 옛말이 있다. 그 이유도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전자에 ‘약하다’는 것은 성별을 떠나 본능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는 약함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특별히 모성은 하늘이 준 마음이라서 위대한 힘이 발휘되기도 한다.


나는 가끔 마음이 답답하면 내면을 돌보아가면서 그렇게 긴 육아를 완성했다. 그 균형을 찾으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육아는 나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리학 책이나 육아서적을 정말 많이 봤다. 아이들의 마음이 늘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공부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 잘하는 육아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내 감정을 잘 분리해서 이해하다 보면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을 훈육할 때이다. 훈육을 할 때 내 감정을 잘못 앞세우면 훈육이 아닌 화풀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하며 훈육했고, 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계기는 내 감정의 원인을 아이와 결합시키지 않아서 소리를 지르지 않게 되었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지만 아이들도 상황을 판단할 줄 알아서 위험한 일을 하거나 문제가 되면 스스로 더욱 놀라게 된다. 놀라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얼마나 위협적일까? 하지만 엄마는 이럴수록 침착하지만 단호한 모습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위험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시기에 맞는 적절한 안전교육을 했다.


감정이 앞서면 제대로 교육을 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는 늘 ‘침착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양육자의 감정기복이 심한 것은 아이에게나 본인에게나 누구에게라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무서운 엄마가 아니라 당당한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행동을 많이 따라 한다. 조금 커서 보니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닮아 있었다.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만큼 좋은 교육도 없나 보다. 계속 공부하며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지금도 하게 된다.


돌아보니 야근이 주는 극적인 불편함이 보약이 된 셈이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이 때로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그렇게 나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성장해나가고 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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