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자연주의
생명이 소중한 것은 어느 곳이나 같습니다. 네덜란드의 자기 자식 사랑도 우리나라 자식사랑처럼 깊지요. 하지만 우리와 그네들의 삼끼식사가 다르듯이 그 사랑의 방법은 참 다르더랍니다.
네덜란드에서의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로, 한국과 네덜란드의 방법을 양다리 공부하고 있자니 이 흥미롭고도 때로는 답답한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가끔 남편이나 네덜란드의 의료진과 이야기할 때 “이런 건, 뭐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이일 뿐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저를 위한 말이기도 해요. 무슨 방식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보다도 무엇이 우리 가족에게 맞는 건지 고민하는 과정이죠. 생각 같아서는 한국과 네덜란드의 장점만 쏙쏙 빼놓은 그런 임신, 출산, 육아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네덜란드의 방식이 어떻게 다르냐고요?
한 마디로 하자면 ‘자연주의’입니다. 정말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개입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방보다 치료가 목적이라는 의료 관념과도 통하는 면이 있죠. 그리고 ‘유난 떨지 말고 다들 하는 대로’라는 사고가 강합니다 (평범히해라, 이미 그게 엄청 특이하니까/Do normal, that’s already crazy enough! 네덜란드 표현입니다. 원어로는 Doe maar Normaal, dan doe je al gek genoeg).
먼저 난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한국 병원에서는 모든 검사가 하루 만에 끝나고, 커플의 연령을 비롯한 개인상황에 맞추어 전개가 빠르죠.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기까지 몇 개월 걸리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한 의사 선생님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우리네 상황에서 뭐가 좋을까 고민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여러 단계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우선 GP (가정의/일반의) 그리고 클리닉 그리고 마지막에 종합병원을 거칩니다. 바로 병원이나 클리닉에 갈 수 없고 그 전 단계 담당의의 제안이 있어야만 갈 수 있지요. 이 과정만 몇 개월이 걸립니다. 그리고 이 3단계마다 검진을 따로 받아야 하고요. 자기네 관할로 들어올 때마다, 자기네가 직접 큰 분석을 하고 싶나 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년 혹은 그 이상의 호르몬제 복용, 그 후에 인공수정 (IUI) 3번, 그 후에 시험관 아기 (IVF) 3번이라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IVF를 최종 선택지로 묶어두는 이유는 시험관 아기 방법이 ‘invasive’ (침입적) 하기 때문이라는데요. 결국 가장 자연임신에 가까운 임신을 권장하는데서 나온 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령의 커플은 하루하루 늙어가는데, 병원에 2-3년 간 다니면서 이런 절차를 받아야 하는 게 고역이지요.
한국 같으면 벌써 6개월 내에 시험관 아기 시도했을 텐데 말이죠. 병원의 환경도 참 다릅니다. 모든 게 새 것 같고, 접수/수납/상담실/진료실/카페/하물며 은행까지 분업화되어있는 우리네 종합병원에서는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 훌쩍이죠. 하려고 했던 일에 더 해야 될 일까지 몽땅 처리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제가 간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VU병원의 난임센터는 80년대 가건물 같았습니다. 아주 낡은 커피자판기가 허름한 로비에 있었는데요. 창가로 아침 해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며 커피 한 잔 하는데, 왜 그렇게 여유가 있는지 참 부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더라고요. 우리는 간절한 마음에서 왔는데, 우리의 개인사나 사정보다도 자신들의 행복과 프로토콜이 더 중요하구나 싶어서요. 그런 걸 가지고 또 뭐라고 할 수는 없겠죠. 스트레스가 덜 하고 행복한 진료진이 검사도 더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까요. 하지만 전 환자보다 절차가 우선이라 느껴진 네덜란드 난임병원에 다니지 않고, 때를 봐서 효율적인 한국의 종합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또 시험관 아기의 성공률이 네덜란드에서는 30%, 우리나라에서는 60%라고 각각의 담당의들에게 들었기도 했기 때문이구요.
그런데 어느 날 저희에게 귀중한 아기가 생겼습니다. 한국에 가서 시술할 필요도 없이요. 그러고 나자, 이 “낭비”한 시간이 정말 “낭비”였던 건가,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시험관 시술의 성공률이 100%가 아니고, 몸도 마음도, 일도 삶도 고되었을테지요. 그러니 4-5개월의 아무것도 (?) 안 하는 사이에 임신이 된 게 애써 병원에 가서 고생하는 것 보다 당연히 다행이라고 여겨져서요. 그때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주의가 나쁜 건 아니구나… 모든 일을 다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할 건 아니구나…’ 그리고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자연주의 임신 및 출산 준비에 접어들었습니다.
