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행하기]종달리엔 가득함이 없다. 그것이 매력이다

제주도 여행코스, 종달리

by 생강남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너무 많이 채워져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그런 상태였나 보다. 무작정 떠났다는 것은 무엇이든 비워내기 위함이다.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 위해 비워내야 했다. 비워내기 가장 좋은 장소가 필요했다. 제주도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육지가 아닌 섬으로 떠나면 무엇인가 모를 보상심리를 얻을 것 같았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아직 비수인 탓에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다. 게다가 삶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었다. 제주도의 동쪽 해안가는 서쪽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도심과 자연이 잘 어우러져 있다. 너무 시골이라면 도시살이를 했던 나에게 힘들 것이고, 너무 도시면 힐링의 매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적절함이 가득한 곳을 선택했다. 바로 '종달리'다.


뚜르드제주(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사랑이다. 아침이 든든하다.
종달리는 오후 6시면 일과가 끝이 난다.

다시 말해 편의점 말고는 거의 문을 닫는다. 밤거리를 다니는 것은 적막함, 고독함과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오지 않았는가? 나에게 적막함, 고독함은 필요했다. 숙소(뚜르드제주)에서 준비해준 조식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을 준비했다. 오늘은 자전거로 동쪽 해안길을 탐방하는 것이다. 사실 자전거는 몇 년 만에 타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컸다.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허벅지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첫 번째 탐방지는 근처에 있는 지미 오름(165m)이었다. 지미 오름은 올레길 마지막 21코스의 종료지점이다. 마지막 스퍼트에 가까운 경사가 매력(?)인 곳이다. 이른 아침에 올라선 지미 오름의 정상은 묘한 매력을 가졌다. 아직 다 걷히지 않는 안개 저 너머로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제주도의 푸르름을 한눈에 담아낼 수 있었다.


지미오름의 경사면은 미운 그녀석이다. 밟고 올라서면 통쾌하다.
제주환상자전길을 달리다.

제주환상자전거길의 총길이는 234km이다. 쉬지 않고 완주한다면 약 16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내 목적은 완주가 아니다. 단지 동쪽 해안을 따라 라이딩하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여자들도 종달리에서 월정리까지 다녀온다고 했다. 거리상으론 약 20km 정도 된다. 가볍게 다녀올만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 자전거는 미니벨로다. 게다가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로 엉덩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욕심은 금물이다. 나는 세화 항구까지 가서 마을 투어로 돌아오는 일정을 정했다. 세화 항구까진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돌아올 땐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오므로 예상 소요시간이 없다. 힘들면 쉬었다 가면 그만이고, 돌담길이 잘 갖춰진 마을을 돌아보는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간다.

너무 천천히 달린 것인가? 아직 하도리 밖에 못 왔다. 사실 가다 서다 하며 자연을 담기 정신없었다.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바다는 에메랄드빛이고 하늘은 청량하다. 회색빛의 돌담을 따라 만들어진 밭은 봄기운이 만연하다. 어딜 둘러보나 눈이 호강이다. 서둘러 점심을 해결할 곳을 찾았다. 하도리 항구 앞에 있는 해녀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제주 가정식이 메인 메뉴다. 하지만 사람들은 파전이 유명하단다. 나의 선택은 가정식이었다. 평일이라 내가 첫 손님이었고, 할머니들은 내가 반가운 모양이었다. 라면이나 칼국수 먹지 말고 가정식 먹으란다. 방금 잡채와 고사리로 반찬을 만들었는데 맛나게 무쳤단다.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상차림이다. 어느 하나 사 온 건 없고 직접 만든 것이다. 특히 미역무침은 환상적이다. 바다 내음도 그렇지만, 싱싱함이 느껴진다. 마늘이나 무로 만든 동치미, 시래기 된장국은 근처 밭에서 가져온 거란다.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만찬이었다. 성게 라면, 칼국수도 맛보고 싶었지만, 다음에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세화 항구로 곧장 달렸다. 그리고 마을 속으로 들어가 숙소로 돌아왔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느낀 것은 제주도는 마을 투어도 매력적이란 것이다. 오히려 바람도 적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적막한 속도를 즐길만했다. 스쳐지날 수도 있는 돌담길이 달리 보인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밭이 오늘따라 더욱 정겹다. 마음이 비워진 모양이다. 새롭게 채워지는 것만 봐도 혼자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당근 빙수를 먹으러 가고 싶었다. 위치는 종달리 내에 있는 카페이다. 종달리는 당근 농사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당근은 당도가 높다.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메뉴로 만든 것이다. 사실 종달리 '당근 빙수'는 유명하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올레길 1코스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반나절 자전거로 땀을 뺐으니 시원한 빙수가 당기는 순간, 급하게 변명거리를 찾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당근 빙수는 먹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빙수는 1인 메뉴로도 충분했다.(사실 나만 시킨 것은 아니다. 홀로 여행객들은 꼭 시키는 메뉴란다) 겉모습은 흔하게 보는 빙수와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황색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당근 향이 묘하게 올라온다. 차가운 빙수에게서 당근 향이 올라온다. 첫 숟갈에 목 넘김이 시원하다. 그다음 숟갈부터는 당근 향과 우유가 절묘하게 섞여 넘어온다. "향으로 먹는 빙수였구나!"



PS. 빙수를 많이 먹었더니 허함이 느껴진다. 이 허함은 배고픔이다. 배고픔을 느끼는 찰나에 여긴 오후 6시면 음식점 문이 닫힌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지금 먹든지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든지 해야 했다. 그러다 발견한 가게가 있다. 가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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