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행하기]우도에서 소라죽을 외치다.

4년 전 추억 속 '소라죽' 찾기

by 생강남
"우도에서 소라죽을 외치다." 연이네 소라죽


4년 전이었다. 일도 아닌 여행도 아닌 애매하게 서울과 제주도를 오갔다. 당시 나에게 안겨준 제주도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주도는 관광지가 전부가 아니야!" 사실 제주도는 관광단지의 천국이다. 타지에 오면 막상 어디 갈까 고민하다 결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곳으로 가기 마련이다. 일과 여행으로 제주도를 오가면서 느낀 것은 소소한 것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돌담길, 숲, 바다 등 일상적인 것들이 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매력은 조용히 혼자 있을 때 더 와 닿는다.

어느덧 30대가 훌쩍 지나버린 지금 다시 한번 제주도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오늘 퇴직했다.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다시 출발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생겼다. 그 여유를 자연에서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제주도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한 곳에서 오래 머물기', '4년 전 맛의 기억 되살리기'다. 이번에 머물 곳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다. 제주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날씨만 좋다면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 타기에 제격이다. 무엇보다 올레길의 시작이자 끝나는 지점이라 성수기가 되면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아직은 비수기라 조용한 제주도를 느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4년 전에 소라죽을 처음 먹어 봤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굳이 똑같은 맛을 찾아낼 필요성은 못 느꼈다. 어딜 가나 소라죽은 있기 때문이다. 소라죽은 전복죽과 다르다. 어패류, 질긴 식감 등 같지만 미세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복은 사과처럼 사각거린다면, 소라는 도토리묵처럼 물컹거리는 탄성이 느껴진다. 나는 탄력적인 소라를 더 좋아한다. (물론 전복도 주면 잘 먹는다.) 제주도로 내려와 무작정 우도로 향했다. 우도에 소라죽 잘 하는 곳이 있길 바라며 말이다. 봄기운에 기온이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거친 바닷바람을 지나 우도에 도착했다. 나를 반기는 우도의 상인들, 이들과 내적 대치를 하며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다. 선착장 반대편에 먹을 곳이 즐비하다.

내 지인들은 우도에 왔으면 땅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란다.

그렇다. 우도는 땅콩으로 유명하다. 작고 단단한 조직감,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우도에서 땅콩을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나의 목적은 '소라죽'이었다. 어느 식당을 가나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나의 시선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우도 해녀 할머니들의 자맥질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직접 캐낸 해산물을 바로 손질해먹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당장 그 맛을 느낄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게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겉은 멀쩡한데 손님이 없었다. 게다가 사장님은 이른 아침부터 라면을 먹고 있었다.(알고 보니 정성이 들어간 모닝 성게 라면이었다.) 뭔가 불안하지만 지적인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장사하시나요?"
"(당황한 얼굴로)네~ 어서 오세요!"
"소라죽 주문해도 될까요? 그리고 문어숙회도 작은 걸로 부탁합니다."


가게에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적막한 가게에 홀로 앉아 창밖을 구경하던 사이 문어숙회가 나왔다. 오늘 첫 손님이니 문어 다리 몇 점 더 올렸다며 맛보라고 했다. 역시 사람은 때를 잘 맞춰야 하나보다.(분명 나는 태생부터 먹을 복이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문어를 두툼한 굵기로 저며 한 상차림으로 나왔다. "이거 식감 장난 아닌데?" (앞으로 나를 '식감 성애자'라고 해야겠다.) 부드럽게 씹혔다. 몇 번 씹었더니 눈 녹듯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물론 문어가 눈처럼 사르르 녹을 순 없다. 전채요리로 나왔기 때문에 강력한 식욕으로 꿀떡꿀떡 삼켰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한 점 한 점 곱게 집어 먹는 사이 드디어 기다리던 '소라죽'이 나왔다.

'소라죽'은 어딜 가나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여긴 뭔가 다르다. 소라 양이 많아 보인다. 4년 전 먹었던 '소라죽'엔 소라 향만 가득했다. 처음 경험한 음식이기에 양에 대해 별로 따지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게다가 오래 기다려온 산지 음식 아닌가? 큰 사발 그릇에 담긴 죽을 한 숟가락 깊게 퍼냈다. 입에 한 가득 물고 씹어 삼키려는 순간, 사장님을 쳐다봤다. 입안에 소라가 한가득이다. 고맙다는 말 대신 눈빛으로 인사를 전했다. 물론 나의 부담스러운 친화력에 사장님이 서비스로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기름에 불린 쌀을 넣고 저어가면서 소라를 듬뿍 넣었겠지?" 머릿속으로 요리 과정을 떠올렸다. 상상 속 음식 냄새가 맛으로 고스란히 전해왔다. "맛나다~" 물론 나의 만족도는 소라의 양과 신선도에 있었다. 어차피 참기름을 직접 만든 건 아닐 테고, 쌀 역시 철원이나 이천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소라를 오늘 아침에 직접 캐온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먹는 내내 4년 전 '소라죽'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라죽'을 먹은 것이 아니라 추억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추억을 먹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다시 제주도를 오게 된다면 오늘을 추억하며 즐길지도 모르겠다. 역시 혼자 여행하기 참 잘 한 것 같다.


PS. 참고로 '소라죽'보다 사장님의 인심에 더 끌린다. 다음에 오면 가장 잘 하는 '성게 라면'을 먹으러 오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저녁에 오란다. '삼겹살 파티'가 있단다. 가게 이름(연이네)은 해녀인 사장님의 장모님 성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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