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육성한 스테디 라인 <리얼 아이 팔레트>. 출시한 제품 중 가장 오랜 시간 육성한 자산이고, 매출도 탄탄하게 이끌어준 라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얼 아이 팔레트만 3년에 걸쳐 시즌별로 10홋수가 넘게 출시했고, 확장 라인으로 4구 팔레트, 스틱 유형까지 출시했다. 이 제품으로 사내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우선 최초 런칭한 3홋수를 기획한 과정을 회고해본다.
출시 타임라인
2020년 1월 피치라이크, 로지피드, 누드무드
2021년 1월 모브미, 애프리콧미
2021년 10월 플럼소다, 크림소다
2022년 2월 듀이, 뎁스
2022년 8월 오트라떼, 피오니라떼
성과
국내 섀도우 팔레트 유형 1위 등극 (2021년 3분기)
대외 뷰티 어워즈 7관왕 수상 (얼루어, 싱글즈, 올리브영어워즈, 파우더룸, 글로우픽 외)
사내 우수사례 공모전 입상
3년차를 시작한 당시 팀장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섀도우/치크/컬렉션 유형을 담당하기 전이었는데, 색조 브랜드로서 우리의 미션과, 그 미션 속에서 이 유형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선배와 같이 할지, 혼자 해볼수 있을지"의 의사를 물어봐주셨다. 아직 연차가 낮으니 혼자 하기 부담스럽다면 그 부분도 이해하니까, 충분히 생각해보고 알려달라고 배려해주셨다.
그 때 직감적으로 지금이 기회다! 싶었던 것 같다. "제가 해보고 싶어요!!!" 하고 생각할 시간은 필요 없다며 막내의 위풍당당 열정을 뿜어냈다 ㅋㅋㅋ 나중에 여쭤보니 내가 그렇게 답할 줄 알고 물어봐주셨다고 했다. 당시에 미리 의사를 물어보고 배려해주신 팀장님께 감사하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은 과거의 나 역시도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유형을 담당하며 가장 재밌고 뿌듯하게 일할 수 있었다.
얼굴 전체에 하나의 필터를 씌운 듯 face, eye, cheek 경계가 모호한 톤온톤 메이크업이 유행했다. 그러면서 치크/쉐딩의 범위 역시 넓어졌다.
과거 맥, 디올, 바비브라운 등의 럭셔리 브랜드에서 이끌던 섀도우 팔레트 시장을 프리미엄 시장에서 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2-3만원대 9구팔레트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우수수 쏟아지는 온라인/올리브영 브랜드의 팔레트 제품 때문에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진입 브랜드가 많다는 것은 시장의 규모 역시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영업 채널에서도 우리 브랜드에 기대하는 바가 생기고, 당시 영업팀 쪽에서 팔레트 유형의 추가 개발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생겼다. 역시 현장으로부터 시작하는 기획이 진또배기이다. 시작점은 거기서 찍어주신거나 다름없다.
우리는 레드오션 상황에서 특이점을 주기 위해 시즌별 룩북팔레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팔레트 자체의 성장률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한정 운영이라는 제품 전략의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시즌에 관계없이 탄탄하게 매출 기반을 잡아줄 레귤러 운영 팔레트 라인을 기획하게 된다.
한정 컬렉션 컨셉을 기획하거나, 트렌디한 새로운 스토리를 짜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나의 크리에이티브 역량과 상상을 마음껏 펼치면 된다. 하지만... 브랜드에서 중요도 높은 (그래서 예산의 비중도 높은) 대표 신규 라인을 0부터 잡고 기획, 육성하는 일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훨씬 더 전략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이 때 '고객이 원하는게 뭘까' 에 대해 미친듯이 파고들었다. 시장의 정량적인 데이터도 진짜 꼼꼼하게 뜯어봤지만, 고객들이 팔레트에 대해 얘기하는 리뷰, 의견, 호불호 표시에 대한 컨텐츠는 모조리 수집했던 것 같다. 러브밤 컬렉션 때 고객 커뮤니티를 운영했던 시도를 여기서도 확장시켰다. 고객이 팔레트 유형에서 바라는 점을 직접 물어보며 데이터를 수집했다.