렛잇비 임신과 출산
네덜란드에서는 제왕절개나 의료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기를 낳게 돕지 않습니다. 대신에 조산사가 상담부터 출산 후 산후조리까지 관장합니다. 조산사도 공부를 하고 실습을 거쳐 되는 것이고,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이지만, 초음파를 보고 진단할 전문 자격도, 의료시술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조산사와의 만남은 동네 조산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상담만 하는 곳인데요, 마치 커뮤니티센터처럼 수수한 곳이에요. 엄마 따라온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산모들이 보내온 감사 편지, 이런저런 장식물과 브로슈어들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상담도 항상 친절해요.
몸무게 재고, 키 재는 게 가능은 하지만, 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한국에서는 항상 그게 먼저이죠. 하지만 혈압은 잽니다. 그리고 아기의 심장박동을 듣습니다. 그러면 15분 상담 시간이 끝입니다.
어쩐지 허술하고 불안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방법도 있습니다. 한 번은 조산사가 저희 집에 와서 진찰을 해주고 갔어요. 한국에서라면 의사가 집에 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겠죠. 그리고 제가 출산준비에 대한 질문이 많자 일요일에 집에 방문해 무려 2시간의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일대일 케어도 조산사니까 가능했겠지 싶어요.
네덜란드의 출산 과정은 역시 자연주의 우선입니다. 보통 병원에서 출산하는 우리네와는 달리, 이곳은 출산 장소를 4가지 중 직접 선택할 수 있어요. 집, 출산센터, 입원이 필요 없는 병실, 입원이 필요한 병실이에요.
입원이 필요한 병실만이 출산 후 며칠을 보내는 곳으로 수술이나 응급처치가 필요한 게 아니면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의사가 개입하고요. 그 외의 경우에는 의료진 개입이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조산사가 아이 낳는 일을 리드합니다. 그러다 보니, 집하고 다른 게 뭐냐 싶기도 해서 많이들 편안한 장소인 집에서 애를 낳나 봐요. 하지만 초산이거나, 저처럼 외국인인 경우에는 응급사태나 만약을 대비해, 아무래도 의료진 가까이에 있고 싶어 하지요. 출산의 과정이 항상 순조로운 것이 아니니까요.
출산실의 모습도 많이 다릅니다. 임산부용 가운과 초록색 의사 가운, 장갑, 마스크가 우리네 풍경이라면, 이곳은 최대한 편안하고 집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물며 산모는 낡은 티셔츠를 입고 오라는 제안을 받아요. 낡은 티셔츠를 입고 애를 낳는 곳입니다.
그리고 임산부 3대 굴욕이라는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 절차가 없습니다. 출산 전에 검사하는 양수량, 골반크기/아기머리 크기 대조, 탯줄 감긴 상태 체크도 없습니다. 질병검사도 없습니다. 이 정도면, 너무 대충 아닌가 싶죠.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니, 그런 걸 하거나 검사한다고 딱히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거라고 하네요. 예를 들어 탯줄이 목에 여러 번 감겨있다면, 출산 전에 바꾸거나 풀 방도가 없고 출산 중 조산사가 그 탯줄을 풀어 출산을 시킨다는 등 말입니다. 그리고 골반크기와 아기머리 크기를 대조하는 초음파 전문가도 없다고 하네요. 아기가 잘 안 나오면 프로토콜이 있습니다. 언제 의료진이 개입할지도 정해져 있고요 (우리 입장에서는 많이 늦게 느껴질 거예요). 그러니 바꾸지 못할 골반 크기나 아기 머리 크기, 체중을 측정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하더군요. 질병검사도, 얼마나 많은 산모들이 특정한 병에 감염되고 또 그중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그에 따라 문제를 가지고 태어나는지 따져서 다수에게 맞는 방법으로 필요하지 않은 처방이나 항생제는 권하지 않는다는 게 (하지만 원하면 준다는) 기본자세입니다. 만반의 준비와는 거리가 멀죠? 오히려 상황에 따른 해결책이 있는게 준비할 유일한 것이라는 자세입니다.
전 임산부 “3대 굴욕”도 하는 이유가 있고 필요하고, 이곳 조산사에게 “무의미”한 정보도 산모로 출산을 대하는 마음의 준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과정이 힘들다면 그 이유라도 알 면 좋겠죠… 출산 중 응아가 나올까 봐 조바심이 나느니 아예 관장을 해버리는 게 좋겠죠… 질병검사도 해서 미리 만약의 상황에 대처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되어요. 이런 것도 조산원과 상담해서 제 의견을 말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결국 애를 낳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조산원은 도와주는 역할이니까요. 하지만 의견을 세우기까지 참 많이 읽고 공부해야합니다. 그냥 한 나라의 관습만 대충 따르면 더 쉽겠지만, 전 어쩌다가 한국 과정도 네덜란드 과정도 알게된 만큼, 그 차이점과 이유도 정확히 알아야만 기준이 잡히더라구요.
