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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남자 Mar 21. 2021

여보, 나한테 할 말 없어?

편지의 순기능 : 백익무해한 편지

우리 부부는 3년 동안 50개 정도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단순 계산으로 20일에 하나씩 써서 줬으니 꽤 많은 편지를 서로에게 한 것이다. 특히 연애 초반부터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었는데 첫 편지는 아내와 3번째 만남에서였다. 나는 정성껏 편지를 써서 책과 함께 선물하며 집에서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 우리 만나볼래요?> 같은 내용이 담긴 고백 편지였고, 이후 그녀도 긍정적 사인을 편지로 화답했다. 그녀는 편지와 책 선물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다. 과거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책과 편지 선물을 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며 다녔다고 했다. 만약 내가 편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스쳐가는 인연에 그쳤을 수 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 이후에도 그녀에게 자주 편지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짧은 글과 시를 써서 종종 선물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편지가 뜸해지면 그녀는 강한 요구를 했고, 습관적으로 기념일이나 생일에 편지를 써주게 되었다.



편지는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받았을 땐 기쁘고, 시간이 지나서 읽으면 짠하다.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처럼 세상에 백익무해한것도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성이 담긴 편지이다. 편지는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받았을 땐 기쁘고, 시간이 지나서 읽으면 짠하다. 만약 10년 전 아내가 써 준 편지를 지금 읽는다면 나는 10살 더 어린 과거의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인데, 적어도 과거보다 배우자를 더 보듬어 줄 수 있는 감정이 포근하게 올라와 있지 않을까. 이처럼 편지는 시간에 따라 풋풋함과 잘 익은 과육 맛을 느낄 수 있는 글을 담은 포도주 같다. 그럼 편지의 어떤 부분들이 화학적 결합을 하여 100개의 이로운 부분들은 만드는 것일까?


① 일반적으로 편지에는 사랑, 화해, 노력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로 나열되어 있다. 대표적인 문장 삼총사가 "미안해."와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와 "사랑해."로 부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조합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좋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부정적 표현을 하며 다투기도 하는데, 편지는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야 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의 재가 들어가지 않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개선에 효과가 있다. 참고로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는 너도 나한테 잘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후 다툴 때 "너가 더 잘한다며."라고 응수하면 앞으로는 그 문장을 편지에서 찾기 어려울 것 같다.


② 편지는 그 당시의 시간과 공간과 추억을 머금고 있다. 시대상을 반영한 사진과 그림, 소설 등 문화적 작품들의 가치가 높은 것처럼 편지는 우리의 추억 일상사가 담겨 있다. 마음을 고백한 순간과 서로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가는 시기, 오해하고 다투었던 자갈 같은 시간들과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계절까지 우리의 임팩트 있던 순간들이 편지에는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그래서 편지는 우리가 함께 사는 인생에서 다시 맛보고 싶은 순간들을 표시해 놓은 책갈피 같다. 혹시 자주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 싸우고 싶지 않다면 미리 편지 한 장을 적어 놓고 아내의 화가 터지기 일보 직전에 "여보 생각하며 어제 썼어"라며 전달한다면 한 번이라도 덜 싸우게 되지 않을까?


③ 편지함은 우리 부부가 만드는 미술관이자 시화전이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편지함에 편지를 모아 놓는데 한번씩 열어보면 예술이다. 편지지나 엽서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림과 색으로 가득 차 있다. 반고흐의 <별의 빛나는 밤>과 이중섭 선생님의 <황소>가 있고 포르투에서 공수해 온 엽서는 코르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직접 그려준 화투와 함께 "오빠는 나에게 三光같은 존재야"라고 적어준 멘트는 그 어떤 그림과 시보다 훌륭하다. 그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서 쓴 한 글자 한 글자는 눈으로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명화 엽서에 적어준 편지와 여행지에서 적어준 편지
그림을 그려준 편지와 책 사이 끼워준 메모 편지
3장 짜리 장문 편지와 좋은 글귀 편지

"여보, 나한테 할 말 없어?"

아내는 아주 자주 나에게 묻는다. 큰 잘못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랑 표현을 해달라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사랑해"라는 문장은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게 더 좋다. 특히나 퇴근길 전화로 아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난감하다. "나도"라는 문장은 성의가 없고 지하철에서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너무 민망하다. 지구 상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해 본 남편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럴 땐 애정을 담아 쓴 편지를 아내의 화장대 위에 붙여 놓으면 좋을 것 같다. 아내가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안녕하세요. 부부생활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는 '그남자'입니다. '그여자'로 활동하는 아내와 같은 주제로 1주일에 하나씩 각자의 생각을 펜으로 옮겨 쓰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남녀의 다른 생각을 비교해 읽으시면서 남편과 아내분들께 공감되었으면 합니다.

'그여자'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iamthewoma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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