당시 고객이 원하는 팔레트는 딱 2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버릴 컬러 없는 활용도 높은 구성인지"
"이거만 들고 여행을 간다 생각해도 든든한지"
결국 이 핵심 포인트 2가지는 내가 팔레트 유형에서 느낀 갈증이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쓰는 진또배기템, 데일리 찐템" 이라는 의미를 담아 <Real Eye Palette 리얼 아이 팔레트> 일명 #찐팔레트 라는 네이밍이 탄생했다.
당시 디자이너 분께서 개발하신 넓은 팬이 2구 내장된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많이 쓰는 컬러는 넓게 내장하자"고 접근했다.
결과물을 보면 당연한 접근이지만, 당시는 당연히 9구의 프리몰드 팔레트를 활용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이런 간단한 비틀기를 위한 많은 분석과 고객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항상 전형적인 9구에 머물던 팔레트 시장에서, 리얼 아이 팔레트 출시 이후 넓은 팬을 내장한 멀티팔레트가 엄청 많이 출시되었다.)
기획 의도에 충실해서 섀도우 뿐 아니라 치크 & 쉐딩까지 활용할 수 있는 컬러들로 섬세하게 조색했다. 리얼아이팔레트 런칭 초기에 부정 리뷰 중 하나는 "발색력이 낮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역시 의도된 부분이었다. 메이크업 초보자부터 코덕까지 휘뚜루마뚜루 쓰려면 존재감높은 발색이 장벽이 된다. 이 제형은 여러번 레이어링하거나, 넓은 영역에 발라도 텁텁함이나 뭉침 없이 맑게 발색된다. 오히려 이 특징으로 롱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빠듯한 런칭 시기를 맞추기 위해 매일 공장으로 출근하면서 연구원님, 영업담당자님과 조색하고, 심지어 크리스마스 연휴때까지 호텔로 퀵을 받아 조색을 컨펌한 기억이 있다. 이 때 유독 꼼꼼&깐깐하게 컬러를 봤었는데 함께 제형을 개발한 분들이 아직도 감사한 마음으로 남아있다.
이전까지는 나에게 주어진 유형에서 가장 트렌디한 제품을 기획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내가 짠 스토리와 컨셉'에 많이 몰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제품을 기획, 운영하면서 단순히 트렌디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 전반의 목표에 기반한 상품 운영 전략에 접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대표님으로부터 전체 구조 속에서 목표를 세팅하는 관점을 배웠고, 팀장님은 전체 속의 부분 & 부분의 전체 를 운영하는 관점을 가르쳐주셨다.
회사 내부 내용이라 자세한 전략이나 목표를 공유할 수는 없지만, 결론적으로 50위권 밖에 있던 팔레트 유형에서 리얼아이팔레트 제품만으로 국내 팔레트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기획 - 디자인 - 마케팅 - 전략 - 영업 - 채널 - 지원 및 운영,, 이 모든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협업하여 이뤄진 성과였다. 이 때 배운 인사이트 덕분에, 이후에도 상품 기획 시에 내가 목표로 찍은 지점이 명확하게 달성되는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당시 말그대로 '박터지는' 시장 속에서 무려 모든 럭셔리, 저가 브랜드를 제치고 우리 제품이 1위를 달성했다!!! 개인적으로도 뿌듯했지만 브랜드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보람되게 느껴졌다.
덕분에 존경하는 대표님께 상도 받고, 아모레퍼시픽 사내 우수사례 공모전에 출품(?) 선정되어 입상을 하기도 했다.
목표가 명확한 상품 운영 전략이 나오면,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협업해 성과를 낼 수 있다. 시장이 박터져도 살아남는 전략 도출이 가능하다!
고객을 끝까지 파고들면 그들이 원하는 핵심 니즈를 발굴할 수 있다.
현장으로부터 시작된 의견과 목소리가 결국 고객의 목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