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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남자 Feb 09.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결혼해서 좋은 점

Prologue. 결혼 2년 차 남편의 이야기

21년 1월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우리 같이 글 써보는 거 어때?



음, 곰곰이 생각하다가 3초 후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1초 동안 부부관계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생각했고, 다른 1초 동안은 꾸준히 할 수 있을지 나에게 물었으며, 남은 1초 동안은 뭘 쓸까, 짧은 고민을 했다.


나와 아내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이다. 우리는 과연 한 민족이 맞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우리의 좌표는 저 멀리 동떨어져 있다. 참고로 나는 아내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한 번씩 나를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그때 그녀는 광활한 우주 속 좌표에 나와 온전히 겹쳐있는 하나의 행성 같았다. 생각과 말, 행동, 이 모든 것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가 그녀의 책꽂이에 꽂혀 있다고 한 순간 나는 이미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보통 주말에 뭐하세요?"라는 질문에는 <당신을 위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라는 숨은 의도가 있었고 이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은 나의 개똥철학이 담겨 있었다. 가장 피하고 싶은 대답은 "그냥 친구 만나거나 쉬어요"였는데 그녀는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광활한 우주 속에서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그냥 친구 만나거나 쉬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녀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고 "다음 주 주말에 뭐해요?"라는 <나는 이미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가 쓰인 좌표를 날렸다. 그로부터 20개월 뒤, 우리가 함께 탄 비행기는 하와이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광활한 우주 속 좌표에 나와 온전히 겹쳐있는 하나의 행성 같았다."


그로부터 또다시 15개월 뒤, 우리의 좌표는 각자 정반대에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광활한 우주 속 행성들 안에서는 꽤 가까운 서로였고 매트릭스 안에서는 같은 섹터에 있었으나, '우리'라는 우주 안에서는 정반대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상대적인 동물인가, 목표는 같더라도 우리는 X축과 Y축, N극과 S극으로 서로를 본능적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느린 소띠, 장대한 바다, 한 번에 하나씩, 내성적인 사람 중 가장 외향적, 어떤 창이든 막는 방패였고

아내는 빠른 말띠, 정원에 핀 꽃, 한 번에 여러 개씩, 외향적인 사람 중 가장 내향적, 어떤 방패든 뚫는 창이었다.


15개월 동안 창이 부서질지  방패가 뚫릴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우리는 종종 부부싸움 콘텐츠로 유튜브를 한다면 일주일 만에 100만 유튜버가 될 거라는 무서운 우스갯소리를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서로를 향해있던 창과 방패를 서로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 속 행성들 안에서는 꽤 가까운 서로였고 매트릭스 안에서는 같은 섹터에 있었으나, '우리'라는 우주 안에서는 정반대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휴전하고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다툼의 주원인이 성격차, 성향 차였지만 서로 달랐기에 좋은 점도 있었다. 성향이 100%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둘이 결혼하게 된다면 부부관계는 아주 좋을 수 있다. 서로의 생각과 행동에 거슬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1이 2가 아닌 3을 지향하는 결혼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에게 보완이 되고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사람과의 결혼>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간단한 예로 성격이 급한 사람과 느긋한 사람이 만났을 때 서로 발걸음을 맞추는 게 힘들 수 있지만, 잘 만 맞춰진다면 한 명은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고 또 다른 한 명은 뒤에서 꼼꼼히 챙겨줄 수 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건너지 못한 장애물을 반려자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쉽게 넘을 수 도 있으며 평생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같이 그려볼 수 도 있다.


아내와 결혼해서 좋은 점은 무수히 많겠으나, (보고 있나 아내?) 지금 내 머리를 관통하는 것을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다.


혼자 치과에 가서 사랑니를 뽑을 수 있게 되었다.

히어로물 영화를 보면 촉각, 시각, 후각 등 감각이 아주 뛰어난 무슨무슨 맨들이 등장하는데, 나는 어찌 된 일인지 통각이 너무 뛰어나 그 누구보다 아픔을 잘 느낀다.(마인드는 강해서 외유내강 맨이다.) 특히 좌측 하단 사랑니를 아주 무서운 기계로 산산조각내서 뽑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게 치과는 아주 치가 떨리는 장소다.

그런데 최근 아내와 함께 스케일링을 받고 나오는데 "나 사랑니도 뽑았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도 뽑아야 하는 사랑니가 있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어 놔뒀었는데 어차피 뽑아야 할 거 빨리 뽑는 게 낫다는 아내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2주 뒤, 아내에게 용기를 얻어 혼자 치과에 방문하여 좌측 상단 사랑니를 뽑게 되었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머리에 17 바늘을 꿰맨 흔적이 있다. 그 이유에서인지 나는 운전하는 것이 그렇게 무서웠다. 대학생 때 필기를 100점으로 통과하고 2번째 도로주행으로 운전면허증을 땄으나 이후 발달된 대중교통과 대기오염의 경각심을 핑계로 면허증을 고이 장롱에 모셔놨고 그렇게 나의 운전능력은 인간의 꼬리뼈처럼 퇴화해버렸다. 그래서 연애할 때 아내가 나의 기사가 되어줬는데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갑작스레 운전석을 양보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운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금 당장'에게 계속 양보운전을 하고 있었으나 아내가 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환경으로 밀어 넣어 줬고, 그때부터 운전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보통 부부가 서로에게 운전을 알려주면 싸우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생존에 대한 본능인지 매우 상냥했고 그 덕에 나는 무사고 드라이버가 되었다.


③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는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직장인이 되면서 모든 힘의 80% 정도를 회사일에 쏟아부었다. 늦게까지 일한다고, 꼼꼼하게 일한다고 연봉이 더 늘어나지 않았지만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은 나에게 만족감과 열심히 살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때문에 야근이 많았고 연애할 때 우리는 정말 많이 다퉜었다. 아내와 다투면서 내가 술 먹고 노는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했고, 늦은 퇴근길에 집에 뛰어가는 내가 초라해서 야근을 끊어버렸다. 종종 늦게 퇴근하는 날도 있었지만 최대한 집에 일찍 오려고 노력했고, '일의 마감'보다 '우리 하루의 마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찍 퇴근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아내 덕분에 일과 삶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요즘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자기 발을 다시 열심히 하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용감하고 현명한 아내를 둬서 내 삶은 풍요로워졌고 혼자일 때 보다 좀 더 인간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기에 맞춰가며 변할 수 있었고 서로 보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말이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의 생각이 이해는 되지 않지만 몸은 따라가야 할 때, 정말 고통스럽고 내 삶의 주인인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필요하고, 그 시기만 참고 넘기면 서로 아껴주며 또 한 번 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굳게 믿는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결혼해서 가장 좋은 점은 그 무엇보다 <함께 하는 저녁 식사>다. 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데, 그게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훌륭하다.

"요약하자면 용감하고 현명한 아내를 둬서 내 삶은 풍요로워졌고 혼자일 때 보다 좀 더 인간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안녕하세요. 부부생활에 대한 생각쓰고 있는 '그남자'입니다. '그여자'로 활동하는 아내와 같은 주제1주일에 하나씩 각자의 생각을 펜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나은 결혼 생활을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남녀의 다른 생각을 비교해 읽으시면서 남편과 아내분들께 공감되었으면 합니다.

'그여자'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iamthewoman/1

다음 글 : https://brunch.co.kr/@thema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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