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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남자 Mar 06. 2021

13일 밤의 금요일보다 더 무서운 14일의 기념일

14데이를 맞이하는 남편의자세(feat.발렌타인데이,화이트데이,로즈데이)

게 가장 기억에 남는 14일 기념일은 작년 5월 14일이다. 5월 14일은 나도 아직 낯설고 많은 남편들에게도 생소한 '로즈데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공부하듯 머리에 다시 입력한다. 5월 14일은 로즈데이.


(스압주의/로즈데이 당황 썰) 내가 작년 이 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기념일 중 가장 당황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 나는 야근을 했고 10시쯤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몸이 안 좋은지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나를 보자 엉엉 소리 내어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당황했고, 도대체 왜 우냐고 묻자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냐고 되물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중요한 날 순서대로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①생일 아니고, ②결혼기념일 아니고, ③화이트데이는 지난번에 챙겼고. 그럼 100단위 기념일인가? 긴장을 한 탓인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몰래 앱으로 확인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또 치팅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는데 아내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로즈데이". 나는 또다시 당황했다. ①아니, 로즈데이까지 챙겨야 하나 라는 생각과, ②아무리 생각해도 이때까지 안 챙겼는데 라는 생각, ③그리고 퇴근길에 그 누구도 장미꽃을 들고 다니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들이 사거리의 자동차들처럼 교차하며 지나갔다. 일단 우는 아내를 진정시키며 최대한 좋은 말투로 밖에 장미꽃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몰랐는데 그 부분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전에 로즈데이를 챙겼던가..."라고 건전지가 거의 다 닳은 탁상시계처럼 꺼져가는 목소리로 은근슬쩍 말했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연애할 때 받았다고 했다. 첫번째 로즈데이에 내가 장미꽃을 줬었고 두번째 로즈데이는 안 줘서 참았는데 세번째 로즈데이에 빈손으로, 그것도 집에 늦게 돌아와서 속상하다고 했다. 아내는 앞으로 평생 못 받게 될 장미꽃을 세어보며, 그 장미꽃들의 잎만큼 슬펐나 보다. 그렇게 우는 아내가 아이같이 귀엽기도 했고 내가 뭔가 엄청나게 큰 실수로 아내가 우는 것은 아니다란 약간의 안도감이 들면서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지금 나가서 장미꽃 사 올게!" 그때 시간이 밤 10시였다.


아내는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미션을 받은 군인처럼 뛰어나갔다. 어떻게든 아내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집 근처 편의점 3군데를 돌아보며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미꽃이 멸종했다. 장미꽃 관련된 그 무엇도 없었다. 우리나라 편의점에 장미꽃을 테마로 한 어떤 상품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로즈데이를 안 챙기는 거 아닌가 라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상위 1%의 군인은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션 수행 지역을 지하철역 근방으로 정했다. 지하철역까지 10분 거리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역까지 뛰어갔는데, 가는 도중 다리 난간 화분에 핀 이름 모를 꽃들과 교회 앞 화단에 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라도 몰래 한송이만 꺾어갈까 생각했으나 도덕적으로 안 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일단 빨간 꽃이 아니었다. 빈손으로 들어가면 어떡하지 하고 마음이 불안한 가운데 역 근처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봐도 장미꽃을 살만한 곳을 없었다. 더군다나 10시 반이 가까워 오면서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아 안 되겠다! 올리브영에 가서 장미꽃 색깔의 립스틱이라도 사야겠다는 어설픈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다시 뛰어가려는데 눈 앞에 파리바게트가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갔는데 드디어 로즈데이 선물을 찾을 수 있었다. 비누로 만든 장미꽃과 장미꽃 모양의 초콜릿. 미션을 완료한 군인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갔다.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비누꽃과 초콜릿 꽃을 건넸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아내는 크게 기뻐했다.

파리바게트 장미꽃 막대 초콜릿 / 감사해요 많이 파세요!




우리 아내가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초콜릿이 엄청 맛있었나? 아니다. 인스타에 올려 자랑할 정도인가? 아니다.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념일에 손에 뭐라도 쥐어주며 사랑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념일을 깜빡했는데 아내 입에서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경우, 지금 당장 뭐라도 하겠다는 포부와 액션이 나와야 한다. 직장 생활과도 비슷하다.


