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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날의 음식

간장계란밥

by 심현희

공채로 입사해 9년 간 젊음을 보낸 첫 회사를 최근 그만두었다. 퇴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약 두달의 시간이 걸렸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단순히 회사를 관두는 일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먹고 살 수는 있을까. 사실 내가 별 거 아닌 사람인데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냐 나 심현희야. 할 수 있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이 바뀌었고 자아분열은 매초매분마다 겪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두달간 집에서 라면만 먹었다. 라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라면 정도의 자극적인 맛이 아니면 입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제출한 사직서가 인사팀에 넘겨져 수리됐다는 회사의 통보를 받은 이튿날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밥을 챙겨먹었다. 라면만큼 만들기 쉬운 간장계란밥이지만 해방감과 설렘과 두려움 기대감 등이 뒤섞인 생전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이 생소해서 계란프라이를 4개나 터트렸다.


가고싶은 곳 먹고싶은 것을 시간과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누리는 것도 자유의 한 부분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게 진정한 자유는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는 환경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친구과 가족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별로라는 팩트가 "인생은 고통" 임을 증명한다. 돈을 많이 벌면 보고싶고 좋아하고 놀고싶은 사람하고만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허영과 허세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나의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술 없이 계란프라이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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