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을 쌓아가는 방법
지난해의 일기장을 펼쳐보면 그런 말이 적혀 있다.
향이 짙은 사람이 되자
나는 현재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가. 과거와 비교해 보자면 음.. 꽤 그렇다고 자신 있게 끄덕일 수 있다. 이건 다른 누군가가 수여해 주는 게 아닌 자신이 알고 수여해 주는 특별한 상이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 공통적으로 듣는 얘기가 있다. 너 많이 변했구나. 이 말은 나에게 일종의 쾌감을 가져다준다. 변했다는 얘기, 그만큼 내가 노력했다는 뜻이니까.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거니까.
그 변화의 결과를 가져다준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 수업. 그것도 다름 아닌 오프라인 소규모였다. 그 당시 I력이 어마어마했던지라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는 변화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알을 깨부수고 나오고 싶은 생각이 유독 그 시기 내내 나를 이끌었고 한 달짜리 수업이 아쉬울 만큼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엉성하지만 귀여운 나의 책이 나왔고 친구들에게 택배비만 받고 보내주었다. 그때 처음 나의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희열을 느껴버렸다. (큰일 난 거다) 이때부터 글쓰기를 종종 메모장이나 블로그에 종종 적어왔고 쓰지 않던 일기까지 써오고 있다. 이렇게 한 가지 향이 짙어지고 동시에 내 세계관도 넓어졌다.
이걸 계기로 또 새로운 걸 해보자 싶어 피아노 수업도 등록했다.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가 손가락 끝으로 되살아나는 감각을 느낀다. 유튜브에 짧게나마 틈틈이 기록도 남겼다. 기분이 울적할 때 들어가서 보면 전문가가 보기엔 얼렁 뚱땅이지만, 적어도 일반인이 보기엔 멋들어지게 보이는 템포로 치는 내 모습이 담겨있어 꽤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표현력은 고심하는 지휘자의 눈썹 주름만큼 깊어졌다.
그다음은 뭐였을까? 바로 유화 클래스이다. (이쯤 되니 친언니는 가지가지한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살면서 언제 60호짜리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보겠는가 싶었다. 후회 없이 신나게 칠했다. 유화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직업은 특별한 게 아니라고. 묵묵히 ‘그리는’ 사람이 화가고, 묵묵히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했다.
그간 내 (취) 향을 짙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찍먹을 해보았고 현재까지 해오고 있다. 브런치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뭐든지 간에 나는 경험해 보는 걸 제일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현재의 나에게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나요?라고 질문한다면, 네/니오라고 답할 수 있겠다. 당장 눈에 보이는 - 사회가 좋아하는 - 효과적인 성과는 없을지라도 다 내 손안에 스며든 것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향이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뿜어져 나올 것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뭐든지 간에.
물론 하나를 진득이 해야지-라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는 게 맛있는지, 부어먹어야 맛있는지 직접 먹어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해보는 것은 사실 잃을 게 없다.
이다음 찍먹은 무엇일까?
생각만 해도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