이제 곧 3월 14일, 화이트데이다.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일단 이번만 챙기면 다음 화이트데이까지 1년간은 욕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나는 물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다.(아내가 보고 있다.)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우리 아내와 여자 친구들이 좋아할까? 아내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사람 마음 다 똑같다는 가정하에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글을 쓸 때 아내와 주제만 공유하고 업로드할 때까지 서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한국사람들은 뷔페를 좋아한다 / 사탕 < 초콜릿 < 캔디류 종합

먼저 화이트데이라고 사탕을 사주면 최하수다. 초콜릿 알러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탕보다는 초콜릿을 더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8세에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사탕은 떼지만 초콜릿은 식후에, 졸릴 때, 배고플 때, 각성이 필요할 때 등 여러 핑계로 환영이다. 하지만 다양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츄파춥스, 하리보 곰젤리, 오레오, 키세스, 몰티저스 등이 모두 들어간 종합 선물 세트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④ 달지 않고 맛있다, 보기 좋은 떡이 보여주기에도 좋다 / 케이크, 마카롱 등 제빵, 제과류

한국 사람들의 맛 표현 중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달지 않고 맛있다."이다. 특히 우리 성인들은 너무 단 것 보다 적당히 달달하면서 고급진 맛을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캔디류보다는 케이크나 마카롱의 선호도가 더 높고 그중에서도 당근, 얼그레이, 무화과 맛이 더 고급진 것 같다. 그리고 아내가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기에도 이런 베이커리류가 더 좋은 것 같다.


③ 다이어트 스트레스 / 초콜릿류 + 소소한 선물

한국 여자들은 365일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리 봐도 날씬하고 예쁜데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3월부터는 옷이 얇아지기 때문에 초콜릿이나 케이크를 선물로 받더라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게 우리 아내와 여자 친구들의 마음일 것 같다. 그래도 남들 다 받는 초콜릿을 또 안 받으면 섭섭하니 작은 초콜릿 하나에 소소한 액세서리나 립스틱, 향수, 운동화 등 상대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을 주면 좋을 것 같다. 단, 취향에 맞지 않은 선물은 안 주는 것보다 못하니 아내의 취향을 잘 아는 경우 이에 해당한다.


② Show me the money / 고가 선물

아시다시피 돈은 치트키다. 남자든 여자든 갖고 싶었던 고가의 선물을 받으면 금액만큼 그 기쁨은 커진다. 여기서 '고가'는 상대적인 단어로 우리 형편을 분모로 넣고 선물을 분자로 넣었을 때의 수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나는 연애할 때 아내로부터 그림을 선물 받았는데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가격대가 높아서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놀란만큼 이 사람이 나를 이만큼이나 사랑하는구나 하고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 부부가 대출을 받아 함께 열심히 갚는 중이라면, 가격대가 높을수록 등짝 스매싱의 강도가 세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joker) 핸드메이드는 프리미엄이다 / 수제 초콜릿, 제빵, 제과류

아내가 몇 년 전 발렌타인데이 때 손수 초콜릿을 만들어 줬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새벽까지 만들어서 예쁜 병에 넣어온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얼굴과 손에 밀가루와 초콜릿으로 묻혀가며 고생하는 아내가 상상됐고 그 마음을 생각하니 고맙고 짠했다. 핸드메이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스토리와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손재주와 쿠킹에 대한 감각이 있는 남편과 남친들은 직접 제빵, 제과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① 편지는 인생의 책갈피다 / 편지 + α

사실 위에 있는 선물들도 모두 좋지만 '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고주알미주알 나열했다. 우리 부부는 그 무엇보다 편지 선물을 최고로 친다. 편지는 함께 사는 우리 인생의 책갈피 역할을 한다. 좋은 추억이 담긴 편지는 그때의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좋고, 서로의 상처와 아픔이 담긴 편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이겨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네하고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 부부들은 마음속에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단어를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말하기 쫌 그래서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기념일에 평소에 품은 단어들을 나열하고 조합해서 짧은 편지라도 서로 주고받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편지도 와인처럼 오래될수록 빈티지가 되고 많이 쌓일수록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처럼 가치가 높아진다.



사탕으로 만든 드라큘라, 젤리로 만든 프랑켄슈타인, 초콜릿으로 만든 미라, 쿠키로 만든 울프


14일의 기념일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3월 14일은 작은 초콜릿과 편지, 5월 14일은 장미꽃 한 송이와 편지를 준비하면 된다. 빼빼로데이도 이와 같다. 그래도 남편들이 화이트 데이를 챙기기 좀 더 수월한 이유는 발렌타인 데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해준 것보다 조금만 더 마음을 담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완전 다른 이야기다. α가 더 커야 할 수도 있으니 명심하자.



안녕하세요. 부부생활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는 '그남자'입니다. '그여자'로 활동하는 아내와 같은 주제로 1주일에 하나씩 각자의 생각을 펜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남녀의 다른 생각을 비교해 읽으시면서 남편과 아내분들께 공감되었으면 합니다.

'그여자'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iamthewoman/6

다음 글 : https://brunch.co.kr/@thema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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