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나 Feb 08. 2024

무심한 듯 심드렁하게

혼자와 함께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나름 성공적인 고향 방문이었다. 여기에 성공과 실패가 있나-라고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나에게 꽤 크게 작용한다. 껄끄러운 마음을 지닌 채 기차에 몸을 실으며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친구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고향에 간다. 엄마의 예상 질문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친구 결혼식은 어땠어?

그냥 뭐 여느 결혼식과 똑같지.

-신랑은 무슨 일 해?

소방 공무원.

-친구 이름이 뭐라고?

엄만 들어도 몰라.


   사실 오랫동안 내 목을 조여왔던 결핍이 존재한다. 그것은 화목함. ‘다른 집은 멀쩡한데 우리 가족은 왜 이렇지? 왜 화목하지 못할까’라고 스스로 반문한 적이 많다. 나의 성격적 결함과 더불어 그 당시 상황에 불만을 따져보았을 때 우리 가족의 불화합을 탓하는 나 자신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가 좋지 못한 부모님, 사랑받지 못한 엄마, 그리고 언쟁이 나면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쥐 죽은 듯 방에만 처박혀 있는 어린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식들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엄마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구속감에 여전히 마음을 옥죄여 온다. 화기애애하지 못했고 정서적으로 팍팍했던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현재 내 성격이 이 모양 이꼬라지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부모로서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 사랑하기에 어려움이 큰 거라고 원망하게 된다.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는 건 어떨까, 나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한번 바꿔보자. 방긋방긋 웃으며 온실 속에서만 자란 듯한 나를 만들어내어 이참에 효녀 코스프레도 해보지 뭐. 소망에 가까운 욕심에서 비롯된 끈끈한 가족애를 자랑하는 가상 가족을 상상했다. 엄마가 하자는 대로 큰 반발 없이 다 수긍하고, 시시각각 바뀌는 그녀의 변덕에 다 따라주며 정서적으로 큰 힘을 보태었다. 얼마 되지 않는 사업 첫 순수익의 절반을 떼어 부모님께 건네주기도 했다. 처음엔 나도 자식 구실을 하는 듯 싶었고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이 나타나니 이거 정말 가능한 건가 했다. 그 생각은 4일째 엄마와 나의 카페 나들이에서 단단히 뒤통수를 쳤다. 그저 엄마의 다소 걱정 어린 말이었는데 발끈했다. 스스로가 무서웠다. 역시 아빠의 욱하는 유전자가 나에게도 흐르는 걸까. 보고 배운 게 이런 거라 아닌 채 해도 피는 못 속이는 건가. 그날의 난 화산처럼 폭발했다. 용암처럼 끝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천장이 터질듯한 언성 높임, 폭풍우 속 감정적 휘말림. 제삼자로서 나를 보았다면 안타까움에 혀를 끌끌 차며 끝끝내 시선을 거두었음에 진배없었다. 한 마리의 야생 맹수 같았던 나, 떠올리기도 싫다.


   남은 물론이거니와 피를 나눈 가족에게도 기대기 어렵다는 사실에 직면한 나는 큰 절망감에 빠지기란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잠시 지나가는 계절성 우울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혼자 지낸 지 오래되어 이런 고독함은 꽤 익숙해졌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일은 나 스스로도 변화를 꾀했기에 결핍을 채우려고 했던 노력마저 물거품이 되었다. 사랑하는 왕자를 결국 칼로 찔러 죽이지 못해 자기 몸을 바다에 던져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도 이와 같은 헛헛한 심정이었을까.


   그러다가 최근 3일의 방문은 참으로 적당했다. 간이 딱 맞다고 해야 할까. 4일 이상 머물면 소란이 일어남이 분명하다. 큰 기대가 없었던 건지 서로의 거리는 적당히 뜨뜻미지근했다. 다시 심심하고 심드렁한 나로 돌아갔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았다. 아침마다 요가하고 날이 매우 춥거나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산책하러 나갔다. 며칠 만에 찾아온 나만의 방에서 안도감을 다시금 느꼈다. 문득 침대 옆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3년 전에 읽었던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작가는 말한다, 혼자와 함께의 적절한 혼합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사적인 문제라고. 또한 혼자 있다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며,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며.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고.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사교적인 온라인 생활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그간의 나는 꼬인 인간이었다. 예를 들어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려진 거울 셀카를 스토리에 올렸는데 댓글로 ‘안 본 사이에 예뻐졌다’라는 칭찬에 곧바로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얼굴의 반 이상이 가려졌는데 예뻐졌다고? 가려야 예쁘다는 소린가?’ 못된 마음을 얼른 고쳐먹고 고맙다고 답장을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이 꼬인 실타래를 주기적으로 풀어주거나 기름칠을 해주어 느슨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를 연민하는 모습에 취해 나를 더더욱 고립시키고 결핍에 집중하다 보면 이런 요상한 사단도 일어난다. 자기 판단력도 흐려지니 길을 잃고 말 수밖에.


   90년대에 쓴 캐럴라인의 글을 읽으며 2024년의 나는 그날 밤 그녀와 깊이 소통했다. 세상은 결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반복적인 깨달음을 처음 듣는 진리처럼 되새김질했다. 그렇지, 맞아. 지난 몇 주간 나를 괴롭혀온 고독이라는 키워드. 그와 더불어 따라오는 고립, 외로움, 결핍감, 우울이라는 동료. 책을 읽으며 가라앉은 마음을 다독였다.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혼자와 함께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 이 또한 나에 대한 공부이고 관심이고 애정이다. 이 기술을 발견하고 터득한 캐럴린 하이브런은 60년이 걸렸고, 그걸 소개해 준 작가 캐럴라인도 97년도에 이제 시작했을 뿐이라고 일컬었으니 말이다.


혼자일때 함께일때 photo by @wonsunny_u

   

우울은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 가족의 모습이 - 특히 내가 - 무심하고 심드렁한 표정이지만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용인가. 그저 적당한 혼합을 찾기 위해 열심히 투쟁했던 과정 중 하나였을 뿐. 눈물땀 흘려가며 고군분투했던 못난 나의 모습을 꼬옥 안아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그걸로 된 거다.





작가의 이전글 까다로운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