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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Jan 22. 2024

북반구 겨울이 지겨워질 때

해가 가장 짧다는 12월 22일이 지난 지 한참인데도 겨울은 깊어만 갑니다.


가끔 떠올리는 우리나라의 겨울은 낭만화되었습니다. 시리게 파란 하늘, 호호 불면 나는 입김, 흰 눈과 출근길 교통체증, 버스를 기다리며 다리를 동동 구르게 하던 스타킹, 편의점 호빵, 흰 봉지에 담아 사가던 붕어빵, 포장마차 떡볶이, 광화문 길모퉁이 군밤 냄새… 불편한 추위와 교통체증까지 달관하게 하는 게 추억인가 봅니다.


온갖 행사와 이벤트가 많던 12월이 지나면 1월은 네덜란드에 사는 사람들에게 참 힘든 달입니다. 휴가 후에 꾸역꾸역 일은 해야 하는데 날은 칠흑처럼 어둡고 춥고 짧거든요. 특히 2월 말에서 3월에는 모두 겨울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도대체 봄은 언제 오냐가 대화의 주제기도 하고요.


오늘도 아기가 일어나는 시간인 아침 5시 45분에 맞춰 일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8시가 되도록 지금이 오전 5시인지 8시인지 혹은 새벽 1시인지 구분도 되지 않습니다. 너무 어두워요. 도대체 해는 언제 뜰까요.

아침 8시

네덜란드는 적도와의 거리가 꽤 멉니다. 런던 옆에 있고 덴마크 아래에 있어 북유럽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위도가 북으로 52도입니다. 우리나라가 35도이고요. 참고로 포르투갈이 39도, 모로코가 31도입니다. (위도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북아프리카 수준으로 더울 텐데 아니니 다행이죠).

꽃으로 봄 기분을 내는 것도 겨울나기 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해도 아주 게으르게 느읒게 뜨고 빨리 져버립니다. 1월 1일에는 일출이 8:50,  일몰이 16:37. 9시에 해가 떠 5시 전에 지니 회사원들은 깜깜할 때 출근해 깜깜할 때 퇴근하게 되죠. 우리나라는 1월 1일 일출이 한 시간 빠르고 일몰이 한 시간 늦습니다.


그리고 구름 낀 날이 많아 정작 해를 쬐는 시간은 너무 적습니다. 이렇게 길고 어두운 겨울이 4월까지 계속됩니다. 3월이면 봄이라고 배웠는데, 이곳은 3월도 겨울로 치더군요.

그러면 정말 햇빛이 그립습니다. 비만 안 와도 좀 나을 텐데 비도 내리 내립니다.


실제로 북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겨울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름도 슬픈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가 그 우울증 명칭이라네요. 아무래도 인간은 햇살이 필요하죠.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에서 사는 게 고된 수련이었듯 (?), 어둠과 비 속에서 살려면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비나 어둠을 개의치 말아야 하죠. 어둡든 비가 오든 하던 일, 하려던 일 다 해야죠. 하다 보면 또 해지고요.

요새는 하루에 1분씩이라도 일출이 빨라진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눈치 못 채게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 어느새 1월 말에는 일출이 30분이나 빨라져 있고 2월 말에는 7:30이면 해가 뜨니까요. 하루의 힘을 믿고 기다립니다. 언젠가는 여름이 오겠지!

자태 영롱한 슈퍼 비타민 D

그리고 비타민 D와 맛있는 음식을 챙겨 먹습니다. 햇빛으로 섭취를 못하니 D는 아기들에게도 중요해서 꼬박꼬박 먹이고 있고요. 사실 D보다 더 효과가 팍팍 느껴지는 건 맛있는 음식이죠. 가끔 살이 쪄도, 겨울을 나는데 지방 좀 있으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먹어줍니다.

그간 요리도 많이 했습니다

네덜란드 겨울의 낭만은 뭐가 있을까요.

꼭 우리나라 사람처럼 남편은 겨울에 귤 까먹는 걸 좋아하고요. 겨울에 더 맛있는 엘튼수프는 또 별미죠. 생일이 많은 2월에 우리 아기도 돌이 되니, 저만의 낭만은 생일상 차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는 꽁꽁 언 운하에서 스케이트나 썰매를 타는 것, 태풍에 견 줄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는 겨울바다 산책, 이 칠흑 같은 아침도 다 추억이 되어있겠죠?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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