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차린 나의 드라이 카페

파워포인트만 만들다가 칵테일을 만든다고요

by 이나앨

'해보면 알겠지. 카페 콘셉트가 통할지 안 통할지.'


무알콜 음료를 파는 카페 브랜드를 지향한 만큼, 한 번 카페를 차려보기로 했다. 그것도 런던에서.

페스티벌에서 내 음료를 맛있다며 마셔주던 행인들의 응원 삼분의 일,

남편의 응원 삼분의 일, 그리고 그저 있었던 뜻 모를 자신감 삼분의 일.

그게 내 맨땅에 헤딩하는 용기의 칵테일 레시피였을까.


런던에서 팝업을 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너무나 많은 브랜드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곳이 런던이라, 어피어히어 Appear Here 같은 회사에서 매물을 보고 계약하면 되는 단기 렌털 업체가 몇 있다. 에어비엔비처럼 간단하다.


카페를 기반으로 한 무알콜 사업을 시작하기 전, 내 직업은 제품개발 마케터였다. 시장조사를 통해 신제품을 개발해 론칭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내가 사랑한 일이다.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은 한 동료는 자기가 '파워포인트 몽키'라고 했는데, 그 일이 나쁘게 말하면 그렇다. 발표자료를 만드는 게 아주 중요했으니까. 눈과 손가락과 머리를 쓰는 작업이었다.

그런 내가 무알콜 음료를 개발하기 위해 동네 식당의 무급 알바로 양파를 썰고 있었다.

양파는 아무리 썰어도 토막이 나고 토마토는 다 으깨는 과정에도 배우는 것, 내가 갈 곳 만 보였다.


무알콜 음료의 개발은 내가 하고 싶었다. 우선 시장의 무알콜 음료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0%로 술의 맛만 흉내 내는 게 싫었다. 알코올 음료를 따라 하는 것은 알코올 음료를 만드는 대기업에 맡기면 된다. 나는 무알콜 음료 자체가 흥미로운 레시피를 만들고 싶었다.

직접만든 브랜딩 포스터

술이 싫을 때 탄산수만 마셨던 나를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파워포인트에 묻힌 그간의 창의성이 다 쏟아져 나왔다.


내가 팝업 장소로 선택한 곳은 런던 북동쪽 해크니윅 Hackney Wick*의 한 교회 터의 꽃집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바뀐 교회 안에 작은 꽃집.

집에서 버스로 왕복 두 시간.

런던 시내에서 동떨어진 장소.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한 구석이었다.

하지만 구린내 나는 유흥가 펍과 너무 대조적이라, 드라이 바/카페로서 역설의 매력이 있었다. 주변에는 협업을 할 만한 가게들이 많아 보였고 (나중에 네트워크가 쌓였다)

해크니 윅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창작물을 좋아하지 않을까, 가정을 세웠다.

개러지 스타트업도 아니고, 거창한 무알콜 브랜드를 생각했는데 교회 안 구멍가게 꽃집이라니. 수많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팝업카페를 하나의 시장조사라 생각했다.

손님이 (또) 올지

내 드링크가 호평 혹은 그 반대를 받을지

컨셉은 먹힐지

술 좋아하는 런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 가정이 통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나의 드라이카페 M.I.S.C* 가 런던에 런치했다.

해크니 지역 신문과 주류 잡지*와 어피어히어이서 내 컨셉을 가지고 공짜 PR까지 타는 행운이 온 걸 보면 가정은 통했나 보다.

팝업 카페를 지나친 손님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구글 AI의 소개를 빌린다. 런던 동부 해크니(Hackney) 구에 위치한 해크니 윅(Hackney Wick)은 과거 산업지구에서 예술가들의 작업실, 세련된 카페,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 운하변의 야외 펍이 가득한 힙한 예술가 마을로 재탄생한 곳입니다. 올림픽 공원과 인접해 있어 도심과 다른 트렌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 Ministry of International Specialty Concoctions (M.I.S.C)이라는 장황한 이름으로 농담조의 이름이다.

*https://www.thedrinksbusiness.com/2018/08/londoners-want-cocktails-just-not-the-booze-say-barte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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