한국이 만반의 준비와 철저함과 표준화를 중시한다면, 네덜란드는 미니멀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자는 것 같아요. 네덜란드는 의료진이 부족하다던데, 그런 이유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괜히 잡다한 것(?)만 늘면 정작 급한 환자는 보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의료진의 준비보다 산모의 마음의 준비를 더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출산이 가까워오면 출산 계획서를 작성하게 합니다. 무통 시술을 어떤 것을 선택할지, 출산 자세는 어떻게 할지 등 등 자기가 원하는 것을 쓰면 조산사나 의료진이 최대한 맞추어주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산모들은 현장(?)을 상상하게 되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나 봅니다. 걱정하지 말 건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도 같아요.
자연주의가 우선인 나라인만큼 아기와 산모의 유대에 득이 되는 기준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수중분만도 거의 기본 옵션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탯줄은 심박이 멈춘 후에 자릅니다. 그리고 아기를 엄마 품속에서 스킨십 할 수 있게 (캥거루 케어) 1시간 시간을 주고요. 신생아 실에 따로 아기를 데려가서 검사하지 않고 바로 아주 기본적인 검사만 실시합니다. 무엇보다, 산후조리원 문화가 없어요. 2시간 후 바로 퇴원입니다. 그래서 아기와 계속 같이 있으면서 관찰하고 이해하고 모유수유를 할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아기를 보통 따로 맡기고 유축을 해야 하니까요.
그에 반해 무통분만시술은 좀 낙후되었다는 느낌이 있어요. 출산의 고통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걸까요? 건장하고 큰 네덜란드 여자들은 고통이 좀 덜한 걸까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맞아도 걸을 수 있는 경막외마취는, 이곳에서는 하반신 감각이 거의 없어지게 강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경막외마취를 하기 위해 온 병원을 서포트하는 마취 전문의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걸리고 병원에 따라 마취과로 직접 아픈 몸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단점도 있죠. 대신 모르핀류의 마취제 혹은 TENS, 래핑가스, 물에 들어가는 것 등 의료진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대안은 있습니다. 이 역시도 뭐가 맞다 틀리다 할 수 없겠죠. 사실문제없이 순풍~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네덜란드의 무통시술이 미덥지 못한 만큼, 저는 요새 약 없이 출산하는 법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역시 의료진에 맡기기보다, 제가 스스로 준비하게 하는 시스템이에요.
출산 후 & 육아
산후조리원문화가 없는 대신, 출산 후 산모의 몸관리는 정부에서 조금 도와주기는 합니다. 출산 후 8일간 전문 관리사가 집으로 방문해 아기와 산모의 상태를 체크합니다. 조산사도 일주일 정도 방문하고요. 그때 우리가 흔히 조리원에서 배우는 것들을 배우고, 가벼운 집안일 도움도 받고 합니다. 특히 남편이 재택을 하거나, 산휴를 쓰면서 산모가 이 시기 겪는 고생이 좀 준다고 하네요.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영아사망률은 낮은편에 속하고 여러 선진국, 그리고 네덜란드보다 낮네요. 그만큼 뭔가 잘 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지난 번 올린 음식 에피소드에서 이 탄생축하 과자 풍습에 대해 더 적어보았습니다)
네덜란드의 출산휴가는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100% 임금이 나오는 휴가는 법적으로 여자는 4개월, 남자는 5일이에요. 그리고 그 이후 70%나 0% 임금이 나오는 휴가가 있지만 옆 나라 독일에 비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일을 좋아하는 걸까요. 공휴일도 적고, 대체공휴일도 없고, 출산휴가도 박하고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기를 키우는데 주는 보조금도 없고 이유식부터 아웃소싱할 수 있는 편리함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2-3명씩 낳으니 뭔가가 잘 돌아가나 봅니다.
제 생각에는 두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 키우는 건 심플하게, 유난 떨지 말고. 자연주의 임신과 출산처럼 육아에 대한 방식도 참 다릅니다. 모성=교육이라는 개념 대신, 3R (rust, regelmaat, reinheid)이라는데요, 휴식 (rest), 규칙성 (regularity), 청결함 (cleanliness)이 육아의 기본입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사교육을 일찍부터 시작하지 않아요. 부모들의 마음고생, 돈 벌 강박도 줄어듭니다. 많이 놀게 하고, 시간표대로 살고, 깨끗이 해주는 게 다니까요(?). (...좋은 부모되기 훨씬 쉽지 않나요?) 또 하나는 좀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픽업하거나 재택을 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직접 맡기고 일을 정시에 시작하는 것처럼 직장은 유연하게, 자식케어가 먼저라는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옳고 그른 것도, 좋은 것 나쁜 것도 아닌 이런 차이점 혹은 다양함이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당연히 따라가지 않고 자꾸 묻고 고민하니 공부할 것은 많지만 이런 것도 좋은 부모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