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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Nov 28. 2023

목표는 휴식중

목표 부담증이 있어요


어떤 날의 산책길이었다. 선선한 강바람이 스쳐오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모든 걸 품어줄 것 같은 그런 온도. 내 옆엔 남자친구 P가 자신의 목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일 년 정도는 여기에 매진해보고 싶어. 그다음엔 이러쿵저러쿵… 아주 뚜렷한 목표가 열차마냥 줄지어온다. 넋 놓고 듣고 있다 문득 화살표가 나에게로 향했다.



“네 목표는 뭐야?”



그러자 말문이 턱 막혔다. 목표라.. 그러게, 내 목표가 뭘까. 나도 모르겠어, P.






사실 전반적인 삶을 목표지향적인 것과 별개로 살아왔다. 흔히 그런 말들 있지 않은가. 5년 후, 10년 후, 3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또는 연마다, 달마다, 주마다 계획을 세워 살아라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게 우리 사회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마치 삶을 무책임하고 방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날 산책 이후로 ‘목표’라는 것에 의식을 기울이며 살았다. ‘OO은 한 명이 새로운 목표가 생겼대, 영화를 새로 만들려나 봐. 현재 스토리보드를 짜고 있고 배역은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아.’ 누군가의 포부나 계획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목표 없이 방랑하며 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구나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현 세상에서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스스로에게 있어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친구 중 한 명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던지라 괜찮은 조언이라도 얻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그리고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내 목표? 그런 거 없어 요즘. 그냥 매일을 잘 살아내는 게 목표라면 목표야. 하루를 무사히 끝내고 저녁에 온전히 쉬는 게 나에겐 정말이지 최고의 시간이야. 목표가 없다는 것에 의기소침해할 필요 없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은연중에 목표를 향해 달려왔어. 봐바, 인서울을 하기 위해 고등학생 때 열심히 공부를 했고, 졸업전시를 위해 작업에 최선을 다했고, 그다음엔 취업을 위해 노력했고. 자각하지 못했을 뿐 목표는 우리 곁에 존재해 왔어.” 친구가 이어 말한다. “솔직히 목표입장도 들어봐야 된다고 생각해. 목표도 가끔은 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때까지 계속 달려왔으니 목표도 쉬어야지. 나중에 생겼을 때 P에게 얘기해도 늦지 않아. 그러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지금은 목표가 없지만 새 목표가 생기면 그때 응원해 줘.’라고.”



<잠을 자는 조> 에드워드 호퍼

그래, 목표도 좀 쉬어야지.. 맞아. ’ 지금 이 순간‘ 목표가 없는 것일 뿐 나중에 생기면 그때 말하면 된다. 사실 내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본다면 목표가 없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뿐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강변을 산책하며 서로의 미래를 공유하는 젊은 남녀, 얼마나 이상적인가. 현명한 친구의 답변처럼 목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무게감을 덜 필요가 있다. 유머감각과 웃음이 상황의 심각성을 낮추는 최고의 처방전인 것처럼 조금은 가볍게 가져가도 될 것 같다. 미간 사이 주름을 만들어 뚫릴 듯 쳐다본다 한들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목표도 휴식해야 한다는 친구의 주장에 허탈한 웃음이 터져버린 나의 모습을 기억하며 승모근에 힘을 조금 빼본다.


그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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