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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듣는 훈련, 말하는 훈련이 되다.

by 우리의 결혼생활


나는 어릴 때부터 성대가 약한 편이었다. 말을 많이 하는 날이면 금세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쉰 소리가 났다. 이상하게도 내 목소리가 아님에도 큰 소리를 듣기만 해도 목이 아팠다. 웃고 떠드는 소리나 큰 목소리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이었다. 목소리도 제법 큰 편이었지만, 목이 아플 것 같으면 스스로 볼륨을 조절했다. 학창 시절 합창부에서 노래를 많이 했고, 애국조회 때는 애국가 지휘를 맡기도 했다. 교회 성가대를 오래 했고, 성악을 전공하고 싶어서 성가곡뿐만 아니라 가곡들도 열심히 불렀다. 성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세 시간 정도 연습하면 금세 음 이탈이 되곤 했다. 그래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 목소리를 아끼려 노력했다.

주말이면 개그콘서트나 미스터빈 같은 코믹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시간을 즐겼다. 많이 웃는 편이라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한참 떠들고 나면 목소리는 쉽게 갈라졌다.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영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목소리를 많이 내야 하고, 큰 소리로 아이들의 집중을 이끌어야 하는 일이었다.

초등부와 유치부 수업을 할 때 목소리 크기 조절은 늘 중요한 숙제였다.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나면 말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에너지와 마음을 다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기에 어느 하루도 목소리나 에너지를 낮추지 않았다. 그 덕분일까, 아이들의 영어 노랫소리는 늘 우렁찼다. 가끔 그 큰 노랫소리가 그립기도 하다.

그렇게 수업에서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나면, 일상에서 나의 목소리는 조용해졌다. 아니, 말 수가 확연하게 줄었다. 방송인이 집에서는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는 일과 같다. 나처럼 성대가 약한 사람은 에너지를 다 쓰고 나서 쉬어야만 다음 일정을 소화할 힘이 생긴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듣는 일이 좋아졌다. 말을 줄이다 보니 듣고 생각하는 일이 더 좋아졌다. 말은 누구나 쉽게 하는 소통의 도구이지만, 말을 잘하는 것은 매우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공감을 끌어내는 말이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중한 말은 지혜를 담아내기도 한다.

듣는 일이 좋아지고 좀 더 들어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세상의 많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를 내는 동안에는 내 말을 하느라 주변을 잘 보지 못했지만, 듣는 동안에는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판단력이 생기고 듣는 귀가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줄고, 말하는 힘이 오히려 생겼다.

직업 특성상 말을 많이 하게 되어 목소리 크기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듣는 쪽으로 결심하고 잘 말하는 기술을 익힌 것은 목소리 볼륨을 조절하다가 우연히 배운 셈이다. 듣는 훈련은 목이 아파서 소리를 내기보다 듣는 쪽을 택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좋았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할 수 있었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도 있었다. 한 박자 기다려서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은 어조로 말하고 듣는 시간을 늘려보기를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남편의 소리를 조금 더 들어주면 어떨까?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조금 기다려서 들어주는 쪽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확실히 무엇이든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편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경험이 매우 부족했지만, 듣는 훈련과 목소리 볼륨 조절을 통해 점차 처세가 명료해지고 내적인 성장을 쌓을 수 있었다. 말하는 훈련은 목이 아파서 시작한 것이지만, 의도적으로 듣는 쪽을 택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내가 할 훈련 중 하나가 